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제2의 ‘실리콘밸리뱅크’ 200곳 더 있다” 경고

한동훈
2023년 03월 21일 오후 4:40 업데이트: 2023년 03월 21일 오후 4:40

미국 내 200여 개 지역은행이 실리콘밸리 은행과 유사한 붕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던캘리포니아, 스탠퍼드대 등 4개 대학 연구원들은 최근 사회과학 분야 전자 저널인 ‘사회과학연구네트워크(SSRN)’에 공개한 논문(링크)에서 “예금자의 절반이 예금을 인출할 경우 파산할 수 있는 은행이 미국 전역에 186개에 이른다”고 밝혔다.

저자들은 논문에서 실리콘밸리은행이 현행 예금 보험 한도 등을 기반으로 운용 중인 레버리지를 기준으로 미국 내 모든 은행(약 5천 곳)에 적용한 결과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면서 3천억 달러(약 391조원)의 예금이 잠재적 위험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이달 실리콘밸리뱅크 파산 이후 미 정부는 은행 시스템에 대한 신뢰 추락을 막기 위해 예금자 보호 한도인 25만 달러(약 3억3천만원)와 상관 없이 전액 보증하기로 했지만,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을 완전히 진화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미 의회에서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10만 달러에서 25만 달러로 상향된 이후 15년 가까이 유지된 예금 보험 한도를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으나, 이는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

논문에서는 “은행 시스템 신뢰 하락으로 예금자들이 예금 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예금을 인출하는 사태가 이어질 경우 더 많은 은행이 파산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서 최근의 은행 자산 가치 하락이 예금 보험 한도 외 예금 운용에서 은행 시스템의 취약성을 매우 크게 증가시켰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또한 논문에서는 미국 은행들이 금리에 따른 변동성이 큰 국채와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채권 자산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오르면 자산 가치는 하락한다.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자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미래 수익의 현재 가치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은 고물가를 잡겠다며 지난 1년 동안 기준 금리를 크게 올려왔다. 이로인해 미국 시중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 가치 역시 위축돼왔는데, 논문 저자들은 이 역시 미국 은행 시스템의 불안 요소라고 지적했다.

논문 저자들은 “금리가 상승함에 따라 은행의 자산 가치가 하락할 수 있으며, 이는 크게 두 가지 시나리오를 통해 잠재적인 은행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은행의 부채가 자산 가치를 넘어서는 경우다. 은행들은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예금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이 경우 대출 고객들의 이자 상환 부담이 높아지면서 은행 대출의 부실화가 가속화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예금 보험 한도 이상의 예금을 보유한 고객들이 향후 발생할 손실을 우려해 뱅크런을 일으키는 경우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실리콘밸리뱅크 예금주에 대해 한도 없는 예금 보호라는 강력한 조치를 단행했지만, 연이은 은행 파산에 시장의 불안감이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뱅크 파산 전후로 2개 은행이 문을 닫았다. 지난 8일 뉴욕 소재 실버게이트 은행이 자발적 영업 중단을 선언했고, 12일에는 뉴욕 소재 시그니처 뱅크가 당국에 의해 폐쇄됐다.

파산설이 나돌았던 캘리포니아의 ‘퍼스트리퍼블릭뱅크’는 지난 16일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미국 내 대형 은행들이 총 300억 달러(약 39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긴급 수혈하겠다는 발표 이후에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이번 위기의 시발점이 된 실리콘밸리뱅크의 경우, 폐쇄 직전이었던 지난 9일 단 하루에만 420억 달러(약 54조원)의 예금 인출이 시도되는 등 미국 은행 시스템 전반에 대한 예금주들의 우려는 매우 광범위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수십 년 만에 최악으로 치달은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연준이 단행한 금리 인상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고금리 긴축 정책에 따른 미국채 가격 하락이 사태의 배경이 됐다는 지적이다.

한편,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지난 16일 상원 금융위 청문회에서 “우리 은행 시스템은 건전하다는 것을 거듭 확인한다”면서 “미국인들은 자신의 예금이 필요할 때, 언제든 인출 가능하다는 점을 확신해도 된다고 약속한다”고 말했다.

옐런 장관은 실리콘밸리뱅크 폐쇄 조치에 관해 “인출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문제 발생 경위에 대해 상세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 이 기사는 잭 필립스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