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멘텀 얻고 있는 ‘반(反) ESG’…“ESG는 위험한 가짜약”

한동훈
2022년 10월 13일 오후 2:07 업데이트: 2022년 10월 13일 오후 2:07

미 투자사, 화석연료·대기업에 자금 조달 주력
ESG, 기업에 이윤 대신 이념 따르도록 만들어”
“블랙록 등 글로벌 투자사, 기업에 ESG 의무화”
JP모건 전 CEO “화석연료 투자 중단? 지옥 가는 길 될 것”

“기후변화의 시대에 지속가능한 투자를 위한 대안”으로 떠오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운동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기반을 둔 자산운용사 ‘스트라이브에셋매니지먼트(이하 스트라이브)’가 ESG 투자(일명 지속가능한 투자)를 이끄는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9조 달러(약 1경1천조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블랙록은 세계 최대의 자산 운용사다. 블랙록은 미국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정치적 영향력에서도 세계 최고에 올라섰다.

미 재무부 부장관 월리 아데예모,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브라이언 디스가 블랙록 출신이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경제고문 마이크 파일도 블랙록 최고투자전략가를 지냈다.

블랙록은 세계 경제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ESG 투자를 이끌고 있다. 블랙록 최고경영자(CEO) 래리 핑크는 2020년 1월 각 기업 최고경영자들에게 보내는 연례서한에서 “기후 리스크가 곧 투자 리스크”라고 밝혔다(서한 링크).

그는 “기후변화를 고려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변경하겠다”면서 ‘지속가능한 투자’를 투자전략의 중심으로 삼아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블랙록의 투자를 받는 기업들에 환경보호 기준 준수를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블랙록 산하 ‘지속가능한 투자’ 펀드는 매출액의 25% 이상을 화석연료 발전에 의존하는 기업에 대한 채권과 주식을 매도하고, ESG 지수를 개발해 이를 근거로 기업들에 관한 평가 보고서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래리 핑크는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이 설립한 단체인 ‘클린턴글로벌이니셔티브’ 행사에 참석해 블랙록의 그린 에너지 전환 기여에 대해 연설했고, 클린턴 전 대통령의 찬사를 받았다.

래리 핑크는 이 행사에서 “지금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며 “우리는 기후 리스크가 곧 투자 리스크라는 증거를 매일 접하고 있다. 사람들도 이런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투자계의 모든 종사자들이 핑크 회장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무례한 간섭으로 여기는 기업가들도 나타나고 있다.

그 선두에 선 스트라이브는 지난 8월 미국 에너지 산업에 투자하는 첫 상장지수펀드(ETF)인 ‘스트라이브 미국 에너지 ETF(Strive US Energy ETF)를 출시했다(티커·종목코드 DRLL).

이 펀드는 출시 후 수주 만에 3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유치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를 “괄목할 만한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FT의 이러한 평가는 대부분 ‘반(反)ESG ETF’로 불리는 펀드들이 자산운용 규모를 2500만 달러 이상 유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관련 기사).

하지만 스트라이브 ETF가 성공을 거두면서 ‘반ESG’ 진영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스트라이브는 지난 9월 두 번째 ETF인 ‘스트라이브 500 ETF(티커 STRV)’를 상장한다고 발표했다. 이 펀드는 투자 포트폴리오가 미국 대기업으로 구성됐다.

스트라이브의 공동 창업자인 앤슨 프레릭스는 에포크타임스에 “앞으로 더 많은 ETF를 출시하겠다”며 “ESG 운동의 많은 단점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비판하는 측에서는 ESG 운동이 기업을 주주의 이익보다 정치적 아젠다에 이끌리도록 만든다고 지적한다. 반ESG 진영은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해 기업이 원래의 취지인 주주의 이익에 집중하도록 되돌리려 한다.

스트라이브 창업자들은 미국 3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스트리트가 기업이 주주의 이익이나 이윤 대신 ‘기후 변화’나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같은 이념에 시선을 돌리도록 함으로써 투자 운용사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판해왔다.

이들 3대 자산운용사는 총 20조 달러(약 2경8천조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며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하고, 기업의 이사진에도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 대기업도 이들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지난 6월 기준 3대 운용사가 소유한 엑손 모빌 지분은 21% 이상이었다.

반ESG 투자자들은 ESG 투자를 주도하는 3대 운용사가 내세우는 ESG 기준 때문에 미국의 에너지 기업들이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에 충분히 투자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또한 이를 올해 전 세계적 에너지 공급 부족과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대다수 국가에서 그 리스크에 대한 평가 없이 ESG 투자가 조용히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기업과 투자자, 주의회 및 연방의회 의원들, 주지사들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2018~2019년 블랙록에서 ‘지속가능한 투자’의 첫 최고운용책임자를 지낸 타리크 팬시는 ESG 운동을 “공익을 해치는 위험한 가짜약”에 비유했다(관련 기사).

ESG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제이미 다이먼 전 JP모건 체이스 CEO는 최근 화석 연료 산업의 필요성을 인정했다(관련 영상).

지난달 의회 청문회에서 다이먼 전 CEO는 ‘신규 석유·가스 채굴에 대한 자금 조달을 중단할 것인가’라는 민주당 하원의원의 질문에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는 미국이 지옥으로 가는 길이 될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청문회에서 “우리는 에너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각각 매일 1억 배럴씩 필요로 한다. 그리고 앞으로 최소 10년 동안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수요는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석유·천연가스 사용을 줄여서 발생한) 현재의 에너지 위기로 인해 그 대체품인 석탄 사용이 증가하면서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미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발간하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의 지난 3월 보고서에서는 ESG 펀드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ESG 투자 포트폴리오는 수익률이 낮았고, 노동·환경규제 준수 측면에서도 다른 포트폴리오보다 오히려 나쁜 결과를 보였다(관련 기사).

그런데도 ‘지속가능한 투자’에 대한 자본 흐름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영국 컨설팅회사 딜로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ESG 투자 자산은 올해 55조 달러(약 7경7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보고서). 또한 2024년까지 전 세계 전문투자기관이 관리하는 자산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 이 기사는 에멜 아칸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