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건강한 가정’을 삭제하는가?” 연취현 바른인권여성연합 전문위원장

2021년 04월 23일 오후 4:54 업데이트: 2021년 04월 24일 오전 11:09

“아이가 다칠까 봐, 무슨 일이 있을까봐 걱정이 많다. 혼자 엄마, 아빠 역할을 해야 하니 아빠 역할을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고민된다.”

지난 12일, ‘비혼 출산’을 한 일본 출신 방송인 사유리가 KBS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털어놓은 고민이다. 건강한 가정이란 무엇일까? 배우자 없이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그녀가 한국 사회에 던진 질문이다.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짐에 따라 법과 제도를 개선하라는 요구가 잇따르는 가운데, 지난해 9월과 11월 남인순 의원과 정춘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바른인권여성연합 전문위원장인 연취현 변호사를 만나 관련 내용을 질문했다.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논란의 핵심은 무엇인가?

건강가정기본법(이하 건가법)에서 ‘건강 가정’이라는 용어를 삭제하겠다는 것이다.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다양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또 가족의 형태를 이유로 차별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들어간다.

 

‘건강 가정’을 삭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건강 가정’이라는 용어가 건강하지 않은 가정에 대한 차별을 유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건가법은 모든 가정이 건강해지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가족의 형태를 두고 건강한지 여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 가족의 해체는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이기 때문에 국가가 ‘건강 가정’을 내세우며 해체를 막으면 안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가족의 해체를 당연한 것으로 보고, 해체된 가족에 지원을 강화하다보면 오히려 가족 해체를 강화할 수 있다.

가정은 국가의 기본 질서를 이루는 사회의 기초 공동체다. 건강한 가정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당연한 전제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 가정’ 용어를 없애는 것이 과연 가정을 보호하고, 여성들을 보호하는 길인지 의문이 든다.

 

법안 개정은 누가 추진하는 것인가? 

여성학계와 진보계다. 이들은 건가법 제정 당시부터 계속 ‘건강 가정’ 용어를 반대했다. 이런 논의를 해온 많은 여성학자들이 지금 정치계 및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와 그 산하기관에 많이 진출했다. 해당 법이 제정될 당시 논의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제 실현하려는 것이다.

또,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이 제정된 직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건강 가정이라는 용어는 정상 가족을 떠올리게 하고, 가족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이기 때문에 법명을 개정했으면 좋겠다는 결정이 있었다. 이후부터 17년째 이를 두고 논란이 지속됐다.

 

이번 개정안이 제2의 차별금지법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점에서 그런건가?

정춘숙, 남인순 의원이 낸 법안을 살펴보면 신설된 규정이 없다. 유일하게 추가된 조항이 있는데 바로 가족의 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현재 건가법을 바탕으로 다문화가족지원법, 한부모가족지원법 등 특별법을 통해서 다양한 가족을 지원하고 있다. 이같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소외감을 느끼거나 차별을 받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국민 정서적인 문제다. 법을 개정해서 누군가에게 차별을 하면 안된다고 강제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차별 금지 조항을 넣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건가법 제정 당시 여성계쪽에서 주장했던 ‘가족지원기본법안’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족의 범위에 추가하는 내용 중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가족’이 있었다. 가족의 범위를 무한하게 확장시킬 수 있다.

가족의 형태는 오랜 시간을 두고 변화하기 때문에 문화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국회의 논의를 피하고 급박하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논란이 많은 동성혼 가족이 가족의 범위에 들어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대통령령은 국회에 보고를 하지만 결국 담당 부서에서 정하게 되는데, 여가부가 이를 정한다.

현재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보면 가족의 정의를 전부 삭제했다. 가족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두고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금지 규정을 남겨뒀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적으로 인정하면 또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기본법을 변경하면 그 안의 질서, 개별법들도 모두 바뀐다. 복지 지원을 받는 대상들도 더 다양해진다.

하지만 한 번 주면 회수히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이 복지 혜택이다. 국가 재정이 어려워도 이미 지원을 받는 사람들에게 하루 아침에 끊을수는 없는 노릇이다.

연금이 대표적인 사례다. 재정 적자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연금 혜택을 쉽게 바꿀 수 없잖은가.

 

두 의원이 발의한 내용이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다. 

법을 개정하는 것이 의원들의 실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두명 다 대표발의해서 통과시켰다는 실적이 된다.

입법이 되면 제도가 생기고 예산이 투입되고 다른 제반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지금 국회에서는 많은 법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법률가들도 검토하기 어려울 정도다.

법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는 볼 수 없다. 이게 실질적으로 우리한테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이 법을 통해 만들어질 사회 질서는 어떠한지를 따져봐야 한다.

 

서구 모델 따라가는 한국의 가족법, 이대로 괜찮은가?

법은 문화를 반영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가족에 대해 보수적이었다. 서구의 예를 무턱대고 따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통계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 혼외자 비율이 2%에 불과한 반면 유럽은 40%다. 어느 것이 바람직한가?

다른 나라의 법과 제도를 도입할 때는 시뮬레이션을 해야한다. 문제점들을 살펴보고 대안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충분히 논의를 해야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우선 도입한 후 문제가 생기면 땜빵하는 식이다.

경제 관련 정책이라면 돈을 덜 벌고 손해를 보면서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의 기본에 해당하는 가족 질서를 급진적으로 바꿔버리면 우리 다음 세대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