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약하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버림받은 ‘막둥이’ 사자는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황효정
2020년 06월 12일 오전 11:02 업데이트: 2022년 12월 14일 오후 3:18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어미에게 버림받은 아기 사자의 결말은 뜻밖에도 ‘해피엔딩’이었다.

최근 방영된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아프리카의 사냥꾼들(Africa’s Hunters)’에서는 아프리카 잠비아에 위치한 사우스루앙과 국립공원(South Luangwa National Park)에 사는 어느 사자 가족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두 마리의 수사자 형제가 이끄는 이들 사자 무리에는 아기 사자 여섯 마리가 있었다.

아기 사자들은 함께 어미의 젖을 먹고, 함께 어울려 놀았다. 그런데 녀석 중에 유독 작고 소심한 녀석이 하나 있었다. 막둥이였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형제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사이, 막둥이는 형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주로 곁에 앉아 지켜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녀석이었다.

녀석은 형 사자가 “놀자”고 다가올 때면 슬금슬금 뒷걸음을 칠 정도로, 용맹한 사자라기에는 굉장히 수줍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국 형 사자도 막둥이와 놀기를 단념하고 떠나버리고, 다시 바닥에 혼자 주저앉은 막둥이는 외톨이가 됐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천적인 하이에나의 울음소리를 듣고 다른 형제 사자들이 도망칠 때도, 너무 소심한 나머지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혼자 은신처에 얌전히 있던 막둥이.

하지만 막둥이는 의외로 의젓하고 똑똑했다.

어느 날 한가로운 오후, 겁 없는 다른 아기 사자들이 쉬고 있는 아빠 사자들에게 다가가 장난을 쳤다. 수사자들은 굉장히 성가셔하며 자식들을 쫓아버렸다.

그때였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뜻밖에도 막둥이가 몸을 일으켜 아비를 향해 용기를 내 다가갔다.

막둥이는 다른 형아들에 비해 확실히 신중했다. 낮잠이 든 아비를 귀찮게 하는 대신, 조심스레 곁에 몸을 뉘었다.

막둥이의 존재를 느낀 아비가 슬며시 눈을 떴다. 아비는 다른 자식들과는 달리 조심스러운 막둥이가 싫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비는 조금 전 다른 자식들을 난폭하게 내쫓았던 행동과는 달리 다시 편안하게 눈을 붙였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아비의 애정을 확인한 막둥이는 더는 아버지의 낮잠을 방해하지 않고 슬며시 물러났다.

리더의 환심을 사는 것이 여러모로 이롭다는 진리를 알고 있는 걸까.

이후 막둥이는 어미에게 다가가서 어머니의 앞발에 자기 발을 올리고 유대감을 확인하기도 했다.

소심하고 순진해 보이는 막둥이는 의외로 아주 영리한 녀석일지도 몰랐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그런 막둥이에게 엄청난 비극이 찾아왔다.

해 질 녁, 사자 가족은 다른 은신처를 찾아 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막둥이가 낮잠을 자느라 가족들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워낙 조용한 녀석이어서 그랬을까. 어미 사자, 아비 사자 모두 아무도 막둥이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완벽히 잊힌 막둥이는 홀로 남고 말았다.

잠에서 깬 막둥이는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엄마도, 아빠도, 이모도, 누나도, 사촌들도, 형들도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망연자실한 막둥이는 깽깽거리며 엄마를 불렀다. 하지만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이 없었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제작진이 촬영하는 내내 큰 움직임이 없던 막둥이는 처음으로 몸을 일으켜 열심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직접 가족들을 찾으려는 심산이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위험한 시간이었다. 아기 사자의 천적들이 슬슬 활동을 개시했다.

어두워진 밤, 막둥이는 숲속을 배회하며 끊임없이 엄마를 찾아 깽깽거리고 울었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우려했던 상황이 빚어졌다. 막둥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천적인 표범이 등장했다.

막둥이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얼음처럼 굳은 채로 땅바닥에 납작 붙어 있을 뿐이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그 순간, 하마가 나타나 표범을 쫓아버렸다. 물론 하마가 막둥이를 좋아해서 한 일은 아니고 그저 표범이 자기 영역에 들어온 게 싫었을 뿐이었다.

어쨌든 막둥이는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이었다.

하마는 막둥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건 말건, 그 앞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었다.

하지만 이런 행운이 되풀이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결국 막둥이는 다시 엄마를 찾아 나섰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이후 막둥이가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엄마가 허겁지겁 막둥이를 찾았다. 막둥이는 엄마를 향해 헐레벌떡 달려갔다.

반나절 만에 가까스로 재회한 모자.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막둥이는 숱한 고비를 넘기고 탈진한 상태였다.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어찌 된 일인지, 어미 사자의 눈에 수심이 가득했다.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문제의 당사자는 다름 아닌 막둥이였다.

웬일인지 막둥이가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어미는 막둥이가 절뚝이는 모습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막둥이 자신도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문제의 원인이 뭘까. 지난밤 혹시 척추나 다리를 다친 걸까. 그렇다면 심각한 문제였다. 불구의 사자는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어쩌면 단지 일시적인 탈진 상태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천만다행이었지만, 어느 쪽일지 알 수 없었다.

이윽고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막둥이가 젖을 먹으러 다가오자 어미가 이를 드러내며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엄마의 이상한 태도에 당황한 막둥이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기분 탓이겠지. 지난밤 소동으로 지치고 배고팠던 막둥이는 다시 한번 젖을 빨기 위해 다가갔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막둥이가 다가가자 어미가 짜증을 내며 일어섰다. 그 때문에 젖을 빨던 다른 형제 사자들까지 당황했다.

일단 너무 배가 고팠던 막둥이는 이번에는 이모에게 다가가 봤다. 막둥이가 다가가자, 이모도 매정하게 몸을 일으켰다.

이로써 엄마와 이모의 의도는 명확해졌다. 막둥이에게는 젖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막둥이는 할 수 없이 절뚝이며 구석으로 향했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얼마 후, 막둥이는 또 절뚝이며 열심히 가족들 뒤를 쫓아갔다. 가족들이 다른 거처로 이동을 시작했는데, 막둥이를 버려두고 떠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실수로 깜빡한 게 아니었다. 일부러 막둥이를 버렸다.

완벽하게 버림받은 막둥이. 막둥이는 열심히 두리번거리며 가족의 흔적을 찾았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이같은 행위는 사자들의 생존 전략이라고 매체는 설명했다. 다른 건강한 자식들의 양육에 집중하고자 가장 부실한 자식을 포기하는 행위다.

가엾은 막둥이는 포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막둥이는 몸도 약하고 겁도 많았다. 하지만 막둥이에게도 가진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였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다리를 저는 아기 사자, 막둥이는 기어코 가족들을 찾아냈다.

그러나 엄마는 간신히 찾아온 막둥이를 반기기는커녕 즉시 이동을 재개했다. 아무래도 막둥이가 나가떨어질 때까지 계속 옮겨 다닐 생각인 듯했다.

엄마를 찾자마자 바로 버림받은 막둥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막둥이는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엄마를 쫓아갔다. 그 와중에 다리는 더욱더 심하게 절뚝이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형제들 틈에 섞여 따라가려고 했지만, 이제는 아예 중심도 잡지 못하고 자꾸만 옆으로 쓰러졌다.

앞으로 달려가는 형들과 달리 막둥이는 자꾸만 옆으로 게걸음을 쳤다. 얼마 뒤 막둥이는 다시 홀로 떨어지고 말았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그러나 막둥이는 놀랍도록 침착했다.

마음이 급할수록 걷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은 걸까. 막둥이는 걸음 속도를 늦췄다. 그러자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막둥이는 서두르지 않는 대신,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가족들을 따라갔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마침내 막둥이는 다시 엄마를 찾았다.

다른 자식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던 엄마는 막둥이가 다가오자 다시 매몰차게 일어섰다. 막둥이를 노려보는 어미의 시선에는 적개심마저 어린 듯했다.

막둥이가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다시 다가가려 하자, 엄마는 가볍게 막둥이의 따귀를 때렸다. 더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였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막둥이는 이제는 체념한 듯 슬픈 표정이었다. 막둥이는 떨어져 앉아 엄마의 젖을 빠는 형제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식사 시간이 끝난 후, 사자 가족들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강둑을 내려가야 했다.

강둑은 아기 사자들에게는 절벽이나 마찬가지인 장벽이다. 어미 사자들은 막둥이를 제외한 다른 아기들을 입에 물고 조심스레 옮기기 시작했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역시나 이번에도 버림받은 막둥이는 발을 절면서도 열심히 쫓아갔다. 몸은 약할지 몰라도 의지만큼은 누구보다 강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막둥이가 강둑에 도착했을 때는, 다른 가족들은 이미 아래로 내려가고 없었다.

막둥이는 강둑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번만큼은 도저히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인지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가족들은 드디어 막둥이를 떨어뜨리는 데 성공한 걸까.

강둑 아래에서 가족들은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강물 속에서 이같은 광경을 지켜보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 있었다. 악어였다. 악어를 발견한 어미 사자들은 경계 태세를 갖췄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한편, 막둥이는 가족들을 향해 깽깽거리느라 악어를 보지 못했다.

악어는 그런 막둥이에게 탐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어미 사자들은 더욱 초조한 기색으로 악어를 노려봤다.

이때, 막둥이가 쓸데없이 용기를 냈다. 가파른 강둑 절벽을 혼자 힘으로 기어 내려가 보기로 한 것이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강물 속에서 악어는 막둥이가 빨리 굴러떨어지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 곁에서는 막둥이의 부모가 초조한 기색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막둥이는 강둑 절벽에 매달린 채 처량하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드디어 어미가 막둥이에게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는 막둥이를 구하려고 바짝 다가갔다. 엄마는 막둥이를 입에 넣고 조심스레 옮겼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아무리 포기하려 했던 자식이지만, 막상 눈앞에서 잡아먹힐 위기에 처하자 강한 모성애가 되살아난 것일까.

어느새 막둥이의 이모도 다가와 도왔다. 막둥이는 더는 외톨이가 아니었다.

엄마의 입에 대롱대롱 매달린 막둥이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모습이었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악어는 사냥을 포기하고 물속으로 몸을 숨겼다.

전날부터 하루 동안 물을 전혀 마시지 못한 막둥이는 드디어 가족들 곁에서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막둥이는 허겁지겁 물을 들이켰다.

실컷 물을 마신 다음에는 조심스레 발걸음을 뗐다. 막둥이가 향한 곳은 엄마 품이었다. 다시 젖을 빨아보려는 행동이었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엄마의 모성은 완전히 돌아왔다. 엄마는 막둥이가 혼자 마음껏 젖을 빨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물도, 젖도 실컷 마신 막둥이는 행복해하며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사자 가족들은 여전히 바빴다. 아직 이동할 거리가 남았기 때문이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막둥이는 다시 기운을 내서 부지런히 따라갔다. 다행히도 더이상 다리를 절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느렸다. 안간힘을 쓰며 걸었지만 가족들은 점점 멀어졌다. 이대로라면 또다시 뒤처질 게 뻔했다.

그때, 앞서가던 형제 중 한 마리가 문득 뒤돌아보며 발걸음을 멈춰 섰다.

멈춘 녀석은 그간 유독 막둥이를 챙겼던 형 사자였다. 막둥이를 기다려주는 걸까. 형 사자가 멈춰서자, 다른 가족들도 하나둘 발걸음을 멈추고 막둥이를 기다려주었다.

냇지오 와일드 ‘Africa’s Hunters’

용기를 얻은 막둥이의 발걸음은 한층 빨라졌다.

막둥이는 강력한 사자 무리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막둥이가 겪은 시련은 소중한 자산이 될 테다. 훗날 막둥이는 결코 이날을 잊지 않고, 드넓은 아프리카 초원을 호령하는 제왕이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