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토니의 ‘돌아온 탕자’, 사랑과 용서로 죄를 감싸안다

류시화
2023년 03월 6일 오후 1:11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29

이탈리아의 ‘마지막 노장’으로 불리는 폼페오 바토니는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였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의 초상화를 그렸고, 종교적이며 우화적인 화풍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림을 의뢰한 인물에게 웅장한 역사적 배경과 복장을 입혀 세련되면서도 우아한 초상화를 탄생시킴으로써 당대 최고의 화가라 불렸습니다. 당시의 인물과 역사를 결부한 작품들은 전통 가치를 작품에 녹여냈습니다.

‘돌아온 탕자’

그의 수많은 작품 중 세상에 널리 알려진 작품인 ‘돌아온 탕자’는 성서의 한 일화를 그림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누가복음(15:11-31)에서 예수는 한 아버지와 그의 두 아들의 이야기를 언급합니다.

두 아들 중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여행하고 싶다며 유산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재산을 나눠줬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방탕한 생활을 하며 재산을 탕진하고 결국 본인의 잘못을 후회하며 아버지에게 돌아갔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속죄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귀환에 크게 기뻐하며 “나의 둘째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과 다름이 없다.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찾은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아들을 환영하는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첫째 아들은 이 잔치를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둘째 아들을 편애한다고 생각하며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네가 내 곁에 항상 있었던 것을 알고 있다. 내 것은 모두 네 것이다.”라며 첫째 아들을 위로하고 동생의 귀환을 축하해주길 간청했습니다

바토니와 ‘돌아온 탕자’

폼페오 바토니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돌아오는 순간을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무릎 꿇고 죄를 이야기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팔꿈치를 잡아 그를 일으켜 세우고, 입고 있는 망토를 당겨 아들의 벌거벗은 등을 감싸줍니다.

아버지와 아들, 두 명의 인물만이 등장한 작품에서 바토니는 몇 가지 기법을 통해 보는 이들의 시선이 아버지에게 초점을 두도록 했습니다.

그림 속 아버지는 아들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기에 아버지와 아들 간의 계층 구조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입은 옷은 화려한 색상을 띠고, 여러 가지 질감을 가졌습니다. 또한 금과 보석 등 여러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아들은 갈색 바지를 입고 상의는 벌거벗고 있어서 더욱 아버지를 돋보이게 합니다.

심지어 아버지의 피부도 아들보다 더 눈에 띕니다. 장밋빛을 띤 뺨과 손은 방황을 통한 고생으로 누런빛을 띠고 있는 아들의 피부보다 훨씬 생기가 넘칩니다.

전통적 가치 ‘사랑과 용서’

바토니의 그림 속 아버지는 단순한 아버지의 모습을 구현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행동과 포용은 ‘사랑과 용서’라는 전통적인 가치를 상징합니다.

세속적인 삶을 선망하며 많은 곳을 여행한 둘째 아들의 욕망은 현재 대부분의 젊은이의 공통적 문제입니다. 또한 아버지로부터 더 많은 애정과 지원을 바라는 첫째 아들에게서는 특권의식이 드러납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가 상징하는 ‘사랑과 용서’라는 가치에 서로 다른 방식을 통해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쾌락과 세속적인 가치를 좇은 둘째 아들은 전통적 가치에서 벗어나길 원했지만 결국 고통을 겪은 후 다시 사랑과 용서라는 전통 가치에 의해 이해받고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첫째 아들 또한 전통 가치의 울타리 아래에서 본인이 누리던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하는 파괴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결국 사랑과 용서라는 가치가 바탕이 되어야 본인이 더 나은 삶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의 회유에 귀 기울이고 바른 삶을 이어 나가게 됩니다.

전통 가치의 유지와 실천

전통은 그것을 따르고 지키는 이들에게 유익한 영향을 주고 그 가치를 증명하기 때문에 세대를 이어 지속되고 유지됩니다.

아버지와 아들 간에 대를 이은 용서와 이해, 사랑을 통해 전통 가치는 증명되고 계속해 전해지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도 계속해 사랑과 용서를 중요한 미덕으로 여기고 그것을 실천해 나가야 아름다운 가치가 계속 지켜지고 그로 인해 이로운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