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특집] “한국 진보정당은 주사파라는 악령에서 벗어나야” 주대환 대표

제20대 대선 '대한민국의 미래를 묻다' ⑤

최창근
2022년 02월 9일 오후 7:49 업데이트: 2022년 03월 26일 오전 8:49

에포크타임스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묻다’ 대선 특집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대한민국과 한반도의 향후 5년의 운명을 판가름할 차기 대통령이 제시해야 할 비전, 새로운 정부가 수행해야 할 국정과제를 각 분야 전문가의 고언과 해법을 통해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 다섯 번째 순서로 주대환 제3의길 대표(발행인)를 만나 한국 진보 세력의 이념 문제, 대한민국 현대사 역사관 문제, 한국 보수와 진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주대환 제3의길 대표는 학생운동을 거쳐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1973년 서울대 종교학과 입학 이듬해인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1979년 부마민주항쟁으로 여러 차례 수감됐다. 1987년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과 함께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결성해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혁명을 꿈꾸기도 했다. 주대환, 황광우가 지도부를 구성했고 노회찬은 조직부장을 맡았다. 당시 인민노련은 노동운동 최대 지하조직이었다.

‘혁명’을 꿈꾸던 노동운동가 주대환은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의 몰락을 지켜보며 전향하게 된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제도권’ 안에서 점진적인 개혁을 통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1992년 한국노동당 창당준비위원장, 2004년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이후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플랫폼 자유와 공화 의장, 대안언론 제3의길 대표(발행인) 등을 맡아 합리적 진보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 진보세력은 주사파라는 악령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대환 대표는 오늘날 한국 정치세력에 어떤 진단을 내릴까? 2월 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주대환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원조 좌파 노동운동가 “한국 진보는 이해할 수 없는 집단”
주사파라는 악령에서 벗어나야
수정주의 역사관 가진 좌파가 저주한 대한민국 눈부신 발전
진보정당은 영국 노동당, 독일 사민당 지향해야
보수정당은 미국 공화당, 영국 보수당 벤치마킹 필요

노동운동가로서 평가하는 한국 노동계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이른바 ‘학출(대학생 출신 노동운동가)’이라서 노동운동을 주도적으로 했다 할 수는 없습니다. 현장에서 오래 활동하고 지켜 본 사람입니다. 왜 이런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평등 가치를 실현하고자 시작한 노동운동이 아이러니컬하게도 평등 가치 실현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주대환 대표가 이러한 지적을 한 배경에는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구분돼 동일 노동 조건 하에서 임금·복지·노동 조건 면에서 차별이 이뤄지고 있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자리한다. 이어지는 주대환 대표의 말이다. “이른바 양대 노총으로 불리는 한국노총·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차별을 비롯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확대시키고 있습니다. 슬픈 현실이죠. 그중 대기업·공공부문 노조가 다수 가입돼 있는 민주노총이 이를 더 고착화 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속에서 동일 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임금이 하도급-재하도급 과정을 거치면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1/2, 1/3 수준까지 차이 나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오늘날 민주노총 등은 이러한 상황을 유지 시키려 하며 개선하려는 노력을 무력화 시키고 있습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이 노동시장 이중 구조에 책임

스스로 노동운동의 주역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주대환 대표는 지난날 인천·경기지역 노동운동계의 핵심 이론가·활동가였다. 그는 노동운동을 기반으로 ‘혁명’을 꿈꾸기도 했다고 젊은 날의 활동에 대해 고백했다. 주대환 대표는 1987년 작고한 고(故) 노회찬 정의당 국회의원과 더불어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약칭 ‘인민노련’)’창설의 주역이었다. 당시 ‘김철순’이라는 가명으로 혁명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다.

2018년 작고한 노회찬 정의당 의원과 주대환 대표는 1980년대 노동운동을 함께한 동지였다.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세요.

“1987년 노회찬 의원 등과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창설했습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같이 활동하던 분 중 한 사람이었죠. 노동운동을 통해 정치·사회 개혁을 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려 했습니다. 그러다 1989년 6·4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민주화·개혁을 요구하는 시민·학생들을 중국 당국이 무력으로 진압했죠. 그러다 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민주화 됐습니다. 결정적으로 1991년 12월, 공산주의 맹주 소비에트연방(소련)이 해체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사회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혁명을 꿈꿔왔던 생각이 바뀌게 됐습니다.” 주대환 대표를 비롯한 당시 활동가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차용한 배경에는 당시 한국 현실을 바꾸는데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론이 주효했다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재5공화국 군부 독재 체제로 이어지는 민주주의가 후퇴한 시기였다. “1989년 1월 1일 부로 전면적인 여행 자유화가 실시되기 전까지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를 방문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해당 국가들에 대한 정보도 제한적이었고요. 정보가 없다 보니 이들 나라의 현실을 제대로 알 수 없었습니다.” 이후 사회주의 몰락이라는 역사의 현장을 지켜 보면서 주대환 대표는 전향하게 된다. ‘혁명’이 아닌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개혁’을 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1991년 9월, ‘회사의 노동자 정당 건설 전략에 재고를 요청함’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해당 글은 종전 인민노련이 지하조직운동을 청산하고 법적 노동자 계급 정당 건설로 방향을 전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0년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 몰락을 지켜보며
혁명이 아닌 제도권 내 개혁 노선으로 전향

한국노동당 창당에 일조하셨습니다.

“군부 독재 체제 문제, 빈부 차이 문제 해결 등을 위한 전략·전술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차용했습니다. 그러다 사회주의 국가 몰락을 보면서 다시 한번 이론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론이 가진 근본 문제를 인식하게 됐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초점을 맞춘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해서도 재인식하고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되고 기존의 혁명 노선에서 제도권 내에서 점진적 개혁으로 방향을 수정하게 된 결과 탄생한 것이 한국사회주의노동자당(약칭 ‘한국노동당’)이다. 주대환 대표는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3권 분립, 다당제 민주주의, 언론의 자유 등을 핵심 가치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제도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1991년 인민노련 전체 회원 600명이 치열한 내부 토론을 거치고 투표를 실시하여 새로운 노선을 채택했습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지하 노동조직을 영국 페이비언협회(Fabian Society)가 주창한 점진적 사회개혁을 표방하는 노동계급 정당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영국 노동당(Labour Party)을 모델로 해서요. 그래서 탄생한 것이 1992년 창당한 ‘한국노동당’입니다.” 주대환 대표는 한국노동당 창당에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해체와 재창당도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1921년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팔미로 톨리아티(Palmiro Togliatti) 등이 창당한 이탈리아공산당은 1991년 2월 3일, 자진 해산하고 좌파민주당(Partito Democratico della Sinistra·PDS)으로 거듭납니다. 전성기 당원 100만 명 이상을 보유했던 비공산주의 국가 중 최대 공산주의 정당이 스스로 ‘공산주의’라는 이름과 ‘혁명’이라는 투쟁 방법을 버리고 민주주의 제도권 내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겠다 선언한 것은 엄청난 의미가 있었습니다. 한국도 영미식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알려 준 셈이고요.” 1992년 창당한 한국노동당은 민중당과 합당해서 사라졌다. 이후 이를 기반으로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됐고, 민주노동당은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주대환 대표는 노동자 정당으로서는 최초로 원내 진출한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했다.
주대환 대표는 노동자 정당으로서는 최초로 원내 진출한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 방법은 어떤 게 있다고 보나요?

“4차 산업 혁명 등 시대 환경 변화에 발맞춰 노동환경도 바뀌고 있어서 종전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양분됐던 노동 환경도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하나의 단순한 카테고리에 넣기에는 다양한 고용·노동 형태가 생겨났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정규직은 좋고 비정규직은 나쁘다는 식의 이분법적 접근은 시대착오적이기도 하고요. 이 속에서 무조건 비정규직을 없애고 정규직화한다는 식의 문제 해결 방법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서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생산성 대비 높게 누리는 임금·복지 혜택을 양보해서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사용하는 방법 등을 강구해야 합니다.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의 연공서열식 임금·복지 체계를 바꾸어야겠죠. 일부 대기업과 공기업 노동자들은 고용 안정에 더하여 고임금에 복지 혜택까지 누리는데 이들을 제외한 절대 다수의 중소기업 노동자, 자영업자가 처한 환경은 가혹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주대환 대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의 해법으로 ‘동일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정규직 노동자보다 고임금을 지급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주장한다. “동일 노동 조건인데 현재처럼 임금 격차가 나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오히려 비정규직에게 월급을 더 줄 경우 노동자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생기니 좋은 점도 있다고 봅니다. 정규직으로 안정적으로 일할 것이냐, 비정규직이지만 좀 더 자유롭고 더 많은 임금을 받을 것이냐 하는 선택의 여지가 생기는 거죠.” 주대환 대표는 노동문제는 전 국가적 합의가 필요한 대표적인 분야라는 점에서도 동의했다. 정치적·사회적 대합의가 필요하며, 이를 추동하기 위해서는 정치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인상, 소득주도 성장,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을 평가한다면요?

“지난 문재인 정부 5년의 최대 과오는 노동개혁, 연금개혁에 전혀 손을 대지 않은 것이라 봅니다. 역대 정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 분야에 손을 댔죠. 박근혜 정부도 공무원 집단의 반발을 각오하고 공무원 연금개혁을 밀어붙였습니다. 반면 현 정부는 노동·연금 개혁은 손도 대지 않은 채 되려 공공 부문 고용만 늘렸죠. 이는 추후 역사의 냉정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평가한 주대환 대표는 노동개혁과 공공부문 연금개혁은 ‘제2의 농지개혁’과 같다며 이들 부문 개혁이 이뤄져야 대한민국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 대타협 필요
정치 리더십으로 풀어야

노동문제 이야기로 시작한 대담은 역사 문제로 흘러갔다. 지난날의 좌파 노동운동가 주대환 대표는 2015년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 책을 내고 역사관 논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논쟁의 한가운데는 1948년 8월 15일 공식 성립한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보수 우파에서는 조선-일제강점기를 거쳐 새로운 대한민국이 ‘건국’됐다 주장하고 반대진영에서는 ‘건국’이 아닌 ‘정부 수립’이 맞다고 주장하는 형편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두고 정부 수립대한민국 건국을 두고 각 진영마다 입장이 달라집니다. 어떤 것이 맞나요?

“이는 논쟁거리도 아닙니다. ‘건국(建國)’이 맞습니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는 제헌국회에서 투표로 결정한 것입니다. 고려공화국 등 다른 대안을 물리치고 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로 결정된 것이죠. 건국이 맞는 이유는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947년 11월, 제2차 유엔 총회의 결의에 따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이 결성되고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 하에 1948년 제1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가 치러지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됐습니다. ‘건국’에 대해서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 문제 등을 거론하며 건국이 아니라 정부 수립이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이름 그대로 ‘임시정부’입니다. 1948년 출범한 정부가 임시정부의 강령을 계승한다고 볼 순 있지만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자체가 요건을 갖춘 정부였던 건 아니라 봅니다. 망명정부로 볼 수도 없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정치적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현행 헌법 전문(前文)에 명시된 1919년 3·1운동도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실질적으로 새로운 나라가 만들어진 것과 비교할 수는 없죠. 1392년 조선왕조가 개국 후 4대 국왕 세종 시절에 만든 책 중 하나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잖아요. 이씨 왕조의 통치 정당성 확립 차원에서 만든 것인데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 태조(太祖), 태종(太宗) 등 세종(世宗)의 6대조를 해동육룡(海東六龍)이라 하여 칭송하잖아요. 그중 목조~환조까지는 원래 왕이 아니었는데, 태조 이성계의 조상이니 ‘추존’하면서까지요. 헌법 전문에 언급된 3·1운동이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문제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의 기원을 이를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이죠.” 이렇게 이야기한 주대환 대표는 잦은 헌법 전문 개정 문제도 지적했다. “헌법 전문을 왜 그렇게 자주 바꾸는지 모르겠습니다. 헌법 전문은 헌법 제정 목적,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 나아가려는 방향을 담습니다. 따라서 때로는 본문보다 더 중시되기도 합니다. 미국과 독일의 경우, 여러 번 개헌을 하면서도 전문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독일은 1949년 제정 이후 40여 차례 개헌을 했습니다. 다만 전문에 손을 댄 건 단 한 차례입니다. 통일 직후였죠. 종전 ‘통일을 성취할 사명’을 ‘통일을 완성했다’로 고친 게 다입니다. 헌법을 고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은 개별 조항들과는 달리 건국의 과정과 정신을 밝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손을 대는 것은 후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여러 가지 이유로 헌법 조문들은 바꾸더라도 전문은 바꾸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주대환 대표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인촌 김성수(좌)와 우남 이승만(우). 주대환 대표는 1948년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건국’ 됐으며, 이승만, 김성수, 조봉암 등을 건국의 아버지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에서 어떤 의의를 가지나요?

“이승만 대통령은 1895년 배재학당에 입학해 미국 선교사들에게 영어와 신학문을 배웠습니다. 그때부터 새로운 나라를 꿈꾸기 시작했죠. 당시 입헌군주제를 주장하여 대한제국의 역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국체(國體)를 바꾸려 했던 것이죠. 수감 중이던 1904년 한성감옥에서 ‘독립정신’을 집필하기도 하고요. 이승만은 명확한 비전과 시대 정신을 읽는 능력을 지닌 정치가였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새로운 나라의 국체는 민주공화국이 돼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이를 실현했습니다.” 이렇게 평가한 주대환 대표는 이승만 대통령의 과(過)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가로 성공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독재자가 됐습니다. 이상적인 이야기이지만 1956년에 대통령 직을 끝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 그때부터 공보다는 과가 더 많죠. 농지개혁을 주도했던 조봉암을 1959년 간첩죄를 적용하여 사형시켰습니다. 사실, 이승만과 조봉암은 연배로 따지면 아버지와 아들 뻘입니다. 20살 넘게 차이 나죠. 달리 말해 정치적 적수가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무리하게 개헌을 하여 대통령 임기를 연장하려 하고 결국 부정 선거를 치러 4·19혁명으로 하야하게 됐습니다.”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주대환 대표는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저평가된 업적으로 농지개혁을 꼽았다. “농지개혁은 분명 인정해야 할 업적입니다. 당시 국제 정세나 상황을 종합 고려하면 농지개혁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해도 이를 성공적으로 해낸 것은 평가해야 합니다. 농지개혁을 하지 않았으면 한국은 이렇게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인은 이승만 대통령보다 김구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높게 평가하는 듯 하다’는 질문에 대해서 주대환 대표는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키며 독립운동을 이어나간 공이 있다”면서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구 선생 업적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존경해야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분은 대한민국 건국에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논하면서 김구 선생을 언급하는 게 난센스죠. 조선왕조 건국 이야기를 하면서 정몽주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 생각합니다.” 주대환 대표는 대한민국 역사를 바라보는 진보 세력이 일종의 정신분열 증상을 일으키고 있다고도 했다. 그 중심에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 ‘8억 인과의 대화’ 등 이른바 운동권의 교과서 역할을 한 책과 이에 기반한 역사관이 자리한다고 지적했다.

1948년 새로운 나라 대한민국 건국
김구는 존경해야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에는 역할 못 해

오늘날 관점에서 해방 전후사의 인식등 이념 서적을 평가한다면요?

“1980년대 ‘해방 전후사의 인식’ 등의 파급력은 엄청났습니다. 민주화 진영에서는 정부의 반공(反共) 교육에 대항하는 일종의 ‘대안 교과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새로운 시각, 넓은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게 해 주었다 판단했습니다. 다만 그 후로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죠.” 주대환 대표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 등에는 기본적으로 마오이즘(마오쩌둥주의)이 깔려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1권이 1979년도에 나왔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 되고 30년이 지난 시점이죠. 그 후로 다시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 이제는 역사관을 바꾸어야죠.”

해방 전후사의 인식, 전환시대의 논리, 한국전쟁의 기원, 철학 에세이 등은 1980년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념서적이다. 당시 새로운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를 인식하게 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른바 ‘운동권’의 이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어떤 면에서 역사관을 바꾸어야 하나요?

“이들 책은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을 저주합니다. 태어나지 말아야 할 나라, 친일파가 만든 나라 등으로요. 어떤 책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논하면서 농지개혁에 실패해서 지주-소작인 관계가 여전히 농촌사회에 존재한다고도 합니다. 기가 막힌 일이죠. 대한민국만큼 농지개혁에 성공한 사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요. 연구를 더 해야 합니다.” 실제 주대환 대표의 말대로 한국은 대만과 더불어 농지개혁에 성공한 사례이다. 2003년 세계은행(Wolrd Bank)이 발간한 정책 연구 보고서는 한국과 대만을 토지개혁 성공 사례로, 필리핀을 실패 사례로 꼽으면서 1950~60년대 한국의 토지 소유 평등 지수를 세계 1위로 평가하기도 했다.

“토지 개혁 이후 한국의 자영농들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평균 3000평 정도 토지를 가졌는데, 이걸 가지고 열심히 농사지어서 자녀들 공부 시키고 했죠. 그 자녀들은 중·고등학교 졸업 후 생산 현장으로 가서 산업역군이 되기도 하고 일부는 정규대학이나 야간대학을 거쳐 이른바 화이트칼라 노동자가 됐습니다. 그 속에서 대한민국은 후진 농업국가에서 개발도상국을 거쳐 선진국 반열에 오르고요. 전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성공 스토리입니다. 한국 진보·좌파들이 저주한 대한민국이 눈부시게 성공한 거죠.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나를 진보·좌파들은 연구하고 설명해야 합니다. 역사관도 바꾸어야 하고요.”

오늘날 한국 진보좌파의 문제점은 무엇이라 보나요?

“한국 진보·좌파 그중 민족해방(NL)노선은 ‘이상한 진보’예요. 대표적인 인류 보편 가치인 ‘자유’ ‘평등’ ‘인권’ 문제조차 띄엄띄엄 적용하는 거죠. 국내 노동자 인권 문제는 외치면서 북한이나 중국에는 침묵합니다. 홍콩 민주화 시위 때도 한국 진보·좌파들은 침묵하거나 소극 대응했죠. 특히 우리 동포이기도 한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에 침묵하고 무관심합니다. 이런 것에 무관심한 것이 진보의 정체성이라는 게 말이 됩니까?” ‘주사파(主思派·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한국 진보 세력의 한 갈래)’ 문제를 지적한 주대환 대표는 비판을 이어갔다. “저는 지나친 민족주의는 지성을 마비 시키는 독약이라고 늘 이야기합니다. 나치즘, 파시즘 이런 것도 다 민족주의에서 출발합니다. 좀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한국 진보·좌파는 주사파라는 악령(惡靈)에 사로잡혀 있다 봅니다. 그 속에서 오늘날 더불어민주당도 이상한 정당이 됐습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민주당’에서 멀어졌습니다. 주사파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한국 진보는 주사파라는 악령에 사로잡혀 있다.

주사파가 탄생하고 힘을 얻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역사적으로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민주주의가 멈춘 시기가 있습니다. 1972년부터 1979년까지 박정희 유신체제, 1980년부터 1987년까지 제5공화국 시기죠. 경제사 전공하는 사람들은 이 시기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고 평가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냉혹한 시절이었죠. 이른바 ‘개발독재’로 불리는 이 시기에 한국은 중화학 공업 위주 성장 정책을 펴면서 발전했지만 치러야 할 대가도 컸습니다. 이 때 이른바 주사파들이 생겨났습니다. 당시 대가를 지불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이제 와서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죠.” 박정희-전두환 체제의 강압성에 맞서는 이념으로 주체사상과 인민민주주의로 무장을 한 주사파가 생겼다고 진단한 주대환 대표는 그 이전 세대도 주사파가 탄생하는 데 책임이 있다고도 했다. “유신 체제나 전두환 체제에 당시 기성세대가 더 맞서서 민주화를 이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당시 20대 초반 대학생·노동자들에게 이를 맡겼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20대 초반 대학생이 전두환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군 출신 대통령과 맞서면서 얼마나 이상한 정신세계를 가지게 됐겠습니까? 더 큰 문제는 당시 대학생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주류 세력이 됐는데 여전히 당시의 정신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죠.” 주대환 대표는 환경주의, 여성주의(페미니즘) 등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중요 의제로 다뤄지는 분야들도 주사파들에게 오염됐다고도 했다. “주사파 계열 민족해방노선이 진보·좌파의 본류이고 여성주의니 환경운동이니 하는 분야는 다 ‘지점’이 된 거죠. 주사파들이 이런 중요한 의제들을 다루니까 오염되는 것은 당연하고요. 여성주의나 환경주의 다 본연의 가치를 따지면 정말 중요하고 좋은 가치인데 말이죠. 주사파 계열 민족해방노선은 대한민국의 악성 종양 같은 존재입니다.” 대한민국 진보·좌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사파 민족해방노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 주대환 대표는 한국 진보·좌파정당에도 비슷한 주문을 했다.

본래 진보 성향었는데 근래 바뀌신 듯합니다.

“전 대학 시절부터 쭉 진보 진영에서 활동했습니다. 근래 들어 이탈하여 길 잃고 방황 중입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의 진보 세력의 주류는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집단입니다. 저는 이를 참고 견딜 수 없었던 것이고요. 그 속에서 일종의 ‘탈영병’ 신세가 된 거죠.” 스스로 자신은 여전히 진보라고 주장하는 주대환 대표는 한국 진보 세력이 자유·평등·인권 등 외국 진보세력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향하게 변화하면 다시금 진보 진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도 했다. “10년, 20년 세월이 지나면 주사파가 드리운 먹구름이 걷히고 정상화되지 않겠어요? 그렇게 진보가 정상화되면 나는 다시 진보진영으로 돌아가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어요.” 주대환 대표는 한국의 진보 세력이 정상화되는 희망의 빛줄기도 찾았다고 했다. 2030세대로 불리는 젊은 세대로부터이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들과 대화하면 보수정당이나 진보정당이나 큰 차이를 못 느끼겠습니다. 이들이 주류 세대가 되면 세상이 바뀌겠죠. 한국의 진보·보수 세력이 글로벌화될 것이고요.”

2017년 독립문 건립 120주년 및 제3의길 창간 축하 행사에서 주대환 대표가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 진보 정당이 지향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 혁명 노선을 포기하고 제도권 내에서 개혁을 통해 점진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영국 노동당이나 독일 사회민주당(SPD)처럼 돼야죠. 독일 녹색당처럼 제도권에 안착한 환경주의 정당도 필요하고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서 한국의 범진보 계열 정당은 현대적인 진보정당으로 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진보는 식민지 시절의 후진국형 진보입니다. 여전히 반외세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독립운동 시대 정서에 머물러 있어요. 우리나라는 해방된 지 오래고, 세계화의 조류 속에 선진국의 반열에 든 지도 오래예요. 우리나라 진보의 관념과 정서는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 있죠.” 한국 진보정당에 이런 주문을 한 주대환 대표는 보수정당에도 ‘거듭남’을 요구했다.

주사파가 주류가 된 한국 진보는 ‘이해할 수 없는 집단’
진보가 건전화되면 다시 돌아가고파

한국 보수세력은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내가 아는 의미의 ‘보수(保守)’는 국가와 사회의 주인의식을 가진 집단이에요. 대표적으로 여전히 군주제와 귀족계급이 있는 영국을 들 수 있죠. 영국 역사를 보면 국가의 위기 때마다 왕실이나 귀족이 앞장서잖아요. 전쟁이 나면 참전해서 전사하기도 하고요.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혜택 받은 자의 의무)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민주공화제 헌법 하에서 만인은 평등한 대한민국에 왕실이나 귀족 집단이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주인의식을 가진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에도 분명히 집안 배경이든, 재력이든, 교육이든 혜택을 받은 집단이 존재하고 ‘기득권층’으로 불릴 만한 사람도 있는데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드문 듯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한 주대환 대표는 아직 한국에서 보수·진보 개념 정립이 덜 됐다고도 했다.

양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조언하고자 한다면요.

“민주당은 하루속히 ‘주사파의 검은 구름’을 거둬내야 합니다. 이러한 진통을 겪어야 진정한 진보 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다양성, 개방성, 소수자 보호 등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지지층을 넓혀야 하겠죠. 반면 국민의힘은 하층 노동자와 청년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당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한국 보수 정당이 이승만-박정희 계승을 표방하는데 이들 지도자들은 당대 가장 진보적인 지도자였습니다. 물론 집권 후반에 실정으로 추락했지만요. 외국 보수 정당 사례를 봐도 국민의힘이 어떤 정당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영국 보수당이나 미국 공화당이 하층 노동자의 지지를 받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른바 민주당이 강남좌파로 지지층을 넓힌다면, 국민의힘은 강북우파에 다가가야 한다 봅니다.

한국 보수 세력과 진보세력에 이런 주문을 한 주대환 대표는 “한국의 보수와 진보가 모두 세계적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거듭나면 대한민국은 경제력 뿐만 아니라 정치·문화 분야에서도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