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프랑스 등 유럽 9개국, 中 대사 초치…갈등 고조

한동훈
2021년 03월 25일 오후 2:39 업데이트: 2021년 03월 25일 오후 5:37

유럽연합(EU)과 중국 공산당이 갈등을 빚으며 점점 거리가 벌어지고 있다.

중국이 신장 위구르 탄압을 비판한 유럽 관리를 제재하자, 유럽 9개국이 각국 중국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미국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중국이 7년간 공들인 EU-중 투자협정도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독일, 프랑스, 덴마크, 벨기에,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네덜란드, 스웨덴, 이탈리아 등 유럽 9개국은 지난 23일(현지시각)을 전후로 각국 주재 중국 대사를 초치했다.

중국 공산당이 중국 내 인권탄압을 비판한 10명의 유럽 의원과 연구자, 4개 기관에 대해 입국비자 발급 거부와 거래 제한 등의 제재를 가한 데 따른 항의 차원이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지난 23일(현지시각) 주독 우켄 중국 대사를 향해 “우리 의원과 과학자에 대한 제재는 전혀 납득할 수 없다”며 “우리는 인권탄압을 제재하고, 베이징은 민주주의를 제재한다”고 질타했다.

전날 독일 외무부는 미겔 베르서 사무차관이 우켄 대사를 초치해 “중국이 EU 의회 의원, 과학자, 정부 기관 및 비정부기구를 대상으로 제재한 것은 부적절한 조치라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이들 9개국은 모두 미국의 동맹국이다. 최근 중국을 향해 강경해진 유럽 국가들의 변화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 시절,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이 유럽 국가들을 순방하며 대중 포위 동참을 호소했던 노력의 결실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과 영국, 캐나다,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들이 잇따라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탄압에 연루된 관리들을 제재하자 거칠게 저항하고 있다.

특히 EU의 중국 공산당 관리 4명에 대한 제재는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3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22일 유럽의 개인 10명과 4개 단체를 향해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해 중국의 주권을 해치고 있다”며 제재 방침을 밝혔다. 개인은 정치인 8명과 과학자 2명이며, 단체 4개 중 2개는 유럽의회 산하 소위원회다.

서방 국가들은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해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했다가 중국 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미국 비영리단체인 국제공화연구소(IRI)의 대니얼 트위닝 소장은 이번 소식을 접하자 “명예의 뱃지를 단 셈”이라고 논평했다.

안 린데 스웨덴 외무장관은 23일 트위터를 통해 중국의 조치에 항의하고 “오늘 국무장관이 중국 대사에게 전달한, 인권을 향한 스웨덴의 지지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클레망 본 프랑스 외교부 유럽 담당 국무장관은 같은 날 현지 라디오 인터뷰에서 중국을 향해 “유럽도 프랑스도 호구(doormats)가 아니다”라며 날을 세웠다.

본 장관은 주불 중국대사 루사예를 향해 “대사로서 상대국에 초치를 당했으면 마땅히 곧바로 해당국 외무부를 방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루사예 대사가 22일 초치를 당하고도 다음 날 하루 늦게 나타난 것을 비판하는 발언이었다.

루 대사는 최근 프랑스 의원들이 대만 방문을 예정하는 등 대만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자 “방문 계획을 취소하라”고 압박하고, 프랑스의 싱크탱크 연구원을 향해서는 ‘작은 불량배’, ‘미친 하이에나’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루 대사의 거친 언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프랑스의 반응은 한층 강경해져 있었다.

장 이브 르드리앙 외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유럽의 선출 공무원과 연구원, 외교관을 대상으로 한 중국 대사관의 언행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우리는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사람들을 언제 어디서나 지지한다”고 전했다.

올해 초 표결이 예정된, 중국이 EU와 체결한 포괄적투자보호협정(CAI) 비준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일부 유럽의회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중국은 7년에 가까운 협상 끝에 지난해 말 EU 27개국과 CAI 체결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이를 통해 경제적으로 양보하는 대신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 포위망에서 유럽을 떼어놓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신장 위구르 문제로 제재를 주고받으며, 거친 언행으로 유럽의 반감을 사면서 수년간의 노력이 수포가 될 처지에 놓였다.

사나워진 중국의 모습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외 전략 변경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장 위구르 수용소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독일 학자 아드리안 젠츠는 지난 24일 트위터에 “중국은 인권침해를 단호하게 부인하지 않고 있으며, 이제 손을 댈 수 없게 됐다고 여긴다”고 썼다.

젠츠는 “베이징의 전략은 비판 목소리를 내는 모든 이들을 가혹하게 징벌해 중국의 만행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대를 간단히 진압하고 잠재우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본부에서 가진 동맹국들과의 회담 후 “중국의 공격적인 행동이 강력한 국제동맹의 중요성을 고조했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동맹국에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서방 민주국가들을 약화하려 하고 있다”고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중국의 제재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이번 제재는 우리가 확고히 서고, 함께 서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괴롭힘이 효과가 있다는 메시지를 보낼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