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 수낵, 영국 총리 취임 … 제79대 연합왕국 행정수반

최창근
2022년 10월 26일 오후 4:26 업데이트: 2022년 11월 1일 오전 10:07

리시 수낵(42)이 10월 26일, 영국 총리로 공식 취임했다. 집권 보수당 차기 당수로 내정된 수낵은 이날 찰스 3세 국왕을 알현하고 ‘정부를 구성할 것’을 명(命) 받아 제79대 연합왕국(聯合王國) 행정 수반이 됐다.

신임 총리는 각종 기록을 양산했다. 먼저 1721년 임명된 초대 총리 로버트 월폴(Robert Walpole)부터 제78대 리즈 트러스까지 ‘백인’ 일색이었던 역대 총리 중 최초로 유색 인종 출신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지난날 대영제국(大英帝國)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인도계라는 점이다. 수낵은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부모는 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인도인이다. 케냐 출신 아버지와 탄자니아 출신 어머니는 1960년대 영국에 정착했다. 아버지는 의사, 이민 1.5세대인 어머니는 약사이다.

10월 26일 영국 국왕 찰스 3세를 만나 조각을 요청받는 리시 수낵(우). | BBC.

만 42세(1980년생)인 수낵은 1812년 만 42세 1일로 총리에 오른 로버트 젠킨슨(Robert Banks Jenkinson) 이후 210년 만에 ‘최연소 총리’ 기록도 갈아치웠다. 젊은 보수당 당수로 주목을 받았던 데미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취임 당시 44세였다. 노동당 당수였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도 취임 시 44세였다.

수낵은 영국 국왕 찰스 3세의 첫 총리이다. 직전 리즈 트러스 총리는 국왕의 어머니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조각(組閣)’을 명령 받았다.

인도계인 수낵은 영국 첫 힌두교도 총리이기도 하다. 그는 2020년 하원 의원 서약 당시 기독교 ‘성경’이 아닌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 위에 손을 얹었다. 올해 8월, 보수당 대표 경선에 나섰을 때는 런던 힌두교 행사에 참석해 소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독교 국가 영국에서 전직 총리들은 성공회(聖公會·영국 국교회), 감리회 등 기독교를 믿었고 ‘파티 스캔들’로 사임한 보리스 존스 총리는 첫 가톨릭 신자 총리였다. 재임 시절 성공회 교회에 출석했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퇴임 후 가톨릭 교회로 돌아갔다.

수낵은 ‘갑부’ 총리이기도 하다. 2009년 결혼한 아내는 인도 IT 대기업 인포시스 창업자의 딸 악샤타 무르티이다.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의 영국 부자 순위에서 수낵 총리 부부의 올해 자산은 7억3000만 파운드(약 1조 1900억원)로 영국 부자 순위 222위에 올랐다. 대부분은 부인 명의 자산이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악샤타는 찰스 3세 영국 국왕보다도 더 부유한 퍼스트레이디이다.”라고 평가했다. 찰스 3세는 얼마 전 서거한 어머니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남긴 개인 재산 3억7000만 파운드(약 6025억원)를 상속받았다. 악샤타 무르티의 재산만 찰스 왕의 두 배에 가깝다.

리시 수낵과 아내 악샤타 무르티. | BBC.

세계 최초 입헌군주제하의 의원내각제 국가 영국은 한 해 동안 3명의 총리가 취임하는 ‘진기록’을 쓰기도 했다. 7월 보리스 존스 전 총리가 사임을 발표 한 후 보수당 대표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리즈 트러스가 9월 신임 총리로 취임했다. 이후 44일 만에 트러스가 사임을 발표한 후 10월 26일, 리시 수낵이 총리가 됐다.

리시 수낵은 비(非)백인 출신이지만 가정 환경, 성장 배경, 교육 경력 등에서 전형적인 보수당 엘리트 정치인 코스를 밟았다. 의사·약사 부모를 둔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고 저명 남성 사립 기숙 고등학교 윈체스터 칼리지 졸업 후 명문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정치학·경제학융합전공(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PPE) 과정을 졸업했다. 올해 창설 102주년을 맞이하는 PPE 전공은 영국 사회 지도층의 요람으로 불리고 있다. 전직 총리 중에서는 노동당 해럴드 윌슨, 보수당 에드워드 히스, 데이비드 캐머런을 배출했고 직전 총리 리즈 트러스도 PPE를 전공했다.

옥스퍼드대 졸업 후 미국 서부 최고 명문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한 수낵은 2001~04년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로 근무했다. 이후 2004~09년 더 칠드런즈 인베스트먼트 펀드 매니지먼트(The Children’s Investment Fund Management)라는 헤지펀드에 입사하여 고위급 임원을 지냈다.

금융권에서 경력을 쌓은 수낵은 2014년 총선에서 노스요크셔주 리치먼드 지역구에서 보수당 공천을 받아 당선되어 하원(서민원)에 진출하였다. 이후 2019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초선 의원 시절 보리스 존스 전 총리 지지자였던 수낵은 2019년 존스 내각 출범 후 재무부 수석 부(副)장관으로 입각했다. 그러다 2020년 재무부 장관으로 승진했고 2022년 내각 수장 총리(Prime Minister)에 올랐다.

영국 총리 관저 ‘다우닝가 10번지’ 앞에 선 리시 수낵. | AP.

수낵의 총리 취임에 인도도 환호하고 있다. 10월 25일, 인도 언론은 일제히 “수낵 총리 확정” 소식을 전했다. 인도 최대 일간지 ‘다이니크 바스카르’는 “수낵 총리가 과거 인도가 받은 모욕에 복수했다. 인도 독립 과정에서 윈스턴 처칠 전 총리는 ‘인도 지도자들은 매우 약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처칠이 이끌던 그 영국 총리는 인도계이다.”라고 전했다. 인도 유력 일간지 ‘다이니크 자그란’은 “수십 년간 인도를 지배했던 국가 지휘권이 지금 인도계 총리 손 안에 있다.”고 보도했다. 인도 방송 NDTV는 수낵 총리 확정 직후 “인도의 아들이 제국 위로 올라섰다.”는 자막을 송출하기도 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10월 25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수낵 총리는 영국과 인도를 잇는 ‘살아있는 가교(living bridge)’이다.”라며 “영국과 글로벌 이슈를 긴밀히 협력하고 ‘로드맵 2030’도 이행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