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기업된 디즈니, 55년간 누리던 자치권 박탈됐다

남창희
2022년 04월 23일 오후 5:38 업데이트: 2022년 04월 24일 오후 5:14

플로리다주, 디즈니랜드 자치 특권 폐지 결정
“디즈니가 ‘깨어 있는’ 이념 퍼뜨려…중대 위협”
디즈니 “어린이 성정체성 교육 필요, 싸울 것”
드산티스 “학교는 이념주입 아닌 교육의 장소”

미국 플로리다주가 디즈니에 55년간 부여했던 특별 자치권을 철회했다. 론 드산티스 주지사는 22일(현지시각) 디즈니랜드의 특별지구 지정을 취소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전날 하원, 앞서 20일 상원을 통과한 이 법안은 디즈니랜드가 위치한 리디크리크를 포함해 몇몇 지역의 특별지구 지정을 내년 6월까지 모두 해제한다.

플로리다주는 지난 1967년 리디크리크를 특별지구로 지정해 자치권을 부여했다. 이 덕분에 디즈니는 디즈니랜드를 건설하면서 각종 세제 혜택을 누리고 지방정부 승인 없이 부동산 개발 사업을 벌일 수 있었다.

그러나 디즈니는 플로리다주가 최근 제정한 ‘부모의 교육권리법’에 반발하면서 플로리다주와 마찰을 빚었다.

이 법은 유치원과 공립 초등학교 1~3학년 교실에서 성(性)정체성에 대한 수업·토론을 금지한다. 이 밖에 학교가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칠지, 학부모에게 더 많은 결정권을 주는 내용을 담았다.

드산티스 주지사는 지난달 말 이 법안을 최종 승인하며 “부모가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서 세뇌가 아닌 교육을 받는지 확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의 교육권리법’은 일부 교사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비판적 인종이론'(CRT)이나 ‘정치적 올바름'(PC) 같은 변종 사회주의 이념을 주입하고 있어 조치가 시급하다는 학부모들의 요청에 따라 탄생했다.

부모들의 교육 결정권을 강화하는 법을 제정한 일이 디즈니의 특권 폐지로 이어진 것은 디즈니가 이 법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이 법을 없애기 위해 법정 투쟁도 불사하겠다며 드산티스 주지사와 플로리다를 상대로 선전포고에 가까운 성명도 발표했다.

성소수자(LGBTQ) 지지자들이 학교에서 성정체성 및 성적 지향의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에 반대할 것을 디즈니에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Phelan M. Ebenhack/AP/연합

디즈니는 성명에서 “이 법은 ‘게이 언급 금지(Don’t Say Gay)법’으로 알려져 있으며, 의회를 통과하거나 주지사 서명이 이뤄져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 회사는 이 법의 폐지나 반려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공동의 목표를 지닌 단체의 법적 다툼을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게이 언급 금지법’는 미국 내 좌파, 동성애 권리단체가 ‘부모의 교육권리법’을 부를 때 쓰는 표현이다. 좌파 단체는 나이 어린 성적 소수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도 학생들에게 성 정체성 관련 토론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디즈니는 동성애 지지와 정치적 올바름 확산에 힘써왔다.

밥 체이펙 디즈니 최고경영자(CEO)는 ‘부모의 교육권리법’ 제정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달 발표한 성명에서 “(사내) LGBTQ+ 공동체로 우리 회사는 더 좋고 더 강한 회사가 됐다고 믿는다”며 성소수자들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CEO의 신념은 그대로 어린이용 방송 콘텐츠에도 반영됐다. 디즈니 TV애니메이션 제작 책임자인 라토야 라브노 PD가 고위급 내부 회의에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에 동성애 코드를 삽입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영상이 유출됐다.

이 책임자는 당초 자신의 행위가 어린이·가족채널인 디즈니의 방침에 어긋날까 봐 걱정했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할 수 있는 모든 곳에 퀴어(Queer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 등) 코드를 넣도록 격려해줬다고 감격하기도 했다.

공화당과 드산티스 주지사는 동성애자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하지만, 어린 학생들에게 성 정체성 토론을 시키며 이념을 주입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는 입장이다. 부모의 교육권리법 역시 유치원과 초등학교 1~3학년을 보호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론 드산티스 미국 플로리다 주지사 | Joe Raedle/Getty Images

드산티스 주지사는 “자녀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 문제는 교사가 아니라 부모에게 맡겨야 할 일”이라며 “플로리다의 정책은 플로리다 주민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며, ‘깨어 있는(Woke)’ 기업의 주장에 따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과 일부 정부 관리들은 디즈니의 자치권을 폐지하면, 디즈니가 그동안 납부해오던 한 해 수천억 원 이상의 세금이 줄어들 수 있으며, 줄어든 세수 부담이 지역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드산티스 주시사는 “안심하라. 모든 상황을 고려했다. 이 일로 디즈니가 납부하는 세금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드산티스 주지사는 최근 PC나 ‘깨어 있는’ 이념의 확산에 대해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는 이달 초 공식석상에서 “우리 주(州)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보고 있다”며 “만약 우리가 ‘깨어 있는’ 이념을 방치하면, 우리 나라를 망가뜨릴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플로리다에서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산티스 주지사는 이날 ‘깨어 있는’ 이념 금지법(Stop WOKE Act)이라고 불리는 별도 법안에도 서명했다. 이 법은 플로리다의 모든 직장과 교실에서 비판적 인종이론이나 유사 활동을 금지한다.

* 이 기사는 잭 필립스 기자가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