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싱의 도피가 신호하는 중국 경제의 몰락

허칭롄(何淸漣)
2015년 10월 15일 오후 5:04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27

홍콩의 억만장자이자 아시아 제일의 부자 리카싱이 최근 중국에서 자금을 철수한 이후, 중국 경기가 좋을 때크게 이익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둔해지자 떠나는 그를 향해 정부 언론은 비도덕적이고 배은망덕하다는 비난을 했다. 저명한 경제학자 허칭롄은 오늘날 중국에서 벌어지는 권력과 자본 사이의 마찰을 살펴봤다.

리카싱의 ‘도피’는 중국 내에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이 논쟁은 권력과 자본 사이의 싸움으로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중국에서 투자의 3가지 딜레마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첫 번째 딜레마는 홍콩 투자가 대외적인 이름에도 불구하고 항상 국내 자본으로 간주돼 왔다는 것이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할 때부터 1990년대까지 해외투자 전체에서 홍콩이 가장 중요했고, 대만이 뒤를 이었다. 홍콩의 지리적 위치와 특수한 경제적 역할은 중국공산당이 홍콩을 ‘해외’ 투자로 취급하게끔 한 정치적 고려사항의 일부였다.

그 전에 중국공산당이 서방으로부터 포괄적인 봉쇄를 당하고 있던 때에는 홍콩이 ‘대외창구’ 역할을 수행해, 해외 자본 및 기술의 유통체계 뿐만 아니라 수입·수출의 무역기지였다.

중국은 1979년 개혁개방을 시작했다. 홍콩 기업들은 주요 투자자뿐만 아니라 중국이 개방될 수 있도록 선도자 및 다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홍콩은 해외투자의 70%를 차지했으며, 대만과 일본이 뒤를 따랐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홍콩은 중국의 수출입항의 지위를 점점 상실했고, 역외 금융업은 서서히 약화됐다. 홍콩은 공산당 임원들이 자본을 해외로 옮겨서 배치하는 근거지로 일명 ‘돈세탁 창구’가 됐다.

1978년부터 2001년까지 공산당은 정치적 이유로 홍콩 투자를 해외자본으로 분류했다.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이나 그 직후였기 때문이다. 2001년 이후에도 홍콩 투자를 해외자본으로 간주하는 것이 공산당에게 이익이었다. 이익 단체들에 홍콩은 돈세탁에 중요한 경로였다. 오늘날에도 홍콩 최고 경영인들과 홍콩에서의 중국 투자는 공산당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돈의 유입은 자유지만 유출은 안 된다

두 번째 딜레마는 자본 흐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투자 자본의 유입은 자유이지만 유출은 그렇지 않다.

올해 중국공산당은 중국 주식시장 침체에 강제적으로 개입했다. 결국, 중국에서 돈을 빼냈다는 혐의로 사람들을 체포했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부적절한 금융시장 개입 및 자유로운 자본 흐름을 악의적으로 제한하는 행동으로 판단된다.

해외자본 흐름이란 국가 및 지역 간의 자본 유출입을 가리킨다. 투자·채무(債)·원조·구매자 신용·판매자 신용·외환차액(FX)거래, 증권발행 및 순환 등을 포함한다. 국경을 넘는 해외자본 흐름은 유입과 유출로 나누어진다. 중국이 WTO에 가입했을 때, 미국과 유럽 같은 주요 회원국들은 중국이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해외자본의 유입을 허락하도록 요구했다.

WTO 회원국 중에 해외자본 유입을 환영하면서 자본 유출을 제한하는 것을 환영하는 국가는 없다. 자본 흐름을 제한하는 중국공산당의 정책은 새로운 판례를 만들었다. WTO에는 이 정책에 대한 대항조치가 없다. 이는 해외자본에 관해 또 하나의 우려를 낳았다. 중국이 어느 날 자본 유출을 제한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다른 국가들은 중국이 완전한 자본 이동성 원칙을 시행해, 자유로운 자본 유입을 환영할 뿐만 아니라 유출될 수 있도록 하길 바라고 있다.

부자라는 원죄’(原罪)

세 번째 딜레마는 민간 투자 자본을 보유한 중국인의 신변이 위협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민간 자본은 늘 ‘원죄’ 취급을 받았다. 중국에는 민영 기업들이 권력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이해가 깔렸다. 고위직 임원들과의 관계로 만든 ‘중간영역’에서 비즈니스를 함으로써 성장해나간다. 그들의 부는 깨끗하지 못하다. 정부는 민간 부문의 ‘왕’들이 탈세 및 사기성 부기 등 정부가 허락해준 빈틈을 활용한다고 간주한다.

빈틈은 대단히 많다. 정부가 돈이 부족한 경우는 별로 없다. 민영 기업이 정부 고위직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가 돈이 부족하거나, 민영 기업들이 의존했던 정치인이 부패혐의로 체포되거나 은퇴할 경우, 자본가들은 더는 안전하지 못한 것이다.

중국은 사모 활성을 위해 2014년 국영기업 개혁안을 발표했다. 많은 민간 기업인들은 공산당의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하게 됐다. 중국을 떠나기 시작하고 다수의 해외투자를 하게 됐다. 이로 인해 최근 몇 달간 외화 보유액이 급격히 감소해 외환 통제가 강화됐다(이코노미스트지 9월 28일 기사에 의하면 6천억 달러 상당의 유출이 발생했다고 한다). 담보 브로커 수십 명이 돈을 국외로 빼돌린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자본과 권력 간의 관계는 극도의 긴장 상태에 달했다.

딜레마 3연타

리카싱은 세 딜레마 모두에 직면했다.

그는 왜 도망간 투자자로 배척당하고 있는가? 그가 보유한 투자 자본의 특성 때문이다.

리카싱은 홍콩 금융업자 중에 가장 성공했으며 중국 정부와 제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차례에 걸쳐 공산당 임원들과 만났다. 1978년과 1990년 두 차례에 걸쳐 덩샤오핑과 만나기도 했다. 중국에 완전히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으며 그 어떤 태자당(공산당 원로 자녀)을 능가하는 특권을 누린다는 것이었다.

리카싱을 비난한 기사는 이렇게 서술했다. “리카싱이 지난 20년간 중국에서 본 부당 이익의 본질을 보면, 경영처럼 단순하지 않다. … 부동산 자금은 완전히 시장경제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그가 원하는 대로 떠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리카싱의 자본은 명목상으로는 해외자본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내 자본이었다. 이는 특정 정책과 특권과 함께 당으로부터 제공된 것이었다. 따라서 리카싱의 자금은 정권의 몰락과 함께 무너졌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위기가 터지자 그는 자금을 회수하고 중국을 떠나버렸다. 이것은 정권을 매우 실망하게 했던 것이었다.

중국 언론에서 감히 언급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리카싱의 자금회수는 몰락의 시작을 신호한다는 것이다. 중국을 떠나는 홍콩 투자자는 리카싱 뿐만이 아니라. 홍콩에 있는 해외투자자본 중 65%는 중국 자본이다. 이러한 투자자본은 리카싱과 비슷한 방법으로 권력자의 도움을 받아 증가했다.

리카싱의 ‘도피’가 일으킨 극적인 반응은 투자 자본과 정치적 권력 사이에 증대하는 긴장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중국경제의 황금기의 종말을 신호한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