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육 시스템을 개혁한 ‘교육의 아버지’, 호러스 맨

김연진
2023년 04월 19일 오후 12:02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27

호러스 맨(Horace Mann)은 미국의 공교육 시스템을 최초로 개혁, 확립한 ‘교육의 아버지’로 불린다.

평생을 바쳐 공립학교 교육을 위한 개혁을 이끌었으며, 도덕교육과 실업교육의 진흥에 기여했다.

또한 교사를 양성하는 최초의 사범학교를 설립한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호러스 맨의 교육 개혁과 헌신은 현재 미국 공교육 시스템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교육 행정 분야의 또 다른 개척자인 엘우드 커벌리(Ellwood P. Cubberley)는 “교육이 단순한 학습이 아닌 미덕과 인격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개념을 확립하는 데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한 사람은 없다”고 호러스 맨에게 찬사를 보냈다.

독학으로 변호사가 된 농부의 아들

호러스 맨은 1796년 매사추세츠주 프랭클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겨우 13살 무렵 아버지를 여읜 호러스 맨은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제대로 학교에 다니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았고, 미국 최초의 공립 도서관인 프랭클린 공립 도서관에서 독학으로 공부하며 브라운대학교에 진학했다.

호러스 맨 | Public Domain

이후 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한 호러스 맨은 1823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1827년에는 매사추세츠주의회 의원으로 선출되며 정계에 발을 들였다.

주의원으로 재임하면서 그는 공교육, 공공 자선 단체 등의 개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교육의 아버지’로서의 활약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초대 교육부 장관

호러스 맨이 주 상원의원을 지내는 동안, 의원들은 교육 개혁 운동을 장려하기 위해 매사추세츠주 교육위원회를 설립하기로 의결했다.

1837년 호러스 맨은 교육위원회의 서기로 임명되면서 ‘최초의 교육부 장관’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호러스 맨은 미국의 모든 아동은 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민주주의의 번영을 위해서는 대중 계몽이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이에 공교육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깨닫고서 매사추세츠의 모든 학교를 시찰하며 현황 파악에 나섰다.

1843년, 그는 해외의 공교육 시스템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유럽으로 떠났다. 이후 그곳에서 발견한 보편적 교육 시스템을 매사추세츠에 적용해 모든 계층의 학생들에게 교육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다.

1930년 미국 공립학교에서 촬영된 교사와 학생들의 모습 | Hulton Archive/Getty Images

또한 호러스 맨은 학교가 학생들의 인성 함양에도 기여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에 도덕교육 프로그램을 정립, 시행하며 학생들이 미덕과 인격을 갖추도록 이끌었다.

호러스 맨은 미국 최초의 사범학교를 설립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여성의 사회 진출을 장려하기 위해 사범학교에서 여성 교육에 중점을 뒀다.

노예제 종식을 위한 투쟁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를 믿었던 호러스 맨은 노예제도 폐지 운동에도 앞장섰다.

1848년, 하원 의원에 선출된 그의 첫 연설은 노예제도 폐지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호러스 맨은 “노예제도의 연장보다 악한 것은 없다”고 천명하며 노예제 폐지를 주장했다.

1852년부터는 앤티옥대학교의 초대 학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859년 대학 졸업식에서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인류를 위해 승리할 때까지 죽는 것을 부끄러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