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탈리아·이란 확진자 급증에 반색하는 中 매체들 “발원지 중국 아니란 증거”

한동훈
2020년 03월 8일 오후 9:29 업데이트: 2020년 03월 10일 오전 12:06

“수많은 연구들에서 발원지가 다른 나라일 수 있다고 나타낸다. 미국, 이탈리아, 이란 등지에서 아시아를 다녀가지 않은 신종코로나 폐렴 확진 사례가 많다는 것이 그 증거다. 따라서 중국이 사과할 이유는 더욱 없다”

지난 4일 관영 신화통신 인터넷판인 신화망을 비롯한 중국 주요매체들이 한 인터넷 논객의 글을 대거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중국 금융·정세분석 위챗 계정 ‘황성칸진룽(黃生看金融)’에서 발표한 ‘떳떳하다, 세계가 중국에 감사해야 한다(理直气壮, 世界应该感谢中国)’는 제목의 글이었다.

관영언론을 비롯한 중국 주요 매체들이 인터넷 논객의 글을 일제히 게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경우 중국 공산당이나 정부의 어떤 ‘방향성’을 인터넷 논객의 입을 빌려 제시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해당 글은 최근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해,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 폐렴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백악관의 신종 폐렴 전담팀장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기도를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태 악화 시 중국과 비슷한 조치를 하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일부 실시할 수도 있다”고 한 발언을 언급하며 중국을 따라 배우려는 속마음을 드러냈다고 억지 주장을 폈다.

신화망에 게재된 ‘떳떳하다, 세계가 중국에 감사해야 한다(理直气壮, 世界应该感谢中国)’. 국가적 재난을 맞아 신 앞에 숙연하게 기도하는 정부가 있는가 하면, 남탓만 하는 공산주의 정권도 있다. | 신화망 화면 캡처

이 대목에서 글쓴이는 펜스 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도하는 사진을 게재했다. 본문 중 유일하게 들어간 사진 한 장이었다. 공산국가는 무신론을 주장한다.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비웃는 의도가 명백했다.

이어 글쓴이는 “중국이 중국인의 미국여행을 금지하면 미국이 경제적 타격을 입고 증시가 폭락한다”며 “그러나 중국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며 마치 자비를 베푸는 듯한 뉘앙스를 남겼다.

또한 “미국 마스크는 대부분 중국산”이라며 “중국이 마스크 수출을 금지하면 미국은 마스크 부족으로 방역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어려워진다고 미국 관리들이 말했다”고 적었다.

이와 함께 “미국이 수입하는 약품 90%가 중국과 연관된다”며 “중국이 의약품을 대부분 국내용으로 돌려 수출을 금지하면, 미국은 신종코로나 폐렴의 지옥에 빠질 것”이라고 언제든 미국을 위험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인류애가 있기에, 마스크와 의약품 수출은 금지되지 않고 있다”면서 생색내기를 한 뒤 중국 사과론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한동안 중국이 세계에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터무니없다. 중국은 신종폐렴과 맞서 싸우며 막대한 희생과 엄청난 비용을 치르며, 전염병 확산을 막았다”며 “중난산(南山) 원사의 연구에 따르면, 신종코로나 폐렴이 중국에서 먼저 발생했지만, 꼭 중국에서 발원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아울러 “수많은 연구들에서 발원지가 다른 나라일 수 있다고 나타낸다. 미국, 이탈리아, 이란 등지에서 아시아를 다녀가지 않은 신종코로나 폐렴 확진 사례가 많다는 것이 그 증거다. 따라서 중국이 사과할 이유는 더욱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중국에 사과하고, 세계는 중국에 감사해야 한다. 중국의 거대한 희생과 감당 없이 전 세계를 위해 신종 코로나 폐렴을 막을 시간을 벌지 못했을 것이라고 떳떳하게 말해야 한다”고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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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원료를 중국에서 공급하고, 마스크와 의약품 생산시설이 중국에 있는데 이를 수출 제한하지 않았으니 중국에 감사해야 한다는 논리는 섬찟하다.

“중국에 생산설비와 원료가 있는데, 마스크 수출을 막았다면 우리가 곤란했을 것”이라는 한국 내 일각의 주장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이러한 중국 논객과 언론의 공세적 논조는 지난 2월 27일 중난산(鐘南山) 중국공정원 원사의 ‘해외 발원설’이 신호탄이 됐다.

중난산 원사는 이후 2월 말에도 또 다른 적반하장 주장을 펼쳤다. 지난 3일 중국신문망에 따르면 중난산의 연구팀은 전날 ‘흉부 질환 학술지(Journal of Thoracic Disease)’ 최신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2003년 사스(SARS) 데이터를 딥러닝 시킨 AI 분석모델을 소개했다.

이어 “(AI) 예측 모델에 따르면, 방역조치가 5일 더 빨랐으면 환자가 66% 감소했을 것”이라면서도 “만약 현재 이뤄지는 방역조치가 5일 늦게 시행됐다면 지금보다 약 3배 많은 확진환자가 발생했을 것”이라며 중국 정부를 옹호했다.

이 소식을 접한 한 중화권 네티즌은 이렇게 꼬집었다.

“누군가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아 아래층 이웃집이 물에 잠겼다. 이웃이 크게 화를 내자, 위층 사람은 그제야 수도꼭지를 잠그면서 ‘당신은 내게 감사해야 한다. 내가 만약 30분만 늦게 잠갔다면 당신 집은 더 많이 잠겼을 것’이라고 했다. 중난산 발언이 딱 그런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