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중국 하급자 되고 있어” 트러스 전 英 총리 대만 방문…中 “위험한 정치쇼”

최창근
2023년 05월 17일 오후 5:10 업데이트: 2023년 05월 25일 오후 3:27

리즈 트러스(Liz Truss) 전 영국 총리가 “러시아가 중국의 하급자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러스 전 총리는 5월 19일 덴마크에서 개최된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담(Copenhagen Democracy Summit) 참석 중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의 회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러시아와의 동맹 강화를 제한 없는 우정이라고 표현한 점을 지적하면서 “러시아가 중국의 하급자(Junior Partner)가 되고 있음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를 피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다름아닌 중국이다.”라고 설명했다.

트러스 전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폐막 직후 감행된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만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중국의 대만 침공 야욕을 부추길 것이다.”라며 “중국이 대만을 차지하게 되면 러시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트러스는 중국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재차 경고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중국이 세계에 대한 주요 위협이라고 생각한다. 서방 국가들이 나서서 중국이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과도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이 러시아의 중대한 군사 원조 요청을 거부하거나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와 자유 회복 지원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점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운명은 우크라이나 국민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결정해야 하겠지만 중국이 유럽 안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거나 대만 문제에 영향력을 갖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담은 덴마크 총리와 나토(NATO) 사무총장을 역임한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이 2017년 창설한 비영리단체 민주주의 연합재단이 주최하는 연례 회의로 주요 국가의 정치인들과 기업인, 학자 등이 참석한다.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담 일정을 마친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5일 일정으로 대만을 방문 중이다. 앞서 트러스 전 총리는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 총편집인 자밀 안데를리니와도 대담했다. 그는 대만 방문 목적에 대해서 “세계 각국이 대만과 교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대만 방문은 대만 정부의 초청에 응한 것이며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대만 정부가 대만의 미래와 국민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리즈 트러스는 대만 방문 일정 중 차이잉원 총통, 라이칭더 부총통 등 정부 고위층과 만날 예정이다.

5월 16일 타오위안(桃園)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의 영접을 받았다. 트러스는 “사실 전부터 대만을 방문하고 싶었지만 영국 정부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실천할 방법이 없었다. 대만이 무력 위협에 직면한 중요한 순간에 대만에 올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방문 소감을 밝혔다.

이어 “대만이 자유민주주의, 언론자유 천국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이러한 자유 사회는 현재 전례 없는 위협에 직면해 있다.”면서 “자유 전선에 서서 대만 정부·국민과 더불어 노력할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대만의 미래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만 정부도 환영 의사를 밝혔다. 류융젠(劉永健) 외교부 대변인은 5월 16일,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대만의 오랜 친구이다. 트러스 전 총리는 외무부 장관 재임 기간, 총리 취임 이후에도 대만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수 차례 강조하고 대만이 스스로 방어 능력을 확보하는 것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류융젠 대변인은 “트러스 전 총리가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대만 지지를 여러 차례 촉구해 대만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지역적 수준에서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도 했다.

총리 취임 전부터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의 후계자를 자임해 온 리즈 트러스는 총리 퇴임 후 행보에서도 유사하다. 이를 두고 “트러스 전 총리는 1996년대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이후 대만을 방문한 가장 유명한 영국 정치인으로 꼽힌다. 영국 집권 보수당 내에서도 대(對)중국 정책에서 매파적 입장을 대표한다.”고 영국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다만 대처 전 총리가 장기 재임 총리였던 반면 트러스는 역사상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5월 17일에는 대만 외교안보 싱크탱크 원경기금회(遠景基金會·Prospect Foundation) 주최 행사에서 ‘중국 정권의 공세에 맞서 대만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원해야 한다.’는 요지의 연설을 할 예정이다.

언론에 사전 배포된 연설문 발췌본에 따르면 “중국 정권의 공세에 맞서 대만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원해야 한다. 자유와 민주주의 없이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강조할 예정이다. 또한 중국 공산당 정부의 후원을 받는 공자학원을 영국에서 즉시 폐쇄하고 이를 홍콩과 대만이 운영하는 중국어센터로 대체하라고 촉구할 방침이다.

로이터는 “트러스 전 총리의 대만 방문은 영국과 중국 간 관계가 수십 년 만에 최악으로 치달은 가운데 나온 것으로 이 같은 연설이 양국 관계를 더 악화할 위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도 반발했다. 주영국 중국대사관은 5월 16일 대사관 홈페이지에 게시한 대변인 성명을 통하여 “트러스 전 총리의 대만 방문은 ‘위험한 정치쇼’라고 비판했다. 이어 ”영국에 위해만을 가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어 “우리는 영국 정치인이 자기 잘못을 바로잡고 ‘대만 독립’ 분리주의 세력을 비호하고 지지하는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환구시보는 5월 17일 자 사설에서 “영국 정부는 비정부 인사의 개인적 여행이라고 하지만 전직 총리이자 현직 하원의원이라는 트러스의 특수한 신분에 비춰볼 때 영국 정부와 분명하게 선을 그을 수가 없으며, 야기되는 후과와 대가는 영국 정부가 함께 감당해야 할 것이다.”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