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부분 동원령 선포’ 징집 반대 시위, 국외 탈출 이어져…

최창근
2022년 09월 23일 오후 5:07 업데이트: 2022년 09월 23일 오후 5:07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양상이 러시아에 불리해지면서 러시아 정부는 극단의 대책을 꺼냈다. 예비군 등을 강제 징병하는 ‘부분 동원령’ 선포이다. 러시아에서 동원령이 내려진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9월 21일 오전, 러시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텔레비전 연설에서 부분 동원령을 선포하고, 해당 법령 제647호에 서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방송에서 “동원 조치가 오늘부터 시작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이번 부분 동원령이 예비군 중 일부인 30만 명에게 적용된다.”고 발표했다.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프 러시아 하원(국가 두마) 국방위원장은 “부분 동원령 대상이 35세 이하 군 경력자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실상은 다르다는 것이 외신들의 보도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 인권단체 등의 소식통을 인용하여 “예비군이 아닌 남성들까지 징병되는 사례가 포착되고 있다.”고 9월 22일 보도했다.

러시아 반전 단체 프리부랴티야재단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부분 동원령 발표 후 24시간 동안 부랴티야 지역에서만 3000명이 징집됐는데, 이 중에는 군대 경험이 없고 36세 이상인 남성들이 포함됐다. 재단은 “현재 상황은 부분 동원령이 아니다. 남성들의 직장에까지 소집통지서가 날아들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이번 동원령은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닌 일부에만 적용되는 ‘부분’ 동원령이다.”라고 강조한 것과 상반된다.

각종 SNS에는 징집된 러시아 남성들이 가족과 ‘눈물의 작별 인사’를 하는 동영상과 사진이 확산 중이다. 징집 대상자들은 입대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어디론가 이동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하여 러시아 정부는 “학생은 동원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학생 신분인데도 통지를 받았다.”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학생 신분인 드미트리는 현지 언론 오스토로즈노노보스티에 “아침에만 해도 아무런 얘기가 없었는데 갑자기 동원소집 통지를 받았다. 오후 3시까지 여기(입영센터)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한 시간 반 정도 기다렸는데 입영 장교가 나타나더니 당장 떠난다고 한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속에서 동원령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 로이터 통신, 영국 공영방송 BBC 등은 “러시아 전국 38개 도시에서 동원령 반대 시위가 벌어졌으며 9월 21일 저녁까지 최소 1311명이 체포됐다.”고 인권단체 OVD-인포를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체포자의 다수는 수도 모스크바, 제2도시이자 제정(帝政)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나왔다. 모스크바에서는 시내 중심가에 모인 시위대가 ‘동원령 반대’ 구호를 외쳤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소규모 그룹이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이 포착됐다.

온라인상에서도 징집 반대 시위 참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확산 중이다. 수감 중인 러시아 반체제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도 변호인들을 통해 “이 범죄적인 전쟁이 더욱 악화·심화하고 있으며 푸틴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여기에 끌어들이려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고 밝히고 시민들에게 항의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러시아 검찰은 “시위에 참여하거나 시위에 합류하라고 촉구하는 이들이 최고 15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신의 신체를 고의 훼손하여 징집을 피하려는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다. 구글과 러시아 검색 사이트 얀덱스에는 ‘팔 부러뜨리는 방법’ ‘징병을 피하는 방법’ 등의 주제어 검색량이 증가세이다.

러시아 탈출 러시도 이어지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모스크바에서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튀르키예(터키), 아르메니아,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행 직항 항공편이 매진됐다.”고 전했다.

항공권 비교 검색 사이트 ‘구글플라이트’에 따르면 1주일 전 2만2000루블(약 50만원)이 조금 넘던 튀르키예행 편도 비행기표 가격은 7만 루블(약 160만원)까지 치솟았다. 러시아 모스크바를 출발해 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를 경유하는 일부 노선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며, 중동 두바이행 최저가 항공편은 러시아 근로자 월평균 임금의 약 5배인 30만루블(약 684만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육로를 통한 국외 탈출로도 막혔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5개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과 폴란드는 9월 19일 자정부터 러시아 관광객 입국을 불허했다. 또 다른 루트인 조지아행도 만원이다. 영국 BBC는 “러시아-조지아 국경의 베르흐니 라르스 국경 검문소에 5㎞에 이르는 차량 대기 행렬이 형성됐다.”고 현지 목격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또 다른 목격자들은 BBC에 9월 22일, 러시아-조지아 국경을 통과하는 데 7시간이 걸렸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혼란 속에서 러시아에서 징집 대상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분 동원령’에서 동원 대상 인력을 모호하게 규정한 것에 더하여 국방부가 자의적으로 대상을 확대할 여지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예비군 규모는 2500만 명, 부분 동원령 징집 대상은 30만 명이다. 부분 동원령 대상자만 해도 우크라이나 상비군 20만 명을 10만 명 상회하는 규모이다.

한편 러시아 국방부는 “부분 동원령이 발동된 지 24시간 만에 1만 명이 자원했다.”고 선전했다. BBC 등 서방 언론의 ‘러시아 탈출 러시’ 보도에 대해서는 허위·과장 보도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