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사는 보은인사용? 사라지지 않는 논란

이윤정
2021년 12월 21일 오후 7:13 업데이트: 2021년 12월 22일 오전 3:20

고액 정치 헌금 기부자·측근에게 전리품처럼 ‘대사’ 자리 분배
직업 외교관 7: 비외교관 3이 평균…트럼프 행정부는 45%로 역대 최다 보은인사로 비판
케네디 전 대통령 장녀 캐럴라인, 오바마-바이든 행정부에서 대사로

콘스탄스 밀스틴, 조지 츠니스, 마거릿 휘트먼…이들의 공통점은?

거부(巨富)이자 전·현직 대통령의 ‘절친’ 혹은 측근이다. 평생 명예인 ‘대사(大使)’로 지명·임명됐거나 역임했다는 점이다. 선거 캠프에 거액을 기부했다는 점에서도 닮은꼴이다.

뉴욕 부동산 업계 큰손 콘스탄스 밀스틴은 2020년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선거 캠프에 72만 5000 달러(약 8억 6500만 원)를 기부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인 2021년 12월 밀스틴은 지중해 도서(島嶼)국 몰타 주재 대사로 지명됐다.

비슷한 시기, 케냐 주재 대사에 지명된 마거릿 휘트먼 전 이베이 최고경영자(CEO) 역시 바이든 대선 캠프 모금위원회에 50만 달러(약 5억8025만 원) 이상을 기부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자금 줄 역할을 해온 그리스계 미국인 조지 츠니스도 바이든 행정부에서 그리스 주재 미국 대사로 지명돼 상원 인준 청문회를 기다리는 중이다. 앞서 츠니스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4년 주 노르웨이 대사로 지명됐으나 상원 인사 청문회에서 낙마했다. 노르웨이가 입헌 군주국이라는 기본적인 국가정보조차 알지 못해, ‘자질 부족’ 시비를 일으켰고 결국 인사청문회 벽을 넘지 못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 고액을 기부한 이른바 ‘선거 공신’에게 대사 자리를 전리품처럼 나눠주는 ‘엽관주의(猟官主義)’ 인사 관행이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 전문 매체 포린폴리시(FP)는 12월 20일, “바이든 대통령이 외교 경험이 전무한 고액 정치 자금 기부자들을 잇달아 해외 대사직에 임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는 콘스탄스 밀스틴, 조지 츠니스, 마거릿 휘트먼 등을 해외 주재 대사직에 임명한 배경을 상세 보도했다. FP는 “오바마 전 대통령도 츠니스를 노르웨이 대사로 낙점했었지만, 그는 노르웨이 정부 구성에 대한 기초적 질문조차 제대로 답하지 못해 낙마했었다. 츠니스는 노르웨이에 간 적도 없다”고도 지적했다.

미국 대통령에게 막대한 정치자금을 기부한 사람들이 대사직에 앉는 관행을 두고 ‘논공행상(論功行賞·공적을 따져 상을 줌)’이라는 비판은 사실 해묵은 논란이다.

FP는 “민주당은 물론 전직 외교관들은 외교 경험이 없는 부유한 선거 운동 기부자들을 대사로 지명하는 관행이 미국의 외교 정책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해왔다. 이런 관행은 ‘제도화 된 부패’나 다름없다고 비판해왔다”고 꼬집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평균적으로 재외 대사직의 3분의 2 정도는 직업 외교관으로 임명하고 나머지 3분의 1 정도는 정무적으로 인선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자신의 ‘자금줄’ 역할을 한 인사들을 정부 요직에 등용하는 ‘엽관제(猟官制·spoils system)’ 또는 ‘정실주의(情實主義·patronage system)’ 인사의 일환이다.

‘관직을 사냥 하다’라는 뜻의 엽관제는 정치적 지지자를 공직에 임용하는 것으로서 미국에서 성행해 온 전통이다. 정권을 획득한 정당이 지지자들에게 보상으로 관직을 부여하는 ‘보은 인사’인 셈이다. 이러한 관행은 자격 미달 비전문가들이 부처 장ㆍ차관 등 고위 공무원, 공공 기관장 자리에 앉게 만드는 통로로 악용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대사직 나눠 주기’ 관행은 트럼프 행정부도 예외 없이 지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중 재외 공관장(대사·총영사) 전체의 45% 정도를 외교관 경험이 전무한 고액 정치 후원금 기부자, 측근들로 채웠다. 통상 미국 해외 주재 대사의 30% 선을 비(非) 외교관 출신으로 임명해 오던 그간의 ‘관례’에 비춰 볼 때 15%가량 많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됐다. 미국 외교업무협회(AFSA)에 따르면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전체 대사의 33%,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30%를 지지자들에게 분배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30%는 ‘평균율’로 통용돼 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켈리 K. 크래프트이다. 그는 대형 석탄 업체 얼라이언스리소스파트너스 최고경영자(CEO)인 남편 조 크래프트와 함께 지난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에 약 200만 달러(23억5천만 원)를 기부했다. 이들 억만장자 부부는 공화당의 큰손으로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인 2017년 켈리 크래프트는 캐나다 대사로 임명됐다. 외교 무대 경험이 전무한 그의 핵심 우방국 주재 대사 임명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2년 뒤인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주유엔 대사로 전임 시켜 ‘보은 인사’ 논란을 증폭 시켰다. ‘다자 외교의 꽃’인 주유엔 미국 대사는 국무부 소속 엘리트 직업 외교관은 물론, 다수 정치인이 선망하는 자리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역시 한때 이 자리를 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17년 단행한 첫 재외공관장 인사 명단에는 선거캠프 고액 기부자들이 속속 이름을 올렸다. 우디 존슨 내셔널 풋볼 리그(NFL) 뉴욕 제츠 구단주는 영국 대사, 퍼시픽 크레스트증권 창립자 조지 E. 클래스는 포르투갈 대사, 호텔 사업가 도우 맨체스터는 바하마 대사, 고든 손들랜드는 유럽연합(EU) 주재 대사로 등용됐다. 당시 워싱턴타임스(WT)는 “전 세계 대사 직 중 공석인 70석 가운데 지금까지 19명이 지명됐으며 19명 중 14명이 부유한 정치적 후원자나 선거자금 기부자들”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개혁’을 외쳤던 오바마 행정부 대사 명단에도 고액 후원자, 측근 이름이 즐비했다.  캐나다·영국·프랑스·아일랜드·독일·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주요국 대사 직이 모두 오바마 개인이나 민주당에 정치 후원금을 기부한 인사들로 채워졌다.

오바마 행정부는 전통적인 ‘민주당 식구 챙기기’도 빠트리지 않았다. 2013년 존 F. 케네디의 장녀 캐럴라인 케네디는 여성 최초로 일본 대사로 부임했다. 캐럴라인 케네디는 민주당과 인연에 더불어 2008년,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오바마 캠프 선거자금 모금에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안 배경에 돈이 더해진 것이다. 캐럴라인 케네디는 올해 12월, 주호주 대사로 지명되기도 했다.

논공 행상의 수단으로 대사 자리를 사용하는 관행을 깨트리자는 움직임도 있다. 애미 베라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은 2019년 10월, “미국 해외 대사 70%는 국무부 출신 직업 외교관 가운데 임명돼야 한다”는 요지의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법안은 통과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반면 미국 직업 외교관이 대사가 되는 길은 험난하다. 외교관에게 부여하는 고위직은 참사관(counselor), 공사참사관(minister counselor), 경력공사(career minister), 경력대사(career ambassador) 등으로 분류된다. 그중 주요국 대사로 부임할 수 있는 경력 공사·대사는 1만 명 이상 국무부 직원 중 불과 수십 명 내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