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눌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마지막 기부로 ’10년 약속’ 지킨 대구 키다리 아저씨

이서현
2020년 12월 25일 오전 11:50 업데이트: 2022년 12월 13일 오후 1:22

대구에는 연말마다 성금을 전하는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

60대인 아저씨는 올해도 어김없이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연락을 해왔다.

아저씨와 모금회의 인연이 시작된 건 지난 2012년부터다.

그해 1월, 익명으로 1억원을 같은 해 12월 1억 2300여만을 전달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1억 2천여 만원을 기부했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난해엔 ‘금액이 적어서 미안합니다. 나누다 보니 그래요’라고 적힌 메모와 함께 2300여만원을 전달했다.

그리고 올해, 아저씨는 모금회 직원들과 함께 작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5천여만원 어치 수표가 든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속에는 “저와의 약속이 10년이 되었는데 이번으로 익명 기부를 그만둘까 합니다’라며 “함께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라는 내용의 메모도 들어 있었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그동안 아저씨가 10여 차례에 걸쳐 맡긴 성금은 10억 3500여만원에 달한다.

모금회 측에서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 가입이나 감사 표창을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만큼 익명으로 조용히 기부하기를 원했고, 처음에는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날 식당에 자리를 함께 아저씨의 부인은 “첫 번째와 두 번째로 기부할 때는 남편이 키다리 아저씨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며 “어느 날 신문에 난 필체를 보고 남편임을 짐작해 물어서 알게 됐다”고 밝혔다.

큰돈을 기부했지만, 아저씨의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일찍 여위고 가장이 된 아저씨는 학업 대신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어야 했다.

결혼하고서도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끼고 아껴 수익의 3분의 1은 어려운 이웃과 나눴다고 한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연합뉴스 TV

그 후 회사를 경영하며 많은 위기도 맞았지만 나눔은 멈추지 않았다.

직원들이 기부를 중단하라고 권유할 때도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다”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저씨는 지금도 10년이 훌쩍 넘은 자동차와 낡은 가방을 사용하면서도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데 쓰는 돈은 아끼지 않았다.

이제는 아저씨의 선행을 알게 된 자녀와 손주들이 이를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기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한다.

키다리 아저씨는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며 많은 이들이 나누는 데 동참하기를 바랐다.

모금회 측은 “오랜 시간 따뜻한 나눔을 실천해 주신 키다리 아저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라며 성금을 꼭 필요한 곳에 잘 전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