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축배 들자” 제안한 날, 리투아니아 대통령 “대만 명칭 대표처는 실수”

최창근
2022년 01월 5일 오후 4:05 업데이트: 2022년 01월 5일 오후 4:05

공기업 TTL, 중국 통관 거부한 리투아니아산 럼주 대량 구매
中 “금전외교” “대나무 바구니로 물을 긷는 것”
리투아니아 대통령 “대만 국호 들어간 대표처 설치는 실수”
臺 “리투아니아-대만 관계 발전은 역사적으로 올바른 결정”

‘진먼고량주(金門高粱酒)’로 유명한 대만담배주류공사(臺灣菸酒股份有限公司·TTL)가 뜻밖에 외국산 럼주(Rum酒) 대량 구매를 발표했다. 사탕수수, 당밀을 주원료로 만들어지는 럼주는 ‘뱃사람의 술’로 알려져 있다. 알코올 함유량은 45% 내외로 58%인 금문고량주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1월 4일, 대만 중앙사(中央社)는 대만 행정원 재정부 산하 공기업인 대만담배주류공사가 중국의 경제 보복 조치로 해상에서 표류 중인 리투아니아산 럼주 2만 400병 전량 구매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대만담배주류는 보도자료를 통해 리투아니아 주류 기업 MV그룹이 제조한 럼주는 원래 지난해 12월 29일, 중국 내 모 항구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중국 세관이 리투아니아를 세관 전산 시스템의 수입 대상국 목록에서 삭제함에 따라 통관이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구매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리투아니아에서 선적된 럼주는 대만해협 피안으로 행선지를 바꾸게 됐다.

중국의 통관 거부는 유럽 내 반중 국가로서 지난해 11월, 대만과 최고 수준의 ‘비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한 리투아니아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의 일환이다.

대만담배주류는 리투아니아산 럼주가 올해 1월 초순 대만 내 항구에 입항 예정이며, 통관 절차 후 출시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대만담배주류 측은 이 술로 건배할 때 “리팅워, 워팅리(立挺我 我挺立)”를 ‘건배사’로 외치자고도 제안했다. 우리말로 옮기면 “리투니아는 우릴 돕고, 우린 리투니아를 돕고!”쯤 된다. 리투아니아를 중국어 음차 표기로는 ‘리타오완(立陶宛)’이라고 표기한다.

해당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은 ‘수표책’ 외교라고 비판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월 4일, 정례브리핑에서 “대만 당국은 금전외교를 통해 외교 관계를 유지하려는 행위를 시도하고 있다”고 비난한 후 “대바구니로 물을 긷는것(竹籃打水一場空)과 같다”고 덧붙였다. 이는 중국 외교 당국이 ‘헛수고’라는 뜻을 담아 자주 사용하는 외교적 수사이다.

대만이 축배를 들자고 제안한 날,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는 ‘나쁜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기타나스 나우세다(Gitanas Nausėda)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1월 4일(현지시간), 현지 매체 지니우 라디자스와 가진 회견에서 지난해 11월, 개설한 ‘주리투아니아 대만대표처’ 명칭에 대해서 실수가 있었다고 밝힌 것이다.

나우세다 대통령은 “대표처를 개설한 것이 문제가 아니지만 ‘공식 명칭’에 대해서는 자신과 협의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수도명인 ‘타이베이(Taipei)’가 아닌 통용 국호 ‘대만(Taiwan)’ 사용을 허용한 것은 실수라고 인정했다. 그는 “리투아니아와 대만이 외교 관계를 맺지 않았음에도 상호 대표 사무소를 개설할 자유가 있다”면서도 “(대만 국호가 들어간) 사무소 명칭이 중국과의 관계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이 된 것은 유감스럽다”고도 덧붙였다. 나우세다 대통령은 경영학 교수 출신으로 2019년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됐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리투아니아에서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외교안보정책을 감독하며 유럽연합(EU) 정상 회의에서도 국가를 대표한다. 반면 외교 실무를 총괄하는 가브리엘루스 란드스베르기스(Gabrielius Landsbergis) 외교부 장관은 리투아니아 기독교민주당 대표를 맡고 있다.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의 견해 차이는 당파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나우세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하여 대만 외교부는 “리투아니와의 관계에 대하여 확고부동한 입장을 견지하겠다는 대만의 결의는 변하지 않을 것이며,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체제를 지지하는 유사한 사상을 가진 모든 국가가 리투아니아를 강력하게 지지할 것을 촉구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대만대표처 명칭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리투아니아 ‘내정 문제’임을 강조하며, 상대국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물러섰다.

주리투아니아대만대표처 황쥔야오(黃鈞耀) 대표는 대만 중앙사 인터뷰에서 “리투아니아 외교부로부터 대표처 개명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히며 역시 논평하기 불편한 주제라며 말을 아꼈다. 황쥔야오는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서 미국 시카고경제문화사무처장(총영사)을 거쳐 발트 3국인 라트비아 주재 대표로 부임하여 지난해부터 리투아니아 주재 대표도 겸하고 있다.

어우장안(歐江安) 대만 외교부 대변인은 1월 4일 브리핑을 통하여 리투아니아 정부가 ‘대만’ 국호가 들어간 대표처 설립에 동의했다는 이유로 중국의 대대적인 탄압을 받았고 이는 국가, 민간, 일반 국민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지적했다. 어우장안 대변인은 “리투아니아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대한 대만의 확고한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미국, 유럽연합(EU)·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기타 유럽 민주주의 파트너 국가들이 리투아니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 점을 지적하며 “리투아니아와 대만 관계 발전 결정이 역사적으로 올바른 결정임을 믿는다. 대만과 리투아니아는 모두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 공유를 기반으로 하는 견고한 파트너이다. 앞으로 호혜·평등 원칙을 기반으로 두 나라는 경제·무역 부문에서 긴밀한 협력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할 것이다”라고도 했다.

지난해 11월 18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대만 유일 유럽 수교국인 바티칸을 제외한  비수교 국가 중 최초로 ‘대만’ 대표처가 설립되자, 중국 정부는 전방위 보복 조치를 실시했다. 11월 21일, 중국 외교부는 리투아니아와의 외교 관계를 종전 ‘대사급’에서 두 단계 낮은 ‘대표처(代瓣)급’으로 하향 조정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후 리투아니아 주재 공관에서 영사 업무도 잠정 중단했다.

중국의 유·무언 압력 속에서 12월 15일, 베이징 주재 리투아니아대사관도 잠정 폐쇄하고 외교관과 가족들은 전원 귀국했다. 이를 두고 리즈 트러스(Liz Truss) 영국 외무부 장관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베이징에 있는 리투아니아 외교관에 대한 중국의 견딜 수 없는 압박 때문”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