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둠’ 루비니 교수 “전례 없는 경제위기 올 것”

한동훈
2022년 12월 8일 오후 7:20 업데이트: 2022년 12월 8일 오후 7:20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예측한 루비니 교수
“세계 각국 고령화, 막대한 부채 계속 확대”
“더는 유동성 공급방식 경기부양책 안 통해”

지난 2007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전 이를 예측해 일명 ‘닥터 둠(경제 비관론자)’이란 별명을 얻은 미국 뉴욕대학 경제학과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루비니 교수는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글로벌 기고문 전문매체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를 통해 “최근 수십 년간 누적된 레버리지(차입 투자), 대출, 적자의 폭탄이 터지고 난 이후 글로벌 경제는 금융ˑ부채ˑ경제 측면에서 ‘전례 없는 융합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세계 각국이 고령화 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이러한 위험 요소는 그저 자라나기만 하는 막대한 부채로 현실화하고 있다”며 인구구조적 측면에서 극복하기 쉽지 않은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전 세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및 공공부문 부채 총액의 비율은 1999년 200%에서 2021년 350%로 22년 만에 150%포인트 증가했다. 미국의 GDP 대비 민간 및 공공부문 부채 비율은 이를 넘어선 420%이며, 중국은 이보다 낮은 330%로 나타났다.

늘어나기만 하는 데다 지속 불가능한 이러한 부채 비율은 각국의 은행, 기업, 가계, 그림자 금융, 정부와 같은 많은 채무자를 ‘부실 좀비’로 만들었다. 지난 몇 년간 지속된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는 차입 비용을 줄여 많은 경제 주체들이 부채의 늪에 빠지도록 부추겼다.

저금리 기조로 과도한 유동성이 풀린 시장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및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과 같은 지정학적 위기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닥치면서, 인플레이션은 이제 세계적인 경제 문제로 대두됐다.

루비니 교수는 인플레이션이 치솟으면서 ‘재정적 시체들의 새벽(financial Dawn of the Dead)’이 막을 내리며 좀비들의 대량 생산은 그쳤다고 분석했다.

그 대신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려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해, 저금리 기조에서 마구 부채를 늘렸던 좀비들이 급격한 부채 상환 비용 상승에 직면하게 됐다고 전했다.

루비니 교수는 지난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융위기 당시 미 재부무에서 당시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의 선임고문으로서 파국이 글로벌 경제 전반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는 데 기여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와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정리, 막대한 부실 모기지 CDO(자산유동화증권) 및 CDS(신용부도스왑증권) 발행으로 파산 직전까지 간 AIG보험 인수 등에 관여했다.

미 연준은 올해 1월 0.00~0.25%였던 미국 기준금리를 지난 11월 3.75~4.00%까지 인상했다.

루비니 교수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많은 사람이 ‘삼중고’를 겪게 됐다”며 “우선 인플레이션 자체로 실질 가계 소득이 감소해 가처분 소득이 감소한 것과 같은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또한 “이자율 상승으로 부채 상환 부담이 크게 늘었으며, 가계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과 주식의 자산가치는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고통은 가계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과도한 레버리지(차입 경영)로 취약한 기업, 금융기관, 정부도 경제적 압박을 받게 됐다. 이들과 같은 경제 주체들도 급격한 차입 비용 증가, 소득 및 매출 감소, 자산가치 하락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재림

이러한 글로벌 경제의 전개는 1980년대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경제 발전을 막은 ‘스태그플레이션’의 귀환을 시사하고 있다.

스테그플레이션은 스테그네이션(경제 침체)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합성한 신조어로 경제는 불황이지만 물가는 오르는 현상을 가리킨다.

전문가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경제위기 혹은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 초기처럼 막대한 유동성으로 민간과 공공 부문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유동성 공급은 오히려 문제의 핵심인 인플레이션이라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극심한 금융위기와 더불어 ‘더 깊고 긴 장기 경기 침체’가 찾아온다는 의미다. 루비니 교수는 이를 “전례 없는 수준의 막대한 경제위기 폭탄이 찾아오고 있으며, 각국 정책 입안자들이 이에 대응할 방법은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으로 설명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도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 경제에 관해 루비니 교수와 비슷한 부정적인 전망을 내비쳤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재무장관을 지냈던 서머스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가계가 저축한 현금이 바닥나 소비가 줄어들기 때문에 경기 침체 없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예측했다. 경기 침체가 예상보다 상당히 강력하다는 뜻이다.

서머스 교수는 “경제학의 ‘필립스 곡선'(실업률과 물가는 반비례)과 정반대로 지금은 실업률이 0.5% 상승하면 물가는 2.0% 넘게 상승하고 있다”며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금 경기 악화는 마치 눈사태 같아서 가면 갈수록 상황이 가속적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나는 이러한 가능성을 실질적인 위험으로 보고 있다”고 경고했다.

* 이 기사는 나빈 아트라풀리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