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심리전에 말린 중공군, 관영 언론은 정신승리 시전

강우찬
2021년 04월 15일 오전 10:29 업데이트: 2021년 04월 15일 오후 3:40

미 전함과 중공 해군이 대치 중인 요즘, 미군이 사진 등을 통해 중공에 메시지를 보내는 ‘인지전’(Cognitive Warfare)을 시작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하자 중공 측은 이에 자극을 받았는지 펄쩍 뛰었다.

4월 3일 중공의 ‘랴오닝호’ 항공모함과 구축한 3척, 호위함 1척, 보급함 1척이 오키나와와 미야코섬을 통과한 뒤 태평양으로 향했다. 이에 미국 ‘루스벨트’ 항공모함은 다음 날인 4일 말라카 해협을 거쳐 남중국해로 진입했다. 중공 관영 매체에 따르면 양군은 해상에서 만났다.

지난 11일 미 해군은 USS 머스틴함의 지휘관인 로버트 브릭스 중령과 부함장 리처드 슬라이 중령이 수천 미터 떨어진 랴오닝함을 여유롭게 지켜보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 브릭스 중령은 여유롭게 발을 뱃전에 올려놓고 반쯤 누워 먼 곳을 바라보고 있으며 슬라이 중령은 팔짱을 낀 채 유유히 서 있다.

이번 움직임은 미국이 중공에 ‘인지전’을 걸어 랴오닝함이 두렵지 않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인지전’이라는 비교적 최근인 1990년대부터 사용되고 있지만, 그 개념은 사실 유래가 깊다.  ‘정보전(Information warfare, IW)’이 시작된 이후 파생된 모든 구체적이 전략전술을 총괄한 개념이다. 정보와 지식을 통한 모든 종류의 전쟁을 가리킨다. 넓은 의미에서 정보를 이용한 심리전까지 포함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11일 대만 가오슝 해군사관학교 전 교관의 말을 인용해 이 사진은 미국이 시작한 ‘인지전’의 일부분이라며 미국이 중공을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이 교관은 “두 미군의 자세는 자신들이 중공군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캐나다에 본사를 둔 동아시아 군사 전문지, 칸와 디펜스 리뷰(Kanwa Defence Review)의 안드레이 장 편집장은 이 사진은 ‘미국이 이미 랴오닝함의 공격능력을 꿰뚫고 있다’고 중공군에 보내는 경고라고 밝혔다.

사진 전문가들은 이 사진이 우연히 촬영된 것이 아니라 랴오닝함이 보이는 각도와 구도 등을 철저하게 계산해서 찍은 사진이라고 분석했다. 두 지휘관의 자세 역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저렇게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해군은 이후 해당 사진을 내렸지만, 사진에 대한 반응은 미국 국내보다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에서 길게 이어지고 있다.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중공의 애국주의 네티즌들이다.

이들은 중공의 요란한 선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미군으로부터 투명인간 취급받는 랴오닝함의 처지에 “가슴이 미어진다”는 글을 달며 실망감을 나타냈다.

내심 미군이 바짝 긴장하기를 바랐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든 눈치다.

관영매체들도 붉어진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환구시보의 후시진(胡錫進) 편집장과 CCTV 등 중공 관영언론은 일제히 미군의 허세라고 반발했다.

중공의 대표적인 어용 논객인 후시진 편집장은 지난 12일 웨이보를 통해 “이 사진은 미국이 동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애써 깍아내렸다.

이어 “중국은 전쟁이 시작되면 미군을 해안선에서 1500km 떨어진 곳까지 이동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별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CCTV는 미 해군이 해당 사진을 공개한 당일(11일) 오후 중공 해군의 실탄훈련 장면을 공개하며 ‘집중포화’를 퍼부었다고 했다. 빈 목표물에 퍼부은 집중포화로 마치 미군을 몰아붙인 듯한 분위기를 냈지만, 그것뿐이었다.

대만과 홍콩 등 중화권 네티즌들은 이같은 중공 관영언론의 선전을 아랑곳하지 않고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머스틴함 함장이랑 일등항해사가 갑판에서 다리를 꼬고 랴오닝함을 지켜보는 건 분명 상대방이 아무런 위협도 안 된다는 걸 보여준다. 완전 무시하는 것이다.”

“랴오닝함은 담장(방화벽) 안의 우민들에게나 보여주는 것이지. 미국으로서는 웃음거리 연극밖에 되지 않는다. 미군 함장이 맥주 한잔 들었으면 더 기가 막혔을 텐데.”

“두 무술가가 인사를 주고 받기만 했는데 이미 승부가 보인다. 중공은 온갖 바짝 긴장하고 경계했겠지만 미군 함장은 함선 난간에 다리 올리고 편안한 자세로 랴오닝을 지켜봤다.”

“중공 관영언론은 중공군의 승리로 전하고 있지만 사진을 보면 랴오닝이 영락없이 달아나는 모양새다.”

미국과 중국 항모전단이 첫 대치 상황을 일으킬 수 있다며 관심을 끌었던 이번 사건은 랴오닝함 항모전단의 줄행랑으로 싱겁게 끝났지만, 중공 애국주의 네티즌과 관영언론에는 한동안 트라우마를 남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