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둘러싼 백신 삼국지…중국 제안은 뿌리치고 美·日 지원은 수용

2021년 06월 9일 오전 9:24 업데이트: 2021년 06월 9일 오전 11:33

6월 6일 7시께, 미 공군 C-17 글로브마스터III 전략 수송기가 타이베이 쑹산(松山)국제공항에 내려앉았다. 한국 경기도 오산 미 제7공군 기지를 이륙한 지 2시간 만이다.

수송기에는 태미 덕워스(민주당·일리노이), 댄 설리번(공화당·알래스카), 크리스토퍼 쿤스(민주당·델라웨어) 등 3인의 연방 상원의원이 탑승하고 있었고, 화물칸에는 미국이 대만에 제공하는 75만 회분 분량의 코로나 19 백신이 실려 있었다.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 부장, 윌리엄 브렌트 크리스텐슨(William Brent Christensen) 미재대만협회(美國在台協會·AIT) 타이베이 사무처장이 공항까지 나가 미국 대표단을 영접했다.

덕워스 의원은 공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 19 사태 초기 대만은 우리에게 방호용품을 제공하고 미국 국민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을 줬다”며 “백신은 대만에 대한 고마움을 반영한 것이며, 미국은 대만의 절박한 수요를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덕워스 의원은 또한 “대만의 수요를 파악해 이를 워싱턴에 전달하겠다”며 추가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뜻도 밝혔다.

우자오셰 외교부장은 “대만은 독재 국가에 맞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지한다”며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국가들이 지지를 보여줘 다행”이라고 화답했다.

미 대표단은 대만 공군 쑹산 기지 지휘부에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접견, 미국-대만 관계, 동아시아 역내 안보 문제 등을 논의했다.

1979년 1월 1일, 미-중 수교와 동시에 이뤄진 미-대만 단교 이후 현직 미국 연방 상원의원 3명이 대만을 방문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지난 4월 14일, 크리스 도드를 대표로 한 ‘비공식 대표단’이 대만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도드 전 연방 상원의원(민주당)을 비롯하여 리처드 아미티지·제임스 스타인버그 전 국무부 부장관 등 전원 ‘전직’이었다.

대만을 둘러싼 백신 삼국지가 본격 전개되고 있다. 방역 모범생으로 꼽혔지만 백신 접종률(2%)에서는 ‘열등생’으로 치부되는 대만을 둘러싸고 미국·중국·일본의 기싸움이 한창이다. 서로 “백신을 제공하겠다”며 대만에 손을 내밀고 있는 형국이다.

차이 잉원(오른쪽 두 번째) 대만 총통이 6일 대만을 방문한 조세프 우 외교장관과 함께 미국 상원 대표단인 댄 설리번 의원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산 백신을 거부한 대만에 75만 회분의 백신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2021.6.6 | 대만 총통 사무실 제공=AP/연합뉴스

먼저 ‘퇴짜’를 맞은 것은 중국이다. 중국은 시노팜(중국의약그룹) 등이 제조한 자국산 백신과 푸싱의약그룹이 독일 바이오엔테크사로부터 사들인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을 대만에 제공하겠다 제안했다.

중국 관변 단체 베이징양안동방문화센터(北京兩岸東方文化中心)는 친중 성향의 국민당 조직인 쑨원(孫文)학교를 통해 시노팜 500만 회분, 화이자-바이오엔테크 500만 회분 등 총 1천만 회분의 코로나19 백신을 지원하겠다고 정식 제안한 상태다.

대만 민진당 정부는 중국의 제안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 중국의 백신 제공은 사회 분열을 노리는 통일전선 전술의 일환이라는 판단에서다.

중국은 즉각 ‘정치 공세’라며 비판했다.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마샤오광(馬曉光) 대변인은 “우리는 대만 민중의 생명과 건강 문제를 매우 걱정하고 있다”며 “민진당 당국이 백신 문제를 정치화하는 행태를 고쳐 조속히 대륙(중국) 백신의 대만 수입을 막는 인위적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6월 4일 일본 정부가 무상 제공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24만 회분에 대해서 대만 정부는 반갑게 받아들였다.

일본은 백신 지원에 대해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위문금을 모금·전달한 대만에 대한 답례 차원이라 설명했다.

차이잉원 총통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백신을 실은 일본항공(JAL) 항공기가 출발하는 사진을 게시하며 “고마워요 일본 정부” “외교부와 주일본대만대표처의 공통된 노력 및 이번 일과 관련해 많은 친구들의 노력에 고맙다”고 직접 감사의 뜻을 표했다.

백신 지원을 물밑에서 지원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동일본 대지진과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마스크 제공 등 일본이 어려움을 겪을 때 언제나 대만은 진정한 친구였다”고 화답했다.

자신들이 내민 손은 뿌리치고 미국·일본의 손을 잡은 대만에 대해 중국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지난달 28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대신이 기자회견에서 “대만에 코로나 백신을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일본 자민당 참의원도 같은 날 “대만도 우리가 필요했을 때 마스크 200만 장을 보냈다”며 대만에 백신 제공을 촉구했다.

이렇듯 일본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대만 제공 의사를 공식화하자 중국 외교부의 왕원빈(汪文斌) 대변인은 5월 31일, 정례 회견에서 “방역 대책의 이름을 빌린 정치쇼와 내정 간섭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왕 대변인은 또한 “일본은 자국민을 위한 백신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서 대만에 백신을 제공한다는 것은 많은 언론과 사람들로부터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며 “백신이 정치적 이기심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일본 정부에 날을 세웠다.

일본 백신이 도착한 6월 4일 회견에서도 왕 대변인은 “대만은 중국이 대만에 백신 보내는 걸 막고 있다. 다른 나라 백신을 사려 해도 중국이 방해하고 있다고 거짓말하고 있다”고 자신들의 제안은 거부하고 일본의 제안을 받아들인 대만 정부를 비판했다.

민항기를 이용하여 백신을 수송한 일본에 이어 미국이 군용기로 백신을 실어 날라 이에 대한 중국의 반발 수위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미국 군용기가 대만에 이착륙한다면 대만 해협의 전쟁은 그때 시작”이라며 대만과 미국에 공개 경고했기 때문이다.

‘환구시보’를 통해 분출된 중국의 반발 수위는 예상보다 낮은 모양새다.

신문은 6월 7일 자 사설 ‘대만 당국이 미국 상원의원이라는 지푸라기를 잡았다’에서 “2300만 대만 인구에 비춰 볼 때 75만 회분 분량의 백신은 물 한 잔으로 장작불 끄겠다는 것이다. 방역 실패와 백신 부족으로 민진당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지지율이 떨어지자 미국이 상원의원 방문이라는 정치쇼로 민진당을 돕겠다는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대만 당국의 행동은 역사의 큰 렌즈로 보면 ‘최후의 발악’에 불과하다. 대륙의 역량이 만든 수퍼 자기장은 이미 대만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대만 당국이 말썽을 부릴수록 대륙이 대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도덕적 우위를 도와주는 셈”이라며 대만 정부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비굴하게 처신한다고 비난하는 데 그쳤다.

대만 ‘연합보(聯合報)’는 이에 대해 중국의 반응을 떠보려는 미국의 ‘살라미 전술’에 중국이 호응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6일 대만에 착륙한 미국 군용기를 기술적으로 ‘민항기’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의 대만 주재 대사관 역할을 하는 ‘미국재대만협회(AIT)’ 역시 쑹산국제공항 측에 이번에 백신을 수송한 항공기는 군용기가 아닌 ‘AIT 상용기’라 통보했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전투기를 한 대도 발진시키지 않았다.

국익(國益)을 바탕에 깔고 치열하게 전개되는, 대만을 둘러싼 미국·중국·일본의 백신 삼국지의 최종 승자는 누가 될까.

/최창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