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사태 속 태평양·지중해 대규모 훈련…미국의 메시지는?

2021년 08월 24일 오후 4:26 업데이트: 2021년 08월 24일 오후 5:01

5개 함대 총 출동…인도·태평양 안보에 대한 관심 반영
“중국·러시아 위협 대응 차원…동맹국엔 안보 약속 확인”

탈레반 무장세력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는 가운데, 미군은 이달 초부터 태평양 등지에서 40년 만에 최대 규모의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수십 대의 군함과 잠수함, 2만5천명 이상의 해군과 해병대원이 동원된 이번 훈련은 ‘2021년 글로벌 대규모 훈련(LSGE21)’으로 태평양, 지중해, 흑해 등에서 진행된다. 미국이 동맹국에 글로벌 군사력이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훈련에 대해 아프간에 진출했던 20여년전과 현재의 미군 사령부가 생각하는 글로벌 역량의 중점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중국의 확장 야심 등을 억제하는 데 초점이 있다는 것이다.

3일 시작된 훈련은 16일까지 미군과 영국군이 함께하는 1부와 일본, 호주가 가세해 27일까지 진행되는 2부로 구성됐다. 태평양을 담당하는 미 7함대 등 5개 함대와 해병대 원정군 50여 군부대가 참가하며 항공모함과 잠수함 등 36척의 군함이 동원된다.

태평양 지역에서는 야전훈련, 후방보급, 강습상륙, 공지작전, 해공작전, 특수부대 작전 등 다양한 상황을 가정한 훈련을 종합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동맹국·파트너 국가에 대한 미국의 신뢰성 강조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18일 “우리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투자하고 있으며, 이전 정부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 투자하고 있다”며 동맹의 안보에 깊은 관심이 있음을 확인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이어 “대만이든 이스라엘이든 아니면 어떤 국가이든, 우리와 반석과 같이 확고한 관계를 유지하는 실체를 지지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중동과 대만해협에서 고조된 군사적 긴장에 관해 논평했다.

프라이스 대변인의 발언은 최근 탈레반으로 인한 아프간의 혼란상이 동맹국에 전한 충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세계 여러 국가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으며, 가장 많은 병력을 배치한 곳은 일본으로 5만명의 병력이 상주하고 있다.

아프간 철수와 관련해 한국에서도 철수 계획이 있냐는 의문이 제기된 가운데,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은 한국에 배치한 2만8500명의 병력을 철수시킬 의향이 없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지만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미일 동맹에 대한 확고한 약속을 확인했다”며 일축했다.

중국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자 즉각 지지성명을 냈으며, 관영매체들은 이번 기회에 미국의 신뢰성을 깎아내리며 동맹국의 우려를 부추기려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중국 공산당의 대변자 언론인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17일 사설에서 “대만의 일부 인사들은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착각”이라며 대만해협에서 전면전이 벌어지면 대만은 몇 시간만에 무너지고 미국의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대만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지는 않지만, 무기 판매 등 방식으로 대만의 자기방어 능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대만 차이잉원 총통은 1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만의 유일한 선택은 우리 스스로 더 강해지고, 더 단결하고, 굳건히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다. 남의 보호에 의존하면 안 된다”며 미군에만 의존한 아프간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설리반 보좌관 역시 아프간 상황과 관련해 “대만의 상황은 아프간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동맹과 파트너 국가에 대한 약속은 신성하여 침해할 수 없음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대만은 미국과 동맹관계는 아니지만, 미국은 대만을 민주주의 파트너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지난 1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는 사실상 미국 주재 대만 대사관 역할인 ‘대만대표부’ 인사가 1979년 단교 이후 42년만에 처음으로 초청돼 눈길을 끌었다.

미국의 역대 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더 많은 외교와 군사 자원을 투입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일본·인도·호주의 4자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 간 협력 강화를 중시했으며, 바이든 대통령도 이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WSJ은 미국이 아프간 철수 후 아태지역 안보 강화를 위해 쿼드와 협력을 한층 더 강화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쿼드 참가국은 오는 9월 첫 대면 정상회담을 위해 조율하고 있으며, 아프간 사태가 진행 중인 지난주에도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올해 안에 쿼드 해군 합동군사훈련도 예정하고 있다.

일본 메이카이 대학 국제정세분야 테츠오 코타니 교수는 WSJ에 “아프간 철수는 미국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는 것을 입증했다”면서 문제는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에 대한 군사적 지원의 지속성 여부라고 지적했다.

프랑수아 헤이스버그 국제전략문제연구소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에 직면해 맞설 용기가 있는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WSJ은 덧붙였다.

아프간 사태로 인한 비난 속에서도 태평양과 흑해, 지중해에서 진행된 이번 LSGE21 훈련이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에 대한 미국의 대답 내지는 결의를 보여준다는 풀이도 나온다.

RFA는 중화전략전망협회의 제중 연구원을 인용해 “미국은 동맹국과의 정치, 외교, 군사적 협력을 통해 중국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려 한다”면서 미국의 오랜 동맹인 영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중 연구원은 “미국은 영국이 유럽에서 협력을 이끌어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유럽과의 협력으로 미국은 러시아에 대해서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훈련에서도 영국이 참가하고 있는 점을 지목했다.

이어 “미국은 이번 글로벌 훈련을 통해 여전히 동맹국과 공동전선을 형성할 수 있음을 과시하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야욕에 경고하고 있다. 미국은 또한 여러 나라와 합동훈련을 통해 각 지역에서 작전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런 훈련이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미국은 LSGE21 훈련 외에도 북한의 공격에 대비한 한미연합훈련을 지난 16일 시작해 26일까지 진행한다. 북한의 항의를 받아들인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축소시행되는 이번 훈련에 관해 미국 정부는 “전적으로 방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장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