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의 정체성을 복원하다 (상)

청샤오눙(程曉農)
2020년 09월 13일 오후 6:10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18

오늘날 미국에서 널리 쓰이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은 당초 공산주의 전제정권이 자유세계에 침투하면서 생겨난 부정적인 용어였다.

지난 2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정치적 올바름은 온갖 요구사항을 욱여넣은 ‘긍정적 표현’으로 둔갑했다.

정치적 올바름은 그 자체가 매우 독재적, 전제적인 개념이다.

미국 헌법을 본다면, 특정 정당이나 사회단체에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을 결정할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유로운 사상 발전에 따른 사회 진보는 정지되고, 중국 공산당의 사상 개조와 비슷한 독단적인 사상의 주입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독재적인 사상으로 자리잡아 서서히 스며들면, 젊은 세대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절대적 진리로 착각하는 ‘세뇌’를 당하게 된다.

곧 민주국가는 사상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민주주의는 독재주의로 전락한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용어의 과거와 현재

오늘날 미국에서는 학계에서 정계까지, ‘정치적 올바름’이 모든 법률과 사회문제의 보편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정치적 올바름’의 기원과 본질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사실, ‘정치적 올바름’은 구소련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이 미국에 침투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미국 좌파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이 글에서는 미국 역사학자인 모리스 이세르만(Maurice Isserman) 퍼거슨대 교수와 엘렌 슈레커(Ellen W. Schrecker) 예시바대 교수는 2008년 10월 20일 베이징대에서 강연한 내용에 따라 이를 정리했다.

미국 공산당은 미국 사회당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 1919년 창당했다. 모스크바에서 결성된 국제 공산주의 단체(코민테른)에 참여하려는 목적이었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공산당이 창당되고 활동이 왕성해지면서, 1930~40년대에 미국 공산당도 크게 발전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30년대에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단어가 사용됐는데, 미국에서 온건한 사회주의자들이 과격한 공산주의자들을 풍자하는 용어였다.

소련 공산당의 명령에 꼭두각시처럼 추종하는 모습을 꼬집는 표현이었다. 당초 사회주의자들이 처음 들고 나온 것이다.

세계 2차대전(1939~45) 이후 소련의 영향력은 서서히 약화됐다. 1960~70년대에 접어들자 미국 내 공산진영에는 ‘신좌파’(New Left)가 활약했다.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신좌파는 소련 대신 중국·쿠바를 모델로 삼았다.

그러나 미국 공산당은 여전히 소련의 정치적 노선을 추종했고, 정치 구호를 기계적으로 따랐다. 소련이 주는 연간 수백만 달러의 자금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은 80년대까지 이어졌다.

반면 신좌파는 당시 중국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이끌던 마오쩌둥의 어록을 인용하기를 즐기면서, 소련을 추종하는 미국 공산당원들을 자주 풍자했다.

예를 들어, 미국 신좌파들은 홍위병 말투를 따라 하면서 미국 공산당원들에 이렇게 말했다. “동지, 당신의 정치적 노선은 옳지 않아.”

30년대에는 사회주의자들이, 그리고 60~70년대에는 신좌파가 소련 공산당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비꼬기 위해 쓴 단어가 ‘정치적 올바름’이었다.

이후 정치적 올바름은 서서히 그 사용 빈도가 줄어들었고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 시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시대가 끝나고 1990년대부터 다시 ‘정치적 올바름’이 대학 내 포럼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다.

이때에는 소련 공산당이나 중국 공산당의 색채는 다소 흐려져 있었다. 소련 공산당은 해체됐고 중국 공산당은 자본주의를 힘껏 추구했다.

그 당시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이 오늘날과 비교해 어느 정도로 유연했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필자가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 다닐 때, 고전이론을 강의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교수님의 수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수님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필독 교재로 지정했는데, 중국에서 공산주의의 폐해를 절감한 필자는 공산당 선언을 철저하게 거부하는 독후감을 써냈다.

놀랍게도 교수님은 내 독후감을 거의 비판하지 않았다. 그때의 ‘정치적 올바름’이 그랬다. 오늘날처럼 경직되고 통일된 개념이 아니었다. 아마 대학 강의에서도 개념에 대한 정의가 제각각이었을 것이다.

다만, 당시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용어는 ​​좌파 입장에서 약간 모순적인 뉘앙스를 풍겼다.

몇몇 학자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일종의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미디어·문화를 통한 공산주의 전파)라고 여겼는데 이는 서로 다른 가치관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게 특징이었다.

그런데 공산주의를 문화를 통해 전파하려면 먼저 문화적 상대성을 강조해 이쪽의 가치관을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대학 강단에 서는 교수진들의 성향이 점점 더 좌파로 기울어짐에 따라 지난 20년 동안 ‘정치적 올바름’은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됐다.

좌파가 지향하는 진보주의 이념과 구호는 정치적으로 옳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제 ‘정치적 올바름’은 대학 캠퍼스와 미디어, 사회에서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다. 꼭두각시 공산당원들을 비꼬기 위해 만들어졌던 원래의 부정적 의미는 사라졌다.

또한 다양한 분야에서 조금씩 사용을 늘려가면서 대중화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에 ‘트럼프 타도’가 추가됐다. 그로 인해 대다수 트럼프 지지자들은 ‘정치적 올바름’ 비판을 피하려 여론 조사 혹은 사회생활 중에서 점점 더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지 않게 됐다.

사상 통제 도구로 변질된 ‘정치적 올바름’

현대 미국 사회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최고의 맛’이라는 흔해빠진 광고 문구와 마찬가지가 됐다.

실제 내용은 실종되고 정책과 견해를 홍보하기 위한 광고이자 캠페인이 됐다.

모든 제품은 원래 포장이나 광고가 아닌 제품의 본질에 따라 그 가치와 평가가 결정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포장만 붙으면, 그 정책이나 정치적 주장의 본질에 관계없이 올바른 것으로 여겨진다. 정치적 도구가 된 셈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용물을 가리기 위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포장지를 씌운다. ‘진보주의’라는 기치를 내걸기만 하면, 의심도 이의 제기도, 판단의 보류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말로 진보주의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공격한다. 사실상 독재나 다름없다.

공산주의 독재를 경험하지 못한 미국인들은 공산당의 독재와 이념을 이론적으로만 알 뿐 그 실체에 대해서는 모른다.

중국인들은 1949년부터 지금까지 늘 중국 공산당의 독재 체제에서 생활했다. 서양인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신봉하지만, 중국인 가운데 사고력이 있는 이들은 독재의 본질이 사상 통제임을 잘 이해하고 있다.

공산당 정권은 정치적 권력이나 사회적 권력을 이용해 어떤 발언이나 행위가 정치적으로 올바른지 아닌지 규정한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는 성적을 평가하거나 등수를 매길 권리를 이용해 학생들의 입을 막고 질문하거나, 다른 견해를 가지지 못하도록 한다.

‘발언할 권력’을 가진 이들은 사회적, 경제적 압력을 동원하여 정치적 올바름’의 원칙을 감히 거부하는 사회 구성원들을 강압적으로 복종시키려 한다.

이러한 가치관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진다. 결국 많은 사람은 겉으로는 거짓을 말하고, 진실은 속으로만 말하거나 믿을 수 있는 몇몇에게만 말하는 이중적 삶을 살게 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2018년 8월 2일 예일대 중국계 학생인 둥이푸(董一夫)가 쓴 칼럼을 오피니언란에 게재했다.

둥이푸는 이 칼럼에서 “미국 캠퍼스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법이 아니지만,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종종 법보다 더 광범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서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언급하면서 “그러나 미국의 사회 분위기가 점점 다원주의적으로 되면서 누군가 언론의 자유를 행사할 때, 그 권리를 제한받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기준이 법률이 아니라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개탄했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청샤오눙(程曉農)은 1985년 중국인민대학 석사 출신으로 중국전인대상무위원회 사무청 연구실과 중국경제체제개혁연구실에서 체제개혁소 종합연구실 주임과 부연구원을 지냈다. 미국에서 프린스턴대학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재미 중국 경제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