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석향 교수 “대북정책은 ‘사람’이 기본, 납북자·국군포로 문제 목소리 내야”

이연재
2022년 06월 29일 오후 6:56 업데이트: 2022년 06월 29일 오후 6:56

지난 2년 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확진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북한이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북한은 코로나 19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식 봉쇄 정책을 모방한 지역·단위별 강력한 봉쇄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김석향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에서 실행하는 방역 조치는 중국의 봉쇄보다 더 악화된 버전”이라고 지적했다.

백신이 없는 데다 열악한 의료체계에 식량까지 부족한 북한으로선 중국식 봉쇄 정책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 전공자인 김 교수는 북한 사회문화와 북한 인권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한 권위자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 통일부 통일교육원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통일부 재직 기간, 대북 식량·비료 인도적 지원사업 담당자로 북한의 여러 지역을 직접 방문했다. 북한 문제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오랜 연구로 북한 사회 및 경제, 인권 문제 전문가로 통한다. 북한연구학회장 및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

김 교수는 북한에 백신을 지원하는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받든 안 받든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언제든 지원할 준비가 돼있다’는 메시지를 통일부에서 정기적으로 북한에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바람직한 대북 정책에 대해선 “기본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다.”며 “여기서 기본이라 함은 어떤 사회에서든 통할 수 있는 기본적인 가치인 인권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사람의 생명에 관한 한 ‘우리는 기본을 지킨다’라고만 생각을 가지기만 해도 정권에 따라 정책이 흔들리는 폭이 줄어들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대북 정책의 기본 방향은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봤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큰 차이점이 ‘인간관’이라 했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북한 어민 두 명을 북송한 것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태도는 정말 잘못된 일이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다.”라며 “그 공무원이 설령 ‘월북한다’고 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김석향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 NTD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물망초 전쟁범죄조사위원회 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전쟁범죄조사위원회는 무엇이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6.25 전쟁 초기 북한이 ‘인재 모시기 작전’을 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지식인들, 대학 교수, 의사, 법조인 등을 유형별로 데리고 갔다. 법조인 같은 경우는 전쟁 초기 법원이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데려갔다. ‘어떤 식이였냐’ 하면 새벽 5~6시경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데려갔다. 잠옷 차림으로 ‘잠깐 갔다 올게’ 하고 그 길로 끝이었다. 북한에서 김일성 종합대학을 처음 만들었을 때 교직원 중 남한에서 데려간 사람이 3분의 2 이상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들 중 북한에서 계속 살아남은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가 처형됐다. 이런 분들을 연구한다. 그런데 나는 적극적인 멤버는 아니다. 한쪽 다리를 걸치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하.”

– 북한에 다녀온 것으로 안다.

“98년 11월 18일,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그날 금강산 가는 첫 배가 떴다. 그때 통일교육원 소속이었고 금강산에 가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대북 정책 강연을 해야 했다. 그때부터 거의 6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갔다. 청진에서부터 시작해 남포, 그리고 남포 안쪽으로 들어가면 황해도 송림이라는 제철소가 있는 곳이 있는데 거기까지 해서 항구도시들을 돌았고 개성공단이 시작되고 난 다음에는 오히려 평양을 많이 갔었다.”

– 느낌이 어땠나.

“‘우리나라 60년대, 70년대 같아?’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60년대와도 비교할 수 없다.  굉장히 어려웠다. 북한은 지역별 격차가 너무 심하다. 탈북민이 평양에 있다가 청진을 가면 천국에서 지옥에 간 것 같다고 한다. 그런데 또 청진에서 회령으로 가면 천국과 지옥의 격차라고 한다. 회령 안에서도 시내와 외곽 탄광촌은 천국과 지옥 차이다. 그 표현이 정확하게 맞는 것 같다. 북한 사람들이 왜 평양을 꿈의 도시라고 말하는지 이해가 갔다.”

–  방문 때 가장 인상에 남었던 일이 있다면.

“12살 정도 되는 꼬마가 여동생으로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가고 있었다. ‘어디 가니’하고 물으니  ‘밥 얻어먹으러 삼촌 집에 간다’고 하더라. 그래서 ‘엄마는 어디 가셨는데’ 그랬더니 ‘한 달 전에 장사하러 갔는데 언제 올지 모른다’고 했다. 아이에게 ‘몇 살이냐’물었더니 17살이라고 했다. (성장 정도가) 믿기지 않았다. 정말 12살 정도로밖에 안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한 일주일 동안 안정이 되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났다. ‘김정일, 너 나와!’ 이러고 싶었다. ‘어떻게 사람들을 저렇게 만들 수 있지’ 하는 생각에 너무 화가 났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 ‘사람들을 저렇게 내버려 두는 건 정말 아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힘들었다.”

– 방문 시기는 언제쯤이었나.

“고난의 행군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다. 2003년에서 2005년쯤 된 것 같다. 도시는 온통 진회색이었고 베란다에 샤시를 설치하고 유리를 단 아파트가 별로 없었다. 비닐로 막아 놓은 집이 몇몇 있었는데 그런 집은 형편이 좋은 집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 뒤로 사람들이 장사를 하면서 사는 게 나아졌다. 내 기억에 2006년에 평양을 갔을 때 아파트 베란다에 유리도 달고 색도 입혀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 이후 북한 상황은 어떤가.

“우리가 북한에 식량 지원할 때 정기적으로 지원하다가 간격이 생기면 북한의 인수 대표단이 벌써 생필품이 부족하다고 얘기했다. 북한 당국도 2020년 문을 닫았을 때만 해도 코로나가 이렇게 오래갈 거라는 생각을 안 했을 거다. 물론 장사하는 사람들을 통해 중국에서 생필품을 들여와 썼겠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 2년 동안 완전히 막혔다.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나라의 문제는 특정 계층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기본적인 생필품도 위협을 받는다.”

“지금이 고난의 행군 때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지는 확실치 않다. 그런데 고난의 행군 때는 북한 사람의  80~90%가 식량난으로 고통받았다. 그래서 누가 굶주리는지 알았고 그 자체가 숨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장마당에서 장사를 시작하면서 누가 굶는다고 하면 부끄러운 일이 됐다. 왜냐하면 능력이 없어서 굶는 거니까 밥 굶는 것을 서로 숨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식량이 모자라는지, 어느 정도 심각한지 잘 드러나지 않아 더 큰 문제다. 어쨌든 북한은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맞는 것 같다.”

– 최근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코로나 대응 방안으로 민간요법을 권장해 한국에서는 이 조치가 웃음거리로 희화화됐다. 금은화와 버드나무 잎을 달여 먹을 것을 권장한 것인데, 실제 북한 주민들은 코로나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그들은 어느 집에서 무슨 장사를 하는지 대충 안다. 동네에 장마당이 서지 않아도 누가 약방을 하는지 알기 때문에 의약품이 있는 한도 내에서는 소통하면서 구할 것 같다. 북한 사람들은 고난의 행군 때 당국이 식량 배급을 해줄 것이라 믿고 아무 대비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국을 절대 믿지 않는다. 북한 방송을 보면 ‘버드나무 잎을 삶아 먹어라’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 주민들은 어쨌든 자체적으로 무엇이든 준비해 놨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해열제 대용으로 아편대를 달여 마시거나 필로폰을 사용할 수 있다. 2000년 정도까지 아편에 의존했고 2003~2004년부터는 필로폰이 북한 전역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2007~2008년 돼서는 ‘마약 때문에 망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내 생각에 코로나 치료로 필로폰을 굉장히 많이 쓸 것 같다. 고통을 잊기 위해서라도 쓸 거고 기운이 없으니 기운 좀 내볼까 이러면서 쓸 거다. 그리고 이미 중독된 사람도 상당히 많다. 과다 복용으로 죽는 사람도 많다. 북한에 지금 갈 수 없어 정확하진 않지만 ‘비명이 여기저기서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북한의 의료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백신을 지원한다 해도 주민들에게 접종이 잘 되지 않을 거란 우려가 있다.

“북한에는 병원이 1차, 2차, 3차, 4차가 있는데 평양 적십자 병원은 4차 병원이다. 그러니까 다른 병원에서 손쓸 수 없을 때 최종적으로 가는 가장 좋은 병원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맥주병에 들어있는 수액을 봤다. 그러니까 맥주병을 깨끗이 세척하고 무균 상태로 만들어서 5% 포도당을 넣고 노란 고무줄로 끼워 그걸 수액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때가 2005, 2006년쯤 된 것 같다. 북한의 의료 체계로는 백신을 보관하기 어려울 거다. 평양의 일부 지역이나 대도시 청진, 원산 이런 곳은 냉장 보관이 가능하지만 그 외에는 안 된다고 보면 된다.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냉장고에 책을 넣는 상황이니까, 그만큼 열악하다. 하지만 백신이 전 주민들을 한 번에 접종할 수 있는 양이 지원된다면 백신의 유효기간 내에 빠르게 맞추는 건 가능할 수 있다.”

– 북한의 코로나 방역 조치로 북한 내 인권이 악화됐다는 견해가 있다.

“중국의 사례를 보면 안다. 중국은 아파트에서 환자가 발생했다고 하면 현관문을 봉쇄한다. 북한에서 실행하는 방역 조치는 그것에서 더 악화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안에서 사람이 죽든 말든 관심 없다. 인간을 도구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대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을 거다.”

“‘자력갱생’이란 말이 있다. 그 자력갱생이 고난의 행군을 지나면서 뜻이 변했다. 북한 당국이 ‘인민들에게 해줄 건 다 해줬다. 그러니 이제 알아서 살아라.’라고 한다.  북한 당국은 외교관에게 살아갈 수 없을 정도의 월급을 주면서 충성자금을 바치라고 한다. 그럼 그 외교관은 담배, 마약 등을 밀수해서 상납하는데 북한 당국은 그 사람이 불법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국가가 강도나 다름없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코로나 백신 지원 의사를 밝히고 있는데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뭔가.

“장군님(김정은) 자신의 체면에 손상이 가니까 안 받는 거다. 물론 비밀리에 주거나 김정은에게 ‘바치는 자세’로 갖다 주면 당연히 받을 테지만. (웃음) 자유주의 사회 지도자들은 대중의 목소리를 무서워하지만 독재자는 그 목소리에 더 취약하다. 북한의 장마당 역사를 보면 당국이 장마당을 처음부터 인정한 게 아니다. 막았다가 주민들의 불만이 터질 것 같으면 살짝 열어주고 또 막았다가 터질 것 같으면 열어줬다. 그래서 북한의 장마당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 쭉 올라가지 않았다. 주민들 불만이 터지면 자기 목이 날아갈 것 같으니까 그런 거다. 지금 북한 당국은 누적된 주민 불만을 달래기 위해 ‘기다리면 좋아질 거다’라는 메시지를 수시로 보내고 있다. 여기저기 건물 세우면서 보여주고 가끔 김정은이 눈물도 흘리면서 인민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집에 있는 의약품까지 들고 나오기도 하는데 김정은은 지금 고민이 많을 거다.”

 – 일각에서는 취약층 주민 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의약품, 백신 등은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의료적 도움은 북한이 받든 안 받든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언제든 지원할 준비가 돼있다는 메시지를 통일부에서 정기적으로 북한에 보냈으면 좋겠다. 특히 장애인보장구나 여성 생리대는 ‘원하는 만큼 줄 테니 언제든지 가져가라’고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지원 물품이 주민들에게 배급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다.

“100개를 주면 그중에 10개가 주민들에게 가는지 20개가 가는지 모르겠지만 안 가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쌀을 보내면 이걸 주민들에게 주었다 다시 뺏는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맞긴 맞다. 그런데 쌀을 다시 가져가더라도 한 이틀 정도는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쌀이 배급된다는 소문이 돌면 시장에 쌀값이 떨어지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우리의 지원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사용된다고 아무것도 안 한다? 그게 과연 옳은가? 그래도 굶는 사람은 먹여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외의 일은 다음에 논의해야 하는 거 아닌가.”

– 한국의 대북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은.

“통일부 공무원이던 시절 ‘대북 정책은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굉장히 괴로웠다. 어떻게 하면 이런 소리를 듣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그때는 답이 없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 지나 보니 지금은 알 것 같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여기서 기본이라 함은 어떤 사회에서든 통할 수 있는 기본적인 가치인 인권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다른 것은 약간씩 타협이 가능한데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서는 타협이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북한 어민 두 명을 북송한 일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정말 잘못했다고 본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설명 그 공무원이 ‘나 월북할래’ 했더라도 그렇게 대하면 안 된다.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가치관은 항상 지켜야 한다. 북한에 억류하고 있는 6명의 선교사분들에 대해 ‘안전하게 돌려보내라’라고 말해야 하고 북한이 안 들어도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 국군 포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중국 정부에게도 ‘탈북민을 북송하지 말라’고 얘기해야 하고 그들이 한국으로 오겠다고 하면 한국 정부는 최대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의 생명에 관한 한 ‘우리는 기본을 지킨다’라고만 생각을 가지기만 해도 정권에 따라 정책이 흔들리는 폭이 줄어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