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내년 대선 이변 조짐… 민진당 라이칭더 여론조사서 앞서

최창근
2023년 04월 30일 오후 1:41 업데이트: 2023년 05월 25일 오후 3:38

내년 1월 13일로 예정된 대만 총통·입법원 동시 선거를 두고 ‘이변’이 감지되고 있다. 당초 국민당에 불리할 것으로 예상됐던 총통 선거 구도가 집권당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어서이다.

이번달 민주진보당(民主進步黨·민진당) 총통 후보로 공식 지명된 라이칭더(賴淸德) 현 부총통 겸 당 주석이 중국국민당(中國國民黨·국민당) 예상 후보들에게 각종 여론조사에 앞서 나가고 있다. 여론 추이가 내년 선거에서 현실화될 경우 민진당은 사상 최초로 3연속, 12년 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1986년 대만지구 계엄령하에서 취해진 ‘당금(黨禁·정당 설립 금지 규제)’ 조치하에서 당외(黨外·국민당 밖의 사람들이라는 뜻의 재야인사) 인사들이 주축이 돼 민진당을 창당했다. 1987년 계엄령 해제, 1988년 당금 조치 해제 이후 민진당은 ‘합법 정당’으로 거듭났고, 2000년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당선되어 첫 집권에 성공했다.

이후 2004년 민진당은 박빙의 차로 재집권에 성공했고, 2008년 대선에서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후보에게 패배하여 정권을 내줬으나 2016년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이 승리하여 현재까지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2000년 사상 첫 여야 정권 수평 교체 이후 대만에서는 ‘4+4년’ 주기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차이잉원 현 총통도 지난 2020년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 속에서 민진당이 내년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새로운 기록을 쓰는 것이다.

당초 내년 선거는 민진당에 불리할 것으로 전망됐다. 원인으로는 민진당의 강령이기도 한 대만 독립 노선을 둘러싸고 높아진 국민들의 피로도를 꼽는다. 2016년 차이잉원 정부 출범 후 양안관계는 악화일로이고 대만해협에서 중국의 무력 시위는 일상화됐다. 이 속에서 대만 국민들은 불안과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민생 문제도 꼽힌다. 대만은 2022년 통계 기준 1인당 국내총소득(GNI)이 3만 3565달러로, 3만 2661달러의 한국을 앞섰다. 다만 체감 소득은 통계와 거리가 있다. 4월 28일, ‘중국시보(中國時報)’ 등 대만 매체들은 “지난해 12월 대만 대졸 재직자 평균 초봉이 2021년보다 5000신대만달러(약 22만원) 증가한 3만 1000신대만달러(약 135만원)였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4월 27일 대만 행정원 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도 초임 인원 임금’ 통계를 인용했다. 대만 언론들은 “지난해 대졸 취업자의 24.9%가 초봉을 지난해 최저임금인 2만 5250신대만달러(약 109만원) 수준으로 받은 부분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시적인 경제 성과 속에서도 대만의 실질 임금 소득은 한국의 절반 수준에 멈춰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지난 1월, 대만민의기금회 여론조사에서 ‘현 정부의 경제 성과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만족한다’는 답변은 34.9%에 그쳤다. 반면 ‘불만족한다’는 51.7%를 기록했다.

민진당의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도 문제시됐다.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에 대패한 민진당은 국정 쇄신 차원에서 개각을 단행했다. 다만 결과는 쇄신과 거리가 멀었다. 차이잉원 1기 정부(2016~2020년) 부총통(부통령)을 역임한 천젠런(陳建仁)을 행정원장(국무총리 해당)으로 임명하는 일종의 강등 인사에 이어 지방선거 낙선자를 총통부 고위직이나 내각 각료로 기용하는 일종의 ‘보은인사’를 단행했다.

외교 부문에서도 성적은 나쁘다. 2016년 5월 차이잉원 총통 취임 시 23개이던 공식 수교국은 2023년 4월 현재 13개국으로 줄어들었다. 총통 임기 7년 동안 9개국이 단교했다. 직전 마잉주 정부 8년 동안 1개국이 단교한 것과도 대비된다.

야당으로 전락하여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정권 탈환을 노리는 국민당의 노력도 빠트릴 수 없다. 기본적으로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원칙에 동의하는 국민당은 중국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다. 민진당의 대만 독립 노선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겠다는 전략이다. 비록 1979년 국교는 끊어졌지만 전통의 우방인 미국과 유대도 강화하고 있다. 2022년 6월 국민당은 워싱턴D.C에 주미국사무소를 개설했다.

주리룬 국민당 주석. 학자 출신으로 입법위원, 광역자치단체장, 행정원 부원장 등을 역임했다. | 연합뉴스.

이 속에서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은 유례없는 참패를 당했다. 11월 27일 치러진 선거에서 민진당은 21곳의 광역지방자치단체장(현(縣)·시장) 선거 중 5곳에서 승리하는 데 그쳤다. 반면 제1야당 국민당은 13곳에서 승리했다. 이 밖에 대만민중당(민중당) 후보가 1곳, 나머지 1곳은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1986년 민진당 창당 이후 최악의 결과다.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차이잉원 총통이 당 주석직을 사임했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선거에서 야당의 승리는 민진당의 ‘중국 공포’ 카드가 효과가 없었음을 보여준다”며 “차이 총통이 선거 막판 무력통일을 하려는 중국에 맞서 대만을 지키자고 호소했지만 방역 정책 등 내정 문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이기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선거 결과를 두고서 ‘민진당이 심판받았다.”며 내년 총통 선거에도 적색등이 들어왔다고 분석했다.

이런 형편 속에서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당 예상 후보들을 앞서가며 재집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대만민의기금회가 지난 4월 9~11일 성인 1068명을 대상으로 한 총통 선거 가상 대결 여론사에서 민진당 라이칭더 부총통이 33.4%를 기록하여 허우유이(侯友宜) 신베이(新北) 시장(29.7%), 궈타이밍(郭台銘) 폭스콘 창업주(29.7%), 커원저(柯文哲) 전 타이베이(臺北) 시장(22.6%)을 누르고 승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국민당은 6월 이전에 지명 방식으로 총통 후보를 확정할 예정이다. 경찰 출신 허우유이 신베이 시장, 기업가 출신 궈타이밍이 유력한 상황이지만 경우에 따라 주리룬(朱立倫) 현 국민당 주석이 나설 수도 있다.

주리룬 주석은 국립대만대 교수 출신으로 입법위원, 타오위안현장, 행정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2010년 행정원직할시 승격 후 첫 치러진 신베이 시장 선거에서 차이잉원 현 총통을 상대로 승리했고,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출마하는 선거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아 ‘선거의 왕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2016년 대선에서는 국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31.04%를 득표하여 56.12%를 기록한 차이잉원 현 총통에게 대패했다. 그러다 2021년 국민당 주석에 재취임하여 정권 탈환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차기 국민당 총통 후보로 유력시되는 허우유이 신베이 시장을 정계로 진출시킨 장본인이다.

한편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와 유력 국민당 후보인 궈타이밍 폭스콘 창업자는 양안 정책에서 선명한 차이점을 보였다.

라이칭더 부총통은 4월 23일, “대만해협은 대만과 중국이 공존하고 형제로서 함께 발전할 만큼 매우 넓다”며 “중국과 대만이 형제로서 공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만 독립 주장을 굽힌 것은 아니나 ‘중국과 공존’을 강조함으로써 종전의 강경 대만 독립론자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궈타이밍 창업자는 “중국은 대만과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내가 총통이 되면 대만 독립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4월 27일, 대만 중부 타이중(臺中) 동해대학(東海大學)에서 열린 행사에서 “중국은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것과 같은 일에 집중하기를 원한다”며 “대만 공격은 우선순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