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는 공감의 예술가…”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내면을 생생하게 전달”

J.H.화이트
2019년 08월 24일 오전 10:03 업데이트: 2020년 01월 2일 오후 12:01

렘브란트, 주인공과 함께 느끼는 기쁨과 삶의 분투

현재 뉴욕 맨해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그림 찬미: 네덜란드 명작”을 전시 중이다(2018년 10월 16일~). 작품을 감상하고 막 나서려는데 한 여성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바로 그리스 신화 속 봄의 여신, 로마 이름 ‘플로라(Flora)’다.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그녀의 부드럽고 절제된 우아함과 20피트(약 6m) 떨어진 곳에서 말 그대로 나를 얼어붙게 만든 아우라였다.

이 그림의 따뜻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1654년 렘브란트 작품 ‘플로라’. 캔버스에 유채. 125x101cm 아처 헌팅턴이 그의 아버지 콜리스 포터 헌팅턴을 기리기 위해 1926년에 기증. 자료사진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그녀의 시선은 관중을 향하지 않는다. 오른쪽으로 살짝 돌려 누군가를 친절하게 초대하는 듯한 표정으로 눈높이를 응시하고 있다. 그녀의 상냥함은 친근하고 다정다감하다. 여신을 너무나 감동적이고 친숙하게 묘사해서 그녀는 마치 가족 구성원, 아니 배우자로까지 느껴진다. 사실, 미술사학자들은 플로라가 렘브란트의 죽은 아내 사스키아의 초상화에 바탕을 두었다고 한다.

플로라는 봄의 풍요로운 축복을 상징하듯 손으로 꽃을 건네주고 있다. 당신에게 직접 선물을 내밀지 않고 옆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겸손함을 발산한다. 그녀가 보내는 축복은 마치 “당신이 필요할 때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간접적이고 미묘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유럽 회화 부문 전시 큐레이터 아담 이커는 전화 인터뷰에서 “(렘브란트는) 여성을 그레코-로만(Greco-Roman) 동상처럼 완벽하게 그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렘브란트가 이상주의와 결별한 것이 가장 혁명적인 자질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플로라의 모습이 힘들어 보이지 않고 자연스럽지만, 그녀의 외모는 완벽하지 않다. 그녀는 눈 밑에 가벼운 지방 주머니가 있고, 이중 턱에 꽤 평범해 보인다. 당시 여성들처럼, 그녀는 풍성한 블라우스와 모자, 그리고 보석을 살짝 걸쳤다.

이커 씨의 전시회 음성 가이드에 따르면 “동시대인들은 렘브란트를 아첨할 줄 모르고 매우 비현실적이다라고 비판했다. 렘브란트가 당시에는 최고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가 죽을 때쯤에는 거의 파산 상태였다. 그는 정말 호평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 이상주의가 부족하고, 그림이 거칠다고 격분했다”고 들려주고 있다.

그러나 플로라에 담긴 정신은 시대를 초월한 것이며, 그녀의 고상함은 당신을 평온하게 감싸준다. 역설적으로 렘브란트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내면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진흙 위에 드러난 내면의 표현

렘브란트의 작품 ‘제라르 드 레레스 초상(Portrait of Gerard de Lairesse)’은 병을 앓고 있는 동료 화가를 그린 것이다.

이커 씨는 오디오 가이드에서 “드 레레스, 그의 외모는 특히 무너진 코와 움푹 들어간 눈에서 (건강) 상태가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질병으로 결국 실명에 이르고, 레레스는 화가에서 작가로 직업을 바꿀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레레스는 렘브란트의 팬이었지만, 고통스러울 만치 사실적으로 묘사된 자신의 초상화를 본 후, 렘브란트의 작품을 “캔버스 위의 흘러 내리는 진흙”이라고 표현했다.

렘브란트의 “제라르 드 레레스 초상”. 1665–67, 캔버스에 유채, 113 x 88cm. 1975년 로버트 리먼 컬렉션. 자료사진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커 씨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신체적 결함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길 원치 않는데, (사실적으로 묘사된 그의 초상화를 보며) 레레스에게 동정심을 가질 수 있다”고 오디오 가이드에서 전한다.

렘브란트의 묘사는 거리낌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가혹하거나 비열하지 않다. 그의 작품은 있는 그대로 표현된 것이 많다. 그렇다고 대상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가 본 것을 사실적으로 전달하려 했다. ‘제라드 드 레레스’의 경우, 약간의 당혹감이나 슬픔, 심지어는 불안감까지 엿볼 수 있다.

렘브란트는 주인공의 취약점을 그림으로 표현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다. 그는 불완전함과 고통도 묘사하고 있으며, 이것은 결국 보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렘브란트가 당신을 그림 속 주인공의 원초적인 감정과 진실로 친밀하게 이끌기 때문에, 레레스와 그의 병을 거부하거나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게 하지 않는다.

존경과 감탄

렘브란트의 또 다른 작품 ‘헤르만 도머(Herman Doomer)’는 주인공의 신체적 매력이 아니라 그의 내면적 바탕에 존재하는 현명함을 멋지게 보여주고 있다. 헤르만 도머는 17세기 암스테르담에서 유행했던 흑단 나무 작품을 전문으로 하는 고급 가구 제작자였다. 그의 아들은 렘브란트의 견습생이었다.

렘브란트 반 레인의 “헤르만 도머”. 1640년, 나무에 유채, 89x55cm. 하버마이어 컬렉션, 1929 하버마이어 부인 유증. 자료사진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가장 세밀하고 사실적인 그림으로 마치 사진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계로 만들어진 차가운 사진과 달리 렘브란트의 손은 도머에게 따뜻함을 불어넣었다.

“렘브란트는 그의 동료 장인과 예술가에 대해 진정한 존경심이 있었던 것 같다. 이 그림이 얼마나 멋지게 그려졌는지 보면 알 수 있다”고 이커 씨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작품은 19세기에 팔린 것 중 가장 비싼 네덜란드 그림이다. 그는 “(헤르만 도머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됨으로써 우리는 작품 수집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렘브란트는 도머의 눈가와 얼굴에 잔주름으로 그의 나이를 망설임 없이 보여준다. 도머가 수년간 가구 제작자로서 그의 기술을 다듬어 온 삶이 담긴 로드 맵처럼 잔주름으로 표현했다. 도머가 따뜻한 마음을 발산하기 때문에 미소 짓는 것만으로도 얼굴 인상이 두드러진다.

이커 씨는 “그것(헤르만 도머)은 렘브란트 초상화에서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거친 것을 정교하게 그려내고, 이 사람 중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전달해 줌으로써 그의 성격과 지성을 진정 느끼게 된다“고 평가했다.

J.H. 화이트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예술∙문화∙남성 패션 분야의 저널리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