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들 사업 따라 바뀌나? 바이든의 대중 정책 변천사

허젠(何堅)
2020년 10월 24일 오후 1:58 업데이트: 2020년 10월 24일 오후 2:13

미국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중국 집권세력 공산당(중공) 사이의 관계 전모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에포크타임스는 바이든의 정계 입문 이후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지난 30년간 중공에 대한 바이든의 입장이 현저한 변화를 보였으며, 그 변화가 바이든 가족과 중국 간 사업거래와 관련된 정황을 포착했다.

당초 대중 강경파였던 바이든

조 바이든의 중공과 인연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 카운티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델라웨어 연방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던 1979년 처음 중국을 방문해 덩샤오핑을 만났다.

외교 분야에서 오랜 경험은 바이든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다. 그는 1997년부터 상원 외교관계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미국의 외교정책 수립에 깊게 관여해왔다.

상원 외교위는 미국의 대외원조 감독 및 제공, 무기 판매 등을 결정하고 국무부 주요 관료 지명을 검토하는 등 외교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외교위 활동 초, 바이든은 매파(보수강경파)로 분류될 만큼 중공에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의회 기록에 따르면 1991년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 연장 여부를 놓고 벌어진 토론에서 바이든(당시 상원의원)은 연장에 반대하며 “중국이 무기 확산과 관련해 불량배처럼 행동한다면……최혜국 교역 지위를 거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이든은 2001년 8월 신임 상원 외교위원장 신분으로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 당시 중공 총서기를 만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은 방중 내내 중공의 무기 확산을 질책하고 중공의 사법체계와 파룬궁(法輪功∙파룬따파)에 대한 탄압을 포함해 인권 문제를 비판했다.

그러나 이 방중을 기점으로 바이든은 중공에 대해 조금씩 유화적인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1월 중국은 논란 끝에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는데,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 바이든은 의회의 중국 WTO 가입 승인안에 반대하지 않았다.

아들 헌터의 ‘글로벌 비즈니스’

미국 정계에서 바이든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바이든 일가와 관계된 브로커들이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활동 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대표적 인물이 그의 둘째 아들 헌터였다.

바이든은 2007년 상원 외교위원장 연임에 성공했고, 다음 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발탁됐다. 그 얼마 뒤 헌터는 존 케리의 양아들 크리스토퍼 하인즈와 손잡고 컨설팅회사 ‘세네카 글로벌 어드바이저’를 설립했다. 존 케리는 훗날 미 국무장관에 오른다.

2009년 헌터와 하인즈는 데본 아처란 인물을 영입해 투자회사 ‘로즈먼트 세네카’라는 회사를 추가로 설립했다. 두 회사는 바이든 일가의 중국 사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사이 미국과 중국 사이 무역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중공에 만연한 부정부패는 돈과 권력을 좇는 국제 브로커들에게 엄청난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했다. 그중에서도 바이든 일가와 가장 가까웠던 인물은 대만 기업가 마이클 린(린쥔량·Michael Lin)이었다.

마이클 린은 2005년 베이징으로 이주해 미국과 중국의 정재계 거물들 사이에서 브로커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운영하던 쏜튼(Thornton) 그룹의 기업 소개 페이지(현재 폐쇄)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린쥔량은 2007년 한 미국 고위관료 2세를 통해 헌터를 만나 인연을 맺었다.

쏜튼 그룹은 매사추세츠주 연방 상원의원의 아들인 제임스 벌저가 참여했으며, 미국 정계에서 영향력을 지닌 ‘미국 입법 지도자 재단’(State Legislative Leaders Foundation, SLLF)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바이든과 존 케리가 미국 정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면서, 이들과 관계된 브로커 회사들에 대한 중공 등 외국 정권의 관심도 높아졌다.

중공의 외교, 통일전선공작부 산하 기구들은 바이든 일가와 가까운 브로커 마이클 린과 쏜턴 그룹에 특혜를 제공했다. 린은 2007년 미중간 무역이 갈등 고조 와중에 SLLF 대표단의 베이징 방문을 성사시켜 중공 관료들과의 협상하도록 했다.

바이든의 변화, 탄력받은 아들의 사업

2009년 1월 바이든은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에 선출됐다. 공석이 된 상원 외교위원장에는 존 케리가 선임됐다.

같은 해 브로커 마이클 린은 SLLF 아시아·중국 총책임자에 임명돼 중공 관료들과 연락을 맡게 됐다. 바이든의 정치적 위상 강화와 시기적으로 맞물렸다.

그해 11월 마이클 린과 쏜튼 그룹은 베이징에서 ‘제1회 미중 입법 지도자 포럼’을 개최했다. 이 포럼은 미국 SLLF 외에 중국인민외교학(CPIFA),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CAIFC), 전국인민대회 외사위원회(FAC) 등이 후원했다. 모두 중공의 외교 혹은 통일전선 기구다.

마이클 린-중공 사이 왕래가 늘어나는 가운데 중공과 헌터 사이에 직접적인 교차점이 발생했다.

쏜튼 그룹 홈페이지(현재 폐쇄)에 따르면 2010년 4월 마이클 린은 중국 금융기관에 헌터를 로즈먼트 세네카 회장으로 소개했는데 사업적인 협력을 모색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며칠 뒤 바이든 당시 부통령은 워싱턴에서 열린 ‘핵 안보 정상회의’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만났다.

그리고 2년 뒤인 2011년 8월 17일 바이든은 중국을 방문했는데, 이때 중공에 대한 그의 태도는 상당히 누그러져 있었다.

바이든은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과의 회담에서 “미국은 대만, 티베트 문제가 중국의 핵심 이익이라는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으며,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계속 확고히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의 기록에 따르면 바이든은 이번 방중에서 중공의 무기 확산과 인권탄압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피하며 미중 관계 강화를 강조했다.

10년전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방문해 중공의 ‘금기’인 파룬궁 문제를 언급했을 때와는 큰 변화였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PDF 링크), 2012년 2월 시진핑 당시 중국 부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바이든 부통령을 만난 시기에 헌터의 회사인 ‘세네카 글로벌 어드바이저’는 중국에서 12억 5천만 달러(약 1조 4천억)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 투자는 그해 외국의 대미 벤처투자 최고액으로 기록됐다.

2013년 12월에는 바이든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다. 당시 미국과 중국은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 방문에는 헌터도 동행했는데, 그는 미국 방문단이 머무는 호텔에서 중국 투자자 조너선 리를 만나는 등 사업활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의 중국 방문 채 2주도 지나지 않아 헌터가 공동설립한 사모펀드 BHR파트너스가 중국 당국에 정식 등록됐다. 총 10억 달러의 중국 자금도 투자받았다.

2014년 중공은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활동을 확대했다.

그러나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시진핑과 회담까지 했던 바이든은 한결 너그러워진 모습이었다.

그는 그해 10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강연에서 “중국이 미국을 이기고 있다는 말을 들은 지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지만, 중국의 경제적인 성공이 우리의 이익과 부합하기 때문에 그들이 성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한 2013년 방중 당시 시진핑에게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보장을 촉구했다면서도 중국은 에너지와 물 부족 등 압도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며 중국에 부정적인 청중들을 달래기도 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반중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대선후보로 나선 바이든은 이제 다시 한번 중국에 강경한 정책을 내놓으며 표심 잡기에 나섰지만, 그의 가족과 중공의 관계는 미국을 넘어 국제사회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