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불매운동 광풍 속 나이키 공급업체 방문…언론은 쉬쉬

한동훈
2021년 03월 27일 오후 5:55 업데이트: 2021년 03월 27일 오후 5:56

H&M, 나이키 등 서구 브랜드에 대한 중국의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구 브랜드에 원자재를 공급하는 기업을 찾은 리커창 총리의 행보가 눈에 띈다.

전날 장쑤성에 도착한 리 총리는 26일 난징의 중국-독일 합작기업 바스프(BASF)의 화학공장을 찾아 현장을 시찰했다. 바스프는 나이키와 아디다스에 원자재를 공급하는 기업이다.

이날 중국 현지언론들은 리 총리의 장쑤성 방문 소식을 보도하면서도 바스프 공장 시찰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언론 보도는 리 총리가 난징에서 주최한 경제 관련 간담회 소식에만 집중했다. 리 총리가 바스프 공장을 둘러봤다는 내용은 정부 동향을 전하는 관영 웹사이트 한 곳에서만 간단히 전했을 뿐이다.

리 총리의 바스프 방문은 H&M, 나이키, 아디다스 등 서구 브랜드에 대한 여론몰이가 한창인 민감한 시기에 이뤄졌다. 사전에 조율한 방문일정을 미루거나 조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중국 공산당이 채찍과 당근 두 가지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채찍이 불매운동이라면 당근은 리 총리의 서구 브랜드 원자재 공급 업체 방문이다. 목적은 정권의 통치력을 유지하는 일이다.

H&M 등에 대한 불매운동은 미국과 영국, 캐나다, 유럽 등 서방 각국과 중국 공산당이 제재를 주고받으며 마찰을 빚는 상황에서 벌어졌다.

서방 각국이 신장 위구르 지역 강제노역과 소수민족 탄압에 가담한 중국 공산당 관리들을 상대로 제재를 가하자, 중국 공산당 역시 유럽연합(EU) 의회 의원들을 제재하며 맞섰다.

대중 행동에 있어 의견 불일치를 자주 보이던 미국과 유럽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유럽연합 소속 최소 9개 국가에서 각각 중국 대사를 불러다 항의하면서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지난 26일 중국-독일 합작기업인 바스프(BASF) 공장을 시찰하고 있는 리커창(李克強) 중국 국무원 총리(가운데). | 웨이보

H&M 등 서구 브랜드에 대한 불매운동은 바로 이 시점에서 촉발됐다. 지난 24일 공산주의 청년단(공청단)이 작년 9월 H&M의 신장 면화 구매 중단 조치를 문제 삼으며 비난 성명을 내자 25일 톈마오(티몰) 등 중국 쇼핑몰에서 H&M 제품들이 삭제됐다.

정부가 불매운동을 벌이면 국제 통상문제가 될 수 있다. 공청단의 불매운동 시작 시점은 공교롭지 않을 수 없다. 공청단이 중국 공산당의 청년조직이고 사실상 정부 기관임을 생각하면 중국 정부와 집권당(공산당)이 불매운동을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다.

이 상황에서 리 총리의 바스프 공장 방문은 하나의 제스처로 해석된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체면상 서구 브랜드에 대한 불매운동과 비난여론을 일으켰지만, 실제로는 그만큼 적대적이지 않다는 일종의 유화적 의미를 전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이 불매운동을 일으키고 있지만, 중국의 생산공장들도 적잖은 피해를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서구 브랜드 입장에서는 신장에서 강제 노역으로 생산되는 면화에 대한 글로벌 소비자들의 인식이 매우 좋지 않아 신장 면화를 계속 공급받는 것 역시 부담이다.

만약, 이 사건의 여파가 길어지면 신장 지역에서 생산되는 면화를 포함해 중국 면화와 관련된 외국 기업들이나 자본이 전면적인 철수를 고려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에서도 “불매운동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자성 목소리가 나온다.

웨이보 유명 평론가인 빅V는 “불매운동이 외국 기업 하나 보이콧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제조업 대국이다. 외국 기업 보이콧은 그 회사와 관련된 공급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 공급망에는 중국 납품업체들과 그 업체 근로자들도 있다. 조금 비약해서 말하면 바로 자신에 대한 보이콧이 될 수도 있다”고 일침했다.

나이키는 현재 중국에 107개의 공장을 갖고 있으며, 패션브랜드 H&M은 중국에서 350개가 넘은 생산업체와 합작해 1만명 이상을 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장농업대학의 위모 교수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으로 외국기업이 중국산 면화 전체를 배척할 경우, 중국 산업과 면화 노동자들이 입을 손실은 천문학적인 수치가 될 것”이라며 “불매운동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중국 기업과 노동자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홍콩의 의류 업계 전문가는 “이번 불매운동으로 외국기업들이 골치 아픈 문제를 피하고자 슬며시 중국산 면화를 배제할 경우 중국 내 의류 가격이 상승하고 현지 면화 조달이라는 이점이 사라져 생산라인도 중국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