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싱 철수, 中 권력과 자본 사이 긴장고조”

허칭롄(何淸漣)
2015년 10월 5일 오후 3:12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27

아시아 최대 부호 리카싱(李嘉誠) 청쿵프라퍼티홀딩스(長江實業地産) 회장의 중국시장 철수를 둘러싸고 중국에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또한 이번 사건으로 중국의 권력(정계)과 자본(재계) 사이에 긴장이 고조됐다.

지난달 12일 관영 신화사 계열 국책연구기관 ‘료왕싱크탱크’(瞭望智庫)에서 중국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국자위) 상업기술품질센터 뤄톈하오(罗天昊) 연구원이 ‘리카싱을 도망가도록 놔둬선 안 된다’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다.

이 논평으로 리카싱 철수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자 같은 달 21일 인민일보는 “리카싱이 어려움을 함께 할 수 없다면 만류할 필요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리카싱에 대한 험악한 분위기가 외국인 투자 유치에 도움이 안 된다는 속내였다.

이번 사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된다. 하나는 자본유입은 환영하되 자본유출을 적대하는 중국의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다는 점, 다른 하나는 권력과 자본의 대리전 양상을 띈다는 점이다.

중국자본과 홍콩자본의 밀월관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실시한 1979년 당시 개방은 곧 외국자본 유치를 의미했다. 이후 1990년대까지 외국자본 유치의 핵심은 홍콩자본이었고 그 다음이 대만자본이었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세계 각국의 화교자본으로 가능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당시 중국입장에서 홍콩자본은 당연히 외국자본이었다. 홍콩은 1997년 7월 중국에 반환됐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1978년부터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전까지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기 전이었거나 반환 초기였다.

홍콩의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적 특수성도 홍콩자본이 중국자본과 구분되는 요인이었다. 필자는 ‘중국 통치위기의 기원: 경제편’에서 홍콩의 지정학적 우위를 분석한 바가 있다. 중공 집권 후 홍콩은 중국의 국제 브로커가 됐다. 서방세계와 단절된 중국의 유일한 대외창구이자 외국자본과 기술을 들여오는 수출입 기지였다. 홍콩 상인들은 대중국 투자를 주도하며 중국의 대외개방을 이끄는 안내자 역할을 했다. 당시 중국이 유치한 외국자본의 70%가 홍콩자본이었고 이어 대만, 일본자본 순이었다.

상황은 2001년 중국의 WTO가입 후 달라졌다. 중국의 수출입 기지로서 홍콩의 위상은 점차 약화됐다. 역외금융업도 서서히 쇠퇴했다. 따라서 중국자본과 홍콩자본을 구분할 근거도 약해졌다. 그러나 중국은 홍콩자본을 여전히 외국자본으로 취급했다. 중공 이익집단에게 돈세탁과 자본도피의 창구가 필요했던 까닭이었다. 홍콩으로 유입된 중국 지하자금은 돈세탁을 거쳐 홍콩자본으로 둔갑했다.

필자는 ‘인민일보 10대 외자 출처의 비밀’라는 기고문에서 2013년8월12일자 인민일보 기사 ‘외국자본은 중국에서 이탈한 적이 없다’(外资并未大规模撤离中国)에 실린 그래프를 분석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따르면 중국으로 유입된 외국자본 중 홍콩에서 유입된 자금이 397억1500만 달러로 전체의 65%를 차지했다.

그러니까 중국 권력층인 중공으로서는 홍콩자본과 홍콩의 재벌기업이 피붙이 같은 존재였다. 자수성가한 홍콩 중견기업도 중공의 지원을 받고 성장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였다. 중국경제가 어려워지자 미련없이 철수한 리카싱에 대해 중국 권력층이 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이동을 보는 중국의 이중적 태도

최근 중국정부는 폭락하는 증시를 지탱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를 지나친 개입이라고 지적하면서 중국증시를 ‘사나운 개가 물고 있는 고기만두’에 비유했다. 중국정부를 사나운 개로 묘사하며 경계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리카싱을 도망가게 놔둬선 안 된다”는 논설은 불에 기름부은 격이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중국정부가 국제 자본이동을 통제하려 한다고 질타했다.

국제 자본이동은 투자•대출•원조•수출입•여신거래•외환거래•증권발행 및 유통 등의 방법으로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자본이 이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자본이동은 방향에 따라 자본유입과 자본유출로 나뉜다.

국제사회의 통념상 자본유입과 자본유출은 모두 자유롭다. 미국과 유럽각국 등 WTO회원국은 2001년 중국의 WTO가입을 승인하면서 추후 금융시장 개방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아무도 중국이 자본유입만 환영하고 자본유출은 적대하리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이전까지 그런 국가는 없었기에 뾰족한 대응책도 없었다. 현재 국제 자본시장은 중국에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허가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중국에서 자본이동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사회적 통념으로도 존재한다. 중국여론은 민간자본에 대해 원죄의식이 있다. 정경유착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민중은 대다수의 민영기업이 권력과 결탁해 무풍지대에서 성장하며 자산을 축적했다고 본다. 정부는 정부대로 특혜가 없었으면 민영기업이 성장하지 못했다고 여긴다. 이런 특혜 하에 중국 민영기업에서는 탈세•조세회피•회계장부조작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이런 부패풍조는 정부 재정이 탄탄하던 시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뒤를 봐주던 공직자가 부패혐의로 낙마하자 민영기업은 곧 위기에 봉착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쓰촨성과 산시성의 민영기업 줄도산 사태가 이렇게 발생했다. 권력과 자본의 밀월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정부의 국영기업 구조개혁 노력도 권력과 자본의 결별을 심화시키는 작용을 일으켰다. 2014년 중국 국자위는 ‘심화 국영기업 개혁방안’ 등을 발표하며 민영기업을 국영기업에 주주로 참여시켰다. 그러자 민영기업주 사이에는 정부가 부채투성이 국영기업을 민간에 떠넘기려 한다는 우려감이 확산됐고, 이는 해외투자 열풍으로 이어졌다.

이 여파로 중국 외화보유고의 급격히 감소했는데, 지난 8월 중순에는 며칠 사이 일일교역량이 최고 500억 달러에 달했다. 중국잡지 경제학인(经济学人) 9월28일자에서는 국외로 유출된 자금이 6천억 달러라고 보도했다. 중국당국은 외환거래를 통제하는 한편 주가조작 혐의로 주식 중개인 10여명을 체포했다. 권력과 자본 사이 갈등이 표면화된 사건이었다.

리카싱의 도망이 갖는 상징적 의미

중국 본토 민영기업의 중국이탈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리카싱의 중국시장 철수였다. 사실 중국인이 아닌 이상 중국경제에서 리카싱의 상징적 의미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리카싱은 홍콩기업인 중에서도 베이징 최고•권력과 가장 관계가 깊은 인물이다. 리카싱은 홍콩 재계대표격으로 중공 역대 지도자들과 만남을 이어왔는데, 특히 덩샤오핑과 1978년과 1990년에 한차례씩 만난 이후 권력의 비호하에 홍콩과 중국에서 승승장구했다.

리카싱이 누린 특혜는 중국원로 2,3세인 태자당보다 더 컸던 것으로 평가됐다. 이는 국자위 연구원이 쓴 논평 ‘리카싱을 도망가도록 놔둬선 안 된다’에서도 잘 드러났다. 논평에서는 “리카싱이 20년 동안 중국에서 얻은 재부(財富)는 단순히 사업으로 얻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 청쿵그룹의 성공은 진정한 시장경제에서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음대로 떠날 순 없다”고 강조했다.

중공 역대 지도자들이 리카싱에 걸었던 기대 역시 국영기업에 대한 기대와 비슷했다. 그러나 리카싱은 스스로를 민영기업주이자 외국 기업인이라고 여겼다. 중국경제에 위기가 닥친 몇 년 사이 리카싱은 홍콩과 중국에서 십조원이 넘는 자본을 철수시켰다.

리카싱에 대한 중공의 실망감은 인민일보에 잘 나타났다. 인민일보는 ‘역대 중앙 지도자들이 리카싱에게 무엇을 요구했나’라는 기사에서 “리씨 일가의 자본은 중국정부가 정책과 특혜로 벌게 해준, 이름표가 달린 자본”이라면서 “국가와 운명을 같이 해야 마땅하나, 리카싱은 국가경제가 어려울 때 돈을 밖으로 빼돌렸다. 이는 당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리카싱 역시 중국과 화해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9월17일 청쿵프라퍼티홀딩스가 발표한 2015년 연례보고서는 일단 중국시장에서 철수한 후 홍콩과 중국, 해외 핵심시장에서 지속적인 투자로 수익을 창출하고 부동산 자산을 줄여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하겠다는 투자전략을 담고 있었다. 중공과 완전히 손을 끊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리카싱은 자신의 성공비결을 잊지 않고 있었다.

사실 중국시장에서 철수하려는 홍콩자본은 모두 리카싱과 비슷한 문제를 떠안고 있다. 중국에서 돈을 벌려면 리카싱처럼 권력과 결탁하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도 이제 유효기간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쇠락조짐은 2009년부터 포착됐다. 몇 년 간 자본의 흐름을 종합하건데 드디어 철수가 시작됐다. 권력과 자본의 분리는 시진핑 정권의 특징인 동시에 중국경제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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