바이든 행정부, 탈레반에 미국인·조력자 명단 제공 시인

자카리 스티버(Zachary Stieber)
2021년 08월 31일 오후 2:05 업데이트: 2021년 08월 31일 오후 3:52

“테러단체에 자국민 명단 넘겼다” 미국 내 비난여론
블링컨 미 국무 “검문소 통과 위해 불가피했던 선택”

미국 정부가 시한을 하루 일찍 앞당겨 30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마친 가운데, 아프간을 떠나려는 미국인 명단을 탈레반과 공유했다고 시인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검문소 통과를 위해 카불 공항까지 가는 버스의 탑승자 명단을 제공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미 NBC 방송에 밝혔다.

블링컨은 “버스 탑승자 명단을 제공해 그들이 우리가 데려오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이 탈레반에 명단을 준 것은 맞지만, 신원 정보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공개했다며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자국민과 아프간 조력자들 명단을 넘겼다’는 비판을 반박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아프간 조력자에게 특별이민비자를 제공한 점과 관련해 “특별이민비자 명단을 포함해 중대한 다른 명단은 탈레반에 제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설리번 보좌관은 어떠한 다른 명단도 제공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부인하지 않아, 검문소 통과를 위한 버스 탑승자 명단 외에 다른 명단이 제공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설리번 보좌관은 CNN과 인터뷰에서 탈레반 검문소에서 명단이 사용되는 절차 일부를 설명하며 “탈레반과 이런 식으로 조율했기에 기자, 여성, 조종사 그리고 다른 특별이민비자 소유자들이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간에서 미국인과 아프간 조력자들을 탈출시키는 과정에서 미국인의 신원정보가 담긴 명단을 제공해,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활동을 노출하고 추가적인 위협이 발생할 빌미를 남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와 관련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우리 군이 탈레반 관계자와 접촉한 적이 있으며 버스에 몇 명이 타고 있으니 통과시켜 달라고 했다”며 탈레반 측에 제공된 명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해주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런 일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다”면서 “명단이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라 ‘12명의 이름이 여기 있는데, 이곳(공항)으로 향하고 있으니 통과시켜 달라’고 했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다소 모호한 발언을 남겼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30일 “지휘관들이 현장 상황에 따라 탈레반에 명단을 공유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며 그냥 명단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구출하기 위해 협력하는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탈레반에 아프간 탈출을 원하는 자국민과 아프간 조력자들의 명단을 제공하는 일이 꼭 필요했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공화당 벤 사세 상원의원은 “그들(바이든 행정부)은 미국 시민들과 동맹국 사람들, 우리와 함께 싸워준 사람들의 명단을 (탈레반에) 넘겼다”며 탈레반을 지나치게 신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편, 추가 테러 위협에 대비해 당초 예정했던 31일보다 하루 앞당겨 30일 철수를 마친 바이든 행정부는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IS)와 싸우기 위해, 철수 후에도 탈레반과 계속 협력하겠냐는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질문을 받자 “미래의 상황을 가정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