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알래스카 회담, 중국 양제츠·왕이 이례적 조합 배경은?

강우찬
2021년 03월 19일 오후 7:48 업데이트: 2021년 03월 19일 오후 10:42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첫 미중 고위급 회동에서 양제츠(楊潔篪) 중공 외사위원회 판공실 주임이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데리고 미국에 방문하는 이례적인 조합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일본 언론은 양제츠∙왕이의 희한한 조합이 내년 당대회 인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18일(현지시각) 미중 고위급 알래스카 회담 1·2차 회동이 종료됐다. 미국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국가안보보좌관이, 중국은 공산당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부장이 참석했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미∙중 고위급 회동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언론 닛케이 아시안 리뷰(Nikkei Asian Review)는 “양제츠와 왕이의 이례적인 조합은 중공 지도부가 통상적인 외무장관 회의를 원하지 않고 바이든 행정부와 새로운 고위급 회담을 시작하기를 원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닛케이는 양제츠가 시진핑의 특사 역할을 맡아 시진핑이 바이든에게 보내는 친서를 휴대할 만큼 계급이 높고, 만약 양제츠가 이런 편지를 알래스카의 미국 관리들에게 건네게 되면 베이징은 이를 미∙중 화해의 상징으로 삼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올해 70세인 양제츠는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으로, 그가 중공 중앙외사위원회 판공실 주임을 맡은 이래 대미(對美)외교는 줄곧 그의 업무였다.

올해 68세의 왕이 외교부장은 아직 정치국 위원은 아니다. 성부급(省部級∙장차관급)에 따라 선을 그으면 65세에 퇴직해야 한다. 왕이 외교부장은 국무위원 직함을 달고 있기 때문에 부국급(副國級∙부총리급)으로 친다면 70세에 은퇴할 수 있다.

일본 언론은 “이번 알래스카 행에서 왕이 부장과 양제츠 위원이 손을 잡음으로써 왕이 부장이 앞으로 양제츠 위원의 역할을 이어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란 관측이 커지고 있다. 또한 이번 출장 배치는 내년 당대회 인사 변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한 시진핑의 오랜 동맹이었던 왕치산(王岐山)이 은퇴 후 시진핑의 부주석으로 유임된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외교 산꼭대기 쟁탈전, 내분에 빠진 양제츠·왕이

홍콩의 중국 전문 월간지 ‘첸사오’(前哨)는 지난 2018년 4월호에서 중공 외교 조직 내 파벌이 즐비하다고 밝혔다.

큰 파벌에는 ‘북외(北外∙베이징외국어대)파’, ‘북2외(北二外∙베이징 제2외국어대)파’, ‘북어(北語∙베이징어언대)파’ 등이 있고 작은 파벌은 훨씬 많아 파벌 간 신경전을 벌인다는 것이다.

왕이 부장이 이끄는 북2외파는 양제츠의 역사학 박사학위가 가짜라고 폭로하는 편지를 중앙정치국에 보낸 바 있다.

그들은 이 편지에서 양제츠가 난징대 역사학과∙세계사학과 대학원생으로 적을 두고 있다며 거짓이 극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양제츠가 직무를 유기하고, 집무실에서 서양 영화 및 TV를 시청하고 멜로 영화와 포르노물도 보았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왕이 부장 역시 난카이대(南開大學) 경제학 석사로, 베이징 제2외국어대 외교학원 국제관계학 박사는 허위 학력이며 이른바 재직 학습, 원격학습으로 체계적인 학습을 거치지 않은 채 직권을 이용해 학위를 얻은 사실이 누군가의 제보로 밝혀졌다.

왕이 부장은 젊은 시절 처가의 연줄을 통해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왕이는 절반의 홍얼다이(紅二代∙혁명원로 2세)로, 그의 장인인 첸자둥(錢嘉東)은 직업 외교관으로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외사(外事) 비서를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UN 주재 제네바 대표단 대사를 지냈으며 첸자둥은 외교 조직의 동료와 부하들에게 왕이를 잘 보살피라며 왕이를 이끌어줬다.

왕이는 장인의 비호 아래 19년 사이 단번에 높은 지위에 올랐다. 일본 주재 대사, 외교부 부부장, 국무원 대만 사무 판공실 주임 등을 지냈으며 현재 중공 국무위원, 외교부 부장을 맡고 있다.

외교 분야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사건은 2016년 6월 캐나다에서 왕이 부장이 캐나다 기자에게 중국 인권 관련 질문을 던지며 “중국을 아느냐, 중국에 가본 적 있느냐”며 “중국 인권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건 당신이 아니라 중국인 자신이다. 당신에겐 발언권이 없고, 중국인에겐 있다”고 말한 사건이다.

당시 일본 산케이신문 계열 언론사 ‘자크자크’(ZAKZAK)는 왕이가 직위 해제될 것이라며 인권 문제로 캐나다 기자에게 분노를 터뜨린 것 외에도 그가 중국을 방문한 일본 외교부 장관을 대하는 태도 역시 최악이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중공 외교부의 일선 관리로서 왕이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중공의 ‘외교 이미지’를 훼손하는 한편 자신을 수동적인 처지에 빠트리니 이대로 가다간 곧 외교부장이 바뀔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왕이 부장은 2018년 3월 양회 당시 중공 외교부장 기자회견에서 미국 블룸버그 통신 기자가 중공의 대외관계와 정책에 대한 민감한 질문을 하자 기자의 질문이 공격적이라고 질책하는 등 태도가 좋지 못해 또 한 번 외부의 비판을 받았다.

같은 해 말 여러 매체가 왕이 부장의 아내, 첸웨이(錢韋)가 캐나다로부터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다는 소식과 왕이가 캐나다에 부동산 2채를 소유하고 있으며 모두 호화주택이라는 사실을 폭로했다.

2020년 9월, 왕이는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프랑스, 독일을 방문했을 때 각국 외교부 장관에게 연이어 무안을 당했다.

게다가 미∙중 관계가 전례 없이 악화되자 당시 평론가들은 외교부장으로서 왕이는 미국 쪽엔 할 말이 없고, 유럽에선 체면을 구겼으니 당연히 사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