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비상인데 전기요금까지 오르나…“원전 확대해야”

이윤정
2022년 06월 8일 오후 7:51 업데이트: 2022년 06월 8일 오후 9:05

물가안정 vs 공기업 적자 감축…딜레마에 빠진 정부
전문가 “文 정부 ‘탈원전’으로 한전 부채 10조 원 이상 증가”
유럽, 에너지 대란에 탈(脫)탄소 정책 수정 ‘원전’ 유턴도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넘어선 가운데 3분기 전기요금이 인상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국제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한전의 적자 규모를 줄이려면 전기료 인상을 더는 미룰 수 없지만, 전기 요금을 올리면 연쇄적 물가 상승을 더욱 부채질할 수 있어서다.

6월 7일, 한국전력은 3분기 전기요금 결정 과정에서 연료비조정단가를 반영한 전기요금 인상을 산업통상부와 기획재정부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급격한 요금 인상을 방지하기 위해 전기료 최대 인상 폭을 전(前)분기 대비 kWh당 최대 3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연료비 조정단가를 kWh당 3원 올리면 4인 가구 한 달 전기요금은 평균 1050원가량 오른다.

지난 5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5%대를 돌파한 가운데 이 중에서도 전기·가스·수도 등 공공요금이 2010년 이후 최고치인 9.6%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기요금 인상이 자칫 물가를 더욱 자극해 물가 인상을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전력의 만성 적자는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유가가 하락한 2020년만 제외하고 2018년부터 줄곧 적자를 냈다. 지난해 한전은 사상 최대인 5조8600억 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고 올해 1분기(1~3월)엔 이를 뛰어넘는 7조7869억 원으로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전기 생산을 위한 연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원유, 액화천연가스(LNG) 등 국제 연료 가격 급등에 따라 올해 1, 2분기에 정부가 전기요금을 인상했어야 했다. 하지만 식료품, 교통 등 다른 요소의 연쇄적 물가 상승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로 두 차례 모두 동결했다. 연료비는 오르는데 전기요금은 유지되다 보니 한전이 전기를 팔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가 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인수위 시절 ‘전기 요금 원가주의 원칙’을 확정하고 향후 전기 요금을 국제 에너지 가격의 움직임에 따라 인상·인하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전 정부가 공공요금 인상을 인위적으로 억눌러온 것과는 다른 입장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5월 9일 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국전력의 대규모 적자를 언급하며 “올해 한전의 적자가 아주 많이 늘어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전기요금에 원가를 계속 반영하지 않으면 이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간다”며 “전기요금에 연료비를 연동하는 ‘원가주의’를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료비 연동제’는 전기요금을 분기마다 연료비 가격에 연동해 조정하는 제도다.

아울러 이 장관은 원전 확대로 한전의 적자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노후 원전 계속 운전 등을 통해 원자력발전 비중을 확대하면 한전의 전기요금 부담을 어느 정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단기간에 원전 비중 확대가 이뤄지기는 어려워 적당한 절차 등을 고려해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교협 “文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한전 빚 증가”

서울 시내 한 주택가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함께 원자잿값 급등으로 전력 구입비가 치솟았지만, 그간 전기요금 인상을 억누르면서 한전의 급속한 경영 악화를 초래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여기다 문재인 정부에서 ‘탈원전’ 추진 시 전기료가 폭등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가 나왔지만, 임기 내내 이를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2017년 5월 24일과 6월 2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탈원전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규모 추정’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에는 ‘대선 공약대로 탈원전을 이행할 경우 전기료 인상률은 2022년  14%, 2025년 23%, 2030년은 40%로, 2016년 대비 매년 2.6%씩 전기요금 원가 인상 요인이 발생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따라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전기요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추정됐지만,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산업통상자원부 보고 내용뿐 아니라 보고서의 존재 사실조차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 오히려 “2022년까지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없다” “2030년엔 10.9% 전기요금이 오를 것” 등 탈원전으로 국민에게 추가 부담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지속해서 말해 왔다.

앞서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지난 5년간 한국전력의 부채가 10조 원 넘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는 지난 2월 7일 ‘에너지전환 정책이 초래한 한전의 위기와 전기요금 인상 압박’ 토론회에서 이 같은 분석을 내놓으면서 “탈원전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안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0%까지 높이면 전기요금이 39~44%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탈원전 정책에서 벗어나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는 동시에 가동 중인 원전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운전을 추진해 원전 운영을 정상화할 경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전기요금 인상 폭은 2030년까지 14~22%에 그칠 것으로 에교협은 예상했다.

美·유럽, ‘친(親)원전’ 유턴도

프랑스 북부 쇼 지역의 원자력 발전소 | 연합뉴스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난이 가중되면서 전기 요금이 급등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이에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원자력 발전소 비중을 높이거나 가동 수명을 연장하는 등 에너지 정책을 수정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로의 급격한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유럽연합(EU) 내에서도 ‘탈(脫)탄소 모범국’으로 분류되는 스페인은 최근 1년 새 전기료가 5배 급등했다.

스페인 최대 일간 엘 파이스는 지난해 11월, 그 이유에 대해 “2050년까지 모든 전력을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탈탄소 정책과 연관이 깊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풍력, 태양열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급격히 높이고 석탄, 석유 등 화석에너지 비중은 줄이는 과정에서 주요 에너지원인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고, 기상 변화로 풍력 발전량이 전년 대비 20% 이상 줄면서 전력 대란이 발생해 전기요금이 인상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스페인은 2025년부터 2035년까지 전국에 설치된 총 7개의 원전을 모두 폐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스페인뿐 아니라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 흐름을 지속해온 유럽 곳곳에서 전기요금이 크게 오르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9월 전력 도매가격이 MWh당 540파운드(약 88만 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독일은 같은 기간 평균 도매용 전기요금이 MWh당 126유로(약 17만 원)로 연초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유럽의 에너지 가격은 연초 대비 400%가량 뛰어올랐고,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 1월 이래 유럽 전역에서 평균 3.5배 상승했다. 전력 대란을 겪고 있는 유럽 주요 국가들은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탈탄소 정책을 수정해 원자력 발전 비중을 다시 높이는 유턴 전략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탈탄소 정책 속도를 늦추고 원전 활용도를 다시 높이는 등 나라마다 전력 대란을 막기 위한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유럽에선 에너지 안보를 위해 ‘친(親)원전’ 카드를 다시 꺼내들며 정책 전환을 꾀하기도 한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핵심 대책으로 원전을 늘리기로 한 영국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에 17억파운드(약 2조7000억 원)를 투입하기로 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지난해 10월 27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영국은 전체 전력 생산량의 16%를 담당했던 13기의 원전 가운데 절반 이상이 2025년까지 폐쇄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북해의 풍력 발전량이 저조한 데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해 극심한 전력난을 겪으면서 신규 원전을 건설해 전력난 해소와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지난해 10월 12일(현지 시간) ‘프랑스 2030 투자 계획’을 통해 2050년까지 최대 14기 신규 원전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점진적 탈원전 기조였던 기존 에너지 정책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취임 후 원전 비중을 50%까지 줄이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2025년까지 탈원전을 선언했던 벨기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수급이 불안해지자 원자로 2기의 수명을 10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는 지난 3월 18일(현지 시간) “불확실한 시기에 확실성을 선택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벨기에 정부는 2003년부터 신규 원전 건설을 금지하는 등 탈원전을 추진해왔다.

물론 탈원전을 고수하는 나라도 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대표적이다.

미국도 원전 비중을 늘리고 있지만, 유럽과 달리 주로 화석연료로 인한 대기오염을 줄이려는 목적에서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4월 19일(현지 시간), 탈(脫)탄소 에너지 전략의 일환으로 원전 소유주와 운영자에 대해 60억 달러(약 7조4000억 원)에 이르는 노후 원전 자금 지원 프로그램을 개시했다.

한국원자력학회 에너지믹스특별위원회와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는 지난해 7월 발표한 ‘2050년 에너지믹스 분석 보고서’에서 “2050년 재생에너지 비율을 50%까지 늘리고 원전 13기를 새로 건설해 원전 발전 비율을 34% 정도로 유지하면 발전 비용은 41조~49조 원 증가하고, 1인당 전기 요금은 50~61% 오른다”고 예측했다. 반면 재생에너지 비율을 80%로 늘리고, 탈원전 정책을 추진할 경우 73조~96조 원이 추가돼 전기 요금 인상률은 91~123%로 뛰어오를 전망이다. 보고서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막대한 비용 수반으로 대폭적인 전기 요금 인상을 가져온다”며 “전력 시스템 비용과 탄소 배출량 측면에서 원전 확대가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