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언론이 폭로한 中 공산당 부패 관리 명단에 왜 ‘이 사람’이 빠졌을까

한동훈
2020년 08월 24일 오후 12:33 업데이트: 2020년 08월 24일 오후 12:41

뉴스분석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공산당(중공) 최고위층 일가가 홍콩에 수백억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어 미국의 제재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기사를 지난 12일 냈다.

앞서 8일 미국 정부가 홍콩과 중공 관리 11명을 ‘홍콩 자치권 침해’를 이유로 제재하고 그 가족과 사업체, 거래은행까지 제재하겠다고 밝힌 지 나흘 만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기사에서 중공 최고 권력기구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인’ 가운데 3인의 일가친척이 홍콩에 보유한 자산을 자세히 다뤘다. 3인은 각각 시진핑, 리잔수, 왕양이었다.

기사에서는 시진핑 중공 총서기의 큰 누나와 그녀의 딸,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딸, 왕양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의 딸이 각각 홍콩에 수십억~수백억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홍콩 기업, 금융계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했다.

다만, 완전히 새로운 정보라기보다는 중화권에 떠돌던 루머에 세밀한 부분을 추가해 정리한 내용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뉴욕타임스는 왜 이 시점에 시진핑·리잔수·양양 가족의 홍콩 재산내역을 건드렸을까? 아니 질문을 바꾼다면 왜 상무위원 7인 중 나머지 4인의 재산은 다루지 않았을까?

특히 궁금한 것은 한정 상무위원의 자산 내역이 왜 빠졌을까 하는 점이었다. 한정은 중공의 홍콩 총 책임자다.

상무위원 7인은 각각 관할분야를 나눠 독립적으로 책임진다. 한정은 홍콩·마카오 관련 업무를 총괄한다.

중국 공산당 양회에 출석한 한정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 로이터=연합뉴스

한정 역시 엄청난 규모의 자산을 해외에 보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양한 경로로 밝혀진 것만 31억 달러(약 3조6천억원)다. 아내 완밍은 부동산업체 루디그룹 지분 7%를 소유했고, 호주 국적인 딸 한쉐는 그룹 자회사 실소유주다.

이러한 한정 일가가 홍콩에 고급 빌라주택 한 채 없으리란 건 생각하기 어렵다.

여기서 ‘시간적 배경’이라는 요소를 도입하면 한정이 빠진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된다.

기사가 나온 시점은 중공 전·현직 지도부들만의 비공개 모임인 베이다이허 회의 기간이었다.

지난 16일께 끝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회의는 현안을 논의하고 향후 당의 노선을 결정하는 자리인 동시에 계파 간 치열한 권력암투의 장이기도 하다.

그 진흙탕 싸움에는 종종 외국의 힘까지 라이벌을 공격하는 장면이 연출되곤 했다.

그중 하나는 지난 2016년 ‘파나마 페이퍼스’ 폭로 파문이었다.

각국 지도자들이 포함된 조세회피 내역이 담긴 이 자료는 전 세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집중된 것은 베일에 싸인 중공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가족들의 해외 자산이었다.

마침 그때에도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주요 언론이 의혹 보도에 앞장섰는데, 중공 상무위원 7인 가운데 시진핑, 장가오리, 류윈산 등 3명을 집중 조명했다.

중공 고위층의 해외 자산에 대한 폭로는 2014년에도 있었다.

시진핑 계열 인물들에 대한 내용이 많았고, ‘중국 최대 부패세력’으로 지목되는 장쩌민 일가와 장쩌민파 핵심 인물들은 비껴갔다.

시진핑 정권 출범 이후 미국 혹은 해외 언론의 중국 공산당 고위층 부패 폭로 보도는 대개 시진핑 진영이 주된 타깃이었다. 장쩌민 계파 인물들은 없거나 비중이 작았다.

특정 계파를 편들려는 것이 아니다.

장쩌민 계파가 미국 언론을 이용해 시진핑 진영을 공격해왔을 가능성을 진단하는 것이다.

시진핑 정권이 출범 초기 벌인 반부패 운동의 주된 대상이었던 장쩌민 계파가 어떻게 반격하면서 시진핑을 물러서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당내 권력 투쟁에 미국 주요언론까지 이용하는 중공이 “외국세력과 결탁”하면 최고 종신형에 처한다고 한 홍콩 국가안전법을 통과시킨 것은 지독한 블랙 코미디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따로 없다. 시민들이 자치권을 요구하면 외세와의 결탁이고, 고위층이 내부 정보를 해외 언론에 흘려 권력암투에 이용하는 것은 묵인된다.

사실, 중공은 세계 어느 집단보다 외국을 사랑하는 집단이다. 특히 고위층의 미국 사랑이 그렇다.

지난 2011년 중공 관영매체 신화통신에 게재됐다가 곧 삭제된 기사 한 편이 있다.

미국 정부통계를 인용한 이 기사에 따르면, 중공 중앙·지방정부의 부장(장관급) 이상 관료 74.5%가 미국 영주권 또는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의 손자·손녀 91%는 미국 시민권자였다.

같은 해 중공 중앙조직부가 벌인 실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장관급 이상 공무원 가족의 숫자가 총 1만1백여명이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녀 유학 등의 이유로 미국, 캐나다, 호주 및 유럽에서 머물고 있었다.

각국 정부나 기업의 비공개 문서를 폭로하는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중공 고위층은 스위스 은행에 약 5천여 개의 계좌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 3분의 2는 국무원, 중앙은행장, 정부 부처 장관, 중앙정치국 위원 소유였다.

또한 중공 중앙 고위층은 거의 모두 스위스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었고, 스위스의 글로벌 금융기업 UBS에는 중국인 약 100명이 총 1조1260억 달러(약 1334조원)의 예금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 워싱턴에 본사를 둔 비영리 단체인 글로벌 파이낸셜 인터그리티가 지난 2013년 말 발행한 ‘개발 도상국의 불법 자금 유출’이라는 보고서에서는 2001년부터 2011년까지 탈세·부패 범죄로 중국에서 총 1조8천억 달러(약 2140조원)의 자금이 불법적으로 유출됐다고 지적했다.

장쩌민, 20년 절대권력 누리며 중국 경제 잠식

시진핑은 2012년 11월 후진타오로부터 중공 총서기와 중공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승계하며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에 올랐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말처럼, 중공의 권력은 중앙군사위 주석직으로 대표된다.

전임 후진타오 정권이 그 전임이었던 장쩌민 계파의 권세에 눌려 종이호랑이 신세로 임기를 마쳤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표적 증거가 장쩌민이 총서기직 사임 후에도 2년간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장쩌민은 군사위 주석직을 물려주기 싫어 2년간 버티다가 마지못해 넘겨주면서도 부주석에 자기 인물을 앉혀두며 군 장악력을 계속 유지했다.

장쩌민 계파의 세력이 약화한 것은 후진타오 정권이 끝나고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였다.

즉, 장쩌민과 계파 2인자 쩡칭훙 부주석 권력체제는 1989년 집권 이후 실제로는 20년 이상 지속해 왔다.

시진핑은 2012년 집권 이후 장쩌민-쩡칭훙 세력과 사활을 건 권력투쟁을 벌여왔다.

양측이 타협한 것은 5년 뒤인 2017년 19차 중공 전국대표대회에서였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장쩌민-쩡칭훙은 권력투쟁에 관한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기로 했고, 그 대신에 시진핑은 장-쩡 세력의 부정축재를 눈감아 주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이 이런 약속을 한 것은 권력투쟁 상황이 외부에 노출되면, 자신이 통치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여겨진다. 중공은 대외적으로는 항상 통일되고 안정된 모습을 보여야 했다.

결국, 시진핑-리커창을 제외한 중앙위원회 위원 전원이 교체된 19차 중공 전대에서 반부패 운동을 이끈 왕치산 중앙기율위 서기가 해임됐다.

시진핑의 오른팔로 칼날 역할을 해왔던 왕치산이 물러나면서 반부패 운동도 사실상 중단됐고, 장-쩡 측은 세력을 유지하며 그동안 부정축재한 재산을 해외로 반출했는데 홍콩이 그 주요 통로로 이용했다.

미국의 홍콩 특혜지위 철회와 홍콩 자치권을 침해한 중공 관리의 해외재산 동결에 중공, 특히 장쩌민 계파가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장쩌민 세력은 미국의 인권 제재를 상당히 두려워한다. 그들을 지탱해주는 해외 은닉자산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최근 시진핑 정권은 반부패 운동을 서서히 다시 시작하고 있다는 점도 장쩌민 세력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다.

이쯤에서 뉴욕타임스가 왜 중공 상무위원 7인 가운데, 시진핑 등 3인의 자산 내역을 폭로했는지 의미가 새롭게 이해되기 시작한다.

미국의 홍콩 관리 11인 제재에 충격을 받은 장쩌민 계파가 자신들이 아니라 시진핑 쪽을 겨냥해 줄 것을 미국 언론을 통해 미국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는 시나리오가 완성된다.

장쩌민 계파가 시진핑 측에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베이다이허에서 자신들을 위협할 경우, 시진핑 세력의 부패내역을 대외적으로 폭로하겠다는 일종의 위협인 셈이다.

올해 코로나19(중공 바이러스) 확산과 미중 갈등 고조 속에서 치러진 베이다이허 회의는 지난 17일께 끝난 것으로 보인다.

회의 이후 장쩌민 계파 인물들의 신병에 별다른 변동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시진핑이 또 한 번 타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갈등 봉합은 오래가기 어렵다. 미중 갈등이 계속 심화될 경우, 장쩌민-쩡칭훙 세력은 홍콩과 해외에 은닉한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또 한 번 시진핑 진영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반중공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 앞에서, 중공의 내부 갈등 상황은 더욱 긴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