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⑦ 대륙붕 경계를 둘러싼 한·중·일 삼국지

해양주권의 최전선 이어도

이윤정
2023년 04월 16일 오후 10:42 업데이트: 2024년 03월 9일 오전 9:44

이어도는 오늘날 한국의 해양 주권을 상징하는 해양 영토다. 이어도와 그 주변 해역은 중국·일본 등 주변국들과의 배타적 경제수역 확정 문제, 해상 관할권 문제 등이 걸려 있다. 2003년 이어도에 국내 최초로 해양과학기지가 설치된 이래 중국은 해당 수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해왔다.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가 2022년 발간한 ‘이어도 오디세이’는 이어도 종합해양기지에 관한 그간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러한 주변국의 무리한 권리 주장에 대한 대응 논리를 담은 책이다.
에포크타임스코리아는 이어도연구회의 도움을 얻어 책을 바탕으로 이어도에 관한 여러 방면의 이야기를 담은 특집 기획을 마련했다.
그 일곱 번째 순서로 한·중·일 해양 영토 분쟁의 핵심인 대륙붕 수역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어도 바다는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중에서도 알짜 노른자위 해역이다. 자원의 보고인 대륙붕을 지키는 근거지이자 우리나라가 지켜야 할 핵심 이익을 품은 해양영토다. 바닷길의 급소인 이어도를 지키는 일에 한국과 한국인의 공존·번영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해양의 미래가치와 주권 의식

해양은 ‘제2의 영토’로 각광받는다. 지구상 부존자원 중 육지 자원이 해양 자원보다 훨씬 빨리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바다로 눈을 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양은 자원의 보고다. 현재로선 계측이 불가능한 막대한 광물자원과 무한대 에너지자원을 내장하고 있다. 해양의 95%는 아직 미개발 상태다. 금속 매장량의 경우 육지가 110년 치에 불과한 데 비해 해양은 1만 년 치가 부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저 석유 부존량은 발견된 것만 육지 부존량과 비슷한 1조6000억 배럴에 이른다. 그중 62%가 미개발 상태이며, 미발견 석유 부존량은 추정조차 어렵다.

가스하이드레이트 매장량은 10조t 이상으로 현재 소비량 기준으로 인류가 5000년 이상 쓸 수 있다. 해양에너지 자원은 150억㎾로 추정된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재생이 가능한 천연자원이다. 이 밖에도 열수광상·망간각·망간단괴·해양생물·해수 용해 광물 등 해양은 막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에 해양은 사활적 과제다. 해양에서 얼마나, 어떻게 권익을 확보하느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해양의 미래가치를 확실히 인식하고 해양주권을 확보·강화해 나가는 일은 이 시대 국가와 국민에게 맡겨진 책무다.

우리나라는 지리적 특성상 해양 개발, 대양 진출에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동서에 일본과 중국이란 강대국이 버티고 있다. 이들 국가와 해역이 중첩돼 해양경계획정, 관할권 확보, 자원 개발·활용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쌓여 있다.

21세기는 ‘대륙붕의 시대’

2012년 12월 보도된 ‘우리나라 대륙붕 수역’ | 연합뉴스

해양에 미래가 있다고 할 때 핵심은 대륙붕(육지와 연결된 수심 200m까지의 바닷속 땅)이다. 해양지질학적으로 대륙붕은 해안으로부터 붕단(해저에서 수심이 깊어지며 경사를 이루는 곳)까지 평균 182m로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한 해저지형을 말한다. 육지의 지층이 바다 쪽으로 자연 연장된 ‘해저 영토’라 할 수 있다.

대륙붕은 수심이 낮아 식물플랑크톤이 다량 서식한다. 광합성 작용이 활발해 다양한 어류, 어패류, 산호초, 해초 등이 자라기 적합하다. 수산자원뿐 아니라 석유·천연가스 등 인류가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에너지 자원과 해저 광물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대륙붕 탐사·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우리나라도 2004년 7월 동해 대륙붕 31번 시추공에서 천연가스의 상업적 생산에 성공했다. 한국은 오랫동안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자원 빈국’이란 인식이 보편적이었지만, 천연가스를 본격 생산함으로써 한국은 세계 95번째 산유국으로 인정됐다. 이를 계기로 대륙붕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아졌다.

해양법 체제 형성과 함께 21세기 ‘대륙붕의 시대’가 열렸다. 해양법은 대륙붕의 바깥 한계를 200해리 이원까지 확장할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를 제공했다. 대륙붕 개념이 재정립됨으로써 ‘바다가 영토가 된다’는 불가능의 명제가 가능성으로 바뀌었다.

다만 대륙붕 한계를 둘러싼 연안국 간 대립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한반도 주변 해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 정부는 2012년 12월 26일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 200해리 이원의 대륙붕확장 외측 한계에 관한 심사 청원을 제출했다. 이는 육지영토의 자연적 연장에 따라 동중국해에서 한국의 대륙붕확장 끝이 일본의 오키나와 해구까지 뻗어 나간다는 것을 공식화했다는 중대한 의미가 있다.

한국 견제하는 중국·일본

1973년 6월 27일 서울 외교부에서 열린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을 위한 실무회의 |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2013년 1월 11일 “CLCS가 한국 정부의 제출 문건을 심사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을 구상서(口上書·note verbale)로 요청했다. CLCS는 인접국이 해당 대륙붕에 분쟁이 있다고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면 해당 국가에 대한 문건 심사 자체를 진행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가 제출한 대륙붕 외측 한계에 관한 심사는 대기 상태에 있다. CLCS의 결정은 최종적이며 구속력을 갖는다. 하지만 CLCS는 해양과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구로 해양법에 관한 유권해석을 하는 사법기관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중국도 한국에 대한 견제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2012년 12월 14일 CLCS에 제출한 심사 청원에서 자국의 대륙붕이 오키나와 해구까지 뻗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전문가는 한국과 일본의 대륙붕 공동개발협정이 종료되면 중국이 이 구역까지 넘볼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1978년 ‘대륙붕 공동개발구역(JDZ)’ 협정을 체결했다. 한국에 산유국의 꿈을 처음 심어준 대륙붕 제7광구가 그곳이다. 그러나 협정은 40여 년간 실질적 성과 없이 2028년 6월 22일 종료될 예정이다. JDZ 개발에 소극적이었던 일본은 협정 기간 중 JDZ에서 불과 860m 떨어진 곳에 중국과 공동개발구역을 설정해 석유자원 개발을 추진하기도 했다.

현재 공동개발에 관한 일본의 입장은 협정이 종료된 뒤 단독 개발 등의 방안을 재검토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이 유연한 개입을 통해 선택을 유도하는 ‘넛지(nudge) 효과’를 유발해 상생과 협력을 모색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한반도 주변 해역은 대부분 경계 미획정 수역으로, 한국이 독자적으로 해저 광구 개발을 추진하기가 어렵다. JDZ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국제 공동개발도 쉽지 않다.

이어도 해역은 해저광물자원법에 따라 제4광구에 속한다. 대륙붕으로서 해양 개발·탐사 가치가 매우 높은 해양영토다. 지금은 한·중 해양경계획정 향배가 불투명하지만, 해양과학 협력 차원에서 양국 이해관계의 접점이 넓어지면 공동개발 가능성은 열려 있다.

육지영토는 경계가 분명해 영토를 넓히기가 매우 어렵지만, 해양영토는 다르다. 한 나라의 해양영토는 영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해를 넘어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까지 넓게 뻗는다. 해양경계획정 협상 결과에 따라 해양영토 확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