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42% ‘홍콩 떠난다’…경제 중심지 위상 흔들

2021년 06월 10일 오후 5:57 업데이트: 2021년 06월 10일 오후 5:57

아시아 금융투자 1번지였던 홍콩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글로벌 기업과 외국 국적 전문직 종사자들의 홍콩 탈출이 심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홍콩 주재 미국상공회의소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325명 중 42%가 홍콩을 떠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홍콩판 국가안전법’ 시행에 따른 불안 가중, 중국 정부의 권위주의적 탄압, 홍콩의 미래에 관한 비관적 전망 등을 이유로 들었다.

중국 공산당은 작년 6월 말 국가안전법을 시행하면서 ‘사회 안정’을 내세웠지만, 정반대 효과가 글로벌 기업들의 입을 통해 입증된 셈이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홍콩 지역본부나 사무실을 타 지역으로 이전한 글로벌 기업은 수십 개에 달한다. 특히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한 탄압과 국가안전법 시행이 이어진 작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많은 외국인이 홍콩을 떠났다.

대형 부동산 중개업체 다이더량항(戴德梁行)의 통계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홍콩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은 15년 만에 최고치다. 빈 사무실의 80% 이상은 글로벌 기업 철수로 생겨났다.

다수의 의류브랜드를 거느린 미국의 VF 코퍼레이션은 지난 1월 25년간 운영해온 홍콩 사무실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노스페이스로 익숙한 VF의 홍콩 사무실에는 직원 900명이 근무했다.

루이비통 그룹, 프랑스 로레알 역시 홍콩 직원 일부를 다른 지역으로 배치했다.

WSJ은 글로벌 은행과 금융기관, 여전히 홍콩을 중국 진출의 관문으로 여기는 기업들을 제외한 기업들은 홍콩 철수를 고려하고 있으며, 그 대안으로 싱가포르나 중국 상하이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 네티즌은 해당 뉴스를 공유한 SNS 게시물에서 “홍콩을 빠져나간 글로벌 기업이 상하이로 향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썼고, 이 글은 2만 명의 ‘좋아요’를 받았다.

중국 문제 전문가 왕허는 “본토 중국인들은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홍콩에 가 분유·간장을 구매하고, 외국계 기업의 보험상품을 구매한다. 홍콩을 본토와 구분된 경제독립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며 “선전이나 상하이가 겉으로는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절대 홍콩이 누렸던 경쟁우위는 얻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홍콩은 과거 영국 정부의 통치로 운영되면서 자유 세계와의 혈연관계를 맺었다. 이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던 다른 국가들도 얻지 못한 조건이다. 또 홍콩은 자유무역항으로 술·담배 등 몇몇 품목을 제외하면 일반 수출입 상품에 관세가 없고 기타 세금도 없다. 세계적 수준의 개방정책은 중국의 다른 도시는 절대 제공할 수 없는 독보적 조건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홍콩의 강점은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 홍콩 투자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9년 홍콩의 강점을 ‘법치와 사법’이라고 답한 기업은 46%로 2015년에 비하면 6%포인트 하락했다. 2020년 이후는 더 추락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왕허는 “대만은 과거 아시아태평양 금융 중심지로 도약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일본 역시 금융과 주식에서 홍콩에 뒤처지고 있다. 싱가포르도 훌륭한 조건을 갖췄지만 역시 홍콩의 아성을 뛰어넘지는 못했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홍콩의 우위를 넘겨받기 위해 주변 각국이 각축전을 벌이게 됐다”고 분석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은 작년 5월 “홍콩이 중공 통치하에 더 이상 고도의 자치를 갖추지 못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만의 중국투자피해자협회 설립자 가오웨이방 전 회장은 “많은 정보와 기술이 홍콩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은 홍콩을 망가뜨리고 있다. 이는 중국의 경제와 미래 발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오 전 회장은 “글로벌 기업의 홍콩 철수 영향이 즉각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홍콩은 앞으로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영광을 누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