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무장관, 트럼프 압수수색 관여 시인…“직접 승인”

한동훈
2022년 08월 12일 오전 11:57 업데이트: 2022년 08월 12일 오후 1:10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자택 압수수색을 둘러싸고 ‘사법체계 무기화’라는 비판이 제기된 가운데,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정면 돌파에 나섰다.

미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사전에 보고되지 않았다”며 뒤로 물러나 제삼자 입장을 취한 가운데, 법무부 장관이 “직접 승인했다”며 언론보도와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비판에 대응한 것이다.

메릭 갈런드 미 법무장관은 1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8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 내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승인한 인물이 자신이라고 밝혔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통상 정치인 혹은 정치적 사안과 관련된 개인·단체에 대한 압수수색 실시 전 상부기관(법무부)의 승인을 구한다.

이번 전직 대통령에 대한 압수수색이 미국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수색 영장 신청 승인이 법무부 고위층, 갈런드 장관까지 올라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그동안 미국 정치권의 견해였다.

갈런드 장관은 이날 압수수색에 대해 “상당한 근거”가 있다며 공익을 위해 관할 법원인 플로리다 남부지방 연방법원(마이애미 연방법원)에 압수수색 영장 공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갈런드 장관은 또한 압수수색 당일 수색 영장 사본을 트럼프 측 변호사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측은 수색 전 영장 사본을 주거나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FBI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반출했다고 보고 있는 기밀문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을 것으로 예상돼, 영장이 공개될 경우 적잖은 파장이 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법무부와 FBI는 이번 압수수색의 목적과 수색을 통해 입수할 가능성이 있는 문건에 대해 침묵해왔으며, 에포크타임스를 비롯해 미국 여러 매체의 질의에도 답변을 거부해왔다.

갈런드 장관의 기자회견 전날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압수수색에 관한 언론의 질의에 “내가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앞서 10일 보수성향의 법조단체 ‘사법감시단(Judical Watch)’은 이번 압수수색 영장에 날인한 마이애미 연방법원의 브루스 라인하트 판사를 상대로 영장 공개를 청구했고, 라인하트 판사는 이를 받아들여 10일 법무부에 15일 전까지 응답하라고 명령했다.

이 같은 명령을 받은 법무부가 법원에 영장 공개를 요청한 것은 정치권에서 쏟아지는 압력에 ‘맞불’ 놓기로 대응한 모양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전례 없는 압수수색에 야당인 공화당은 물론 여당인 민주당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화당은 법무부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공격”이라며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과 관련 정보를 모두 공개하라”고 공세를 펴고 있다.

심지어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 주지사를 포함한 일부 민주당 의원들까지 “법무부는 이번 압수수색에 대해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압수수색은 바이든 행정부의 국정수행에 있어 중대한 분수령이 될 11월 중간선거를 3개월 남겨둔 상황에서 이뤄지면서 정치적 불똥이 튀고 있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는 하원과 상원(부통령의 캐스팅 보트 포함) 과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의 지원사격하에 낮은 대통령 지지율에도 정책 주도권을 이어가고 있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승리 혹은 압승이 점쳐지는 가운데,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영향력이 건재한 트럼프 전 대통령에 관한 사법 처리 여부는 중대한 돌발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차남 에릭 트럼프는 폭스뉴스에 “국가기록원이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문서를 반출해 자택에 보관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가기록원은 지난 1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마러라고 자택에서 기밀문서를 포함해 15상자 분량의 백악관 기록물을 회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 연방법에서는 국가 기밀 서류를 권한이 없는 장소로 이동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기밀 해제 권한의 최고 결재권자였다는 점에서 반론의 여지도 있다.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갈런드 법무장관 탄핵설까지 거론되고 있다.

케빈 매카시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성명을 통해 “법무부의 무기화된 정치화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공화당이 하원을 탈환하면 법무부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겠다고 경고했다.

상원 공화당에서는 랜드 폴 상원의원이 “이제는 정말로 조사가 필요하다”며 갈런드 장관이 부적절한 일(권력남용)에 개입된 사실이 드러나면 탄핵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압수수색 영장에 날인한 라인하트 판사는 미성년자의 성매매를 알선해 유죄 판결을 받은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관계가 있다는 언론 보도로 비난을 받고 있다.

2018년 마이애미 해럴드 보도에 따르면, 라인하트는 연방검사 재직 중이던 지난 2008년 1월 검사 사직 하루 만에 엡스타인 관련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신문은 라인하트 판사가 당시 검찰 내부 정보를 엡스타이 측에 전달하기 위해 검사직을 그만 둔 것이라는 주장도 소개했다.

라인하트 판사는 이러한 주장을 부인했다.

* 이 기사는 잭 필립스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