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에너지에 안보 적신호…미국·유럽, 화석연료 ‘리턴’

장만순
2022년 03월 26일 오후 3:52 업데이트: 2022년 03월 26일 오후 3:52

그린에너지 거액 투자했지만, 수요 충족에 역부족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 중요성 재인식

독일 등 일부 국가, 정치적 상황에 리턴 막히기도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자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화석연료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에너지 정보청은 “석유와 가스는 2050년까지 세계 에너지의 주요 원천”이라고 밝혔다.

중공 바이러스(코로나19) 대유행의 여파로 정전과 석탄 재고량 감소, 고유가 등에 맞닥뜨린 와중에 녹색에너지 생산량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엄청난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 데 따른 움직임이다.

유럽의 낮은 에너지 자립도 역시 화석연료 회귀 이유 중 하나다. 유로존은 천연가스의 40%, 석유의 30% 등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중단하는 제재에 소극적인 이유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지난 수년간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태양광, 풍력 등 그린에너지 투자를 확대해왔다. 그러나 그린에너지만으로는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에 빨간불만 들어온다는 게 지금까지 수치로 드러난 현실이다.

에너지·원자재 정보업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플래츠’에 따르면, 2022년 그린에너지 발전량은 35GW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에너지 수요는 그 3배 가까운 100GW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세계 각국이 그린에너지 설비 확충에 투자하고 있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갈 수 없다. 당분간이라도 화석에너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국내 정치상황에 가로막힌 국가들도 있다. 독일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자유민주당)은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줄이고, 북해에서 신규 석유·가스 시추를 금지한 자국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현재 집권 중인 올라프 숄츠(사회민주당) 내각이 자유민주당, 녹색당과 연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녹색당과의 연정 협상으로 인해 독일 정부는 에너지 개발을 위한 신규사업 출범이 제한돼 있다.

석탄 화력발전소 84곳을 폐쇄하고 풍력발전으로 대체한다는 계획도 예정대로 추진한다. 다만, 이 경우 부족해지는 에너지의 45%는 러시아에서 수입하기로 했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는 지난주 성명에서 “현 외교 정책 상황에서 원자력 발전소의 장기 가동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거부 입장을 밝혔다.

ING은행 에너지분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가스 및 원자력은 계속해서 유럽 전력망의 상당 부분을 차지 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향후 유럽의 정치적 선택에 따라 그 역할이 좌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인도, 화석연료 생산 확대 전망

중국과 인도 역시 탄소중립을 선언한 국가다. 그러나 이행 시점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훨씬 나중이다. 중국은 2060년까지, 인도는 2070년까지 달성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행 가능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작년에 전국적 정전사태를 경험한 중국은 탄소중립 약속과 역행하는 모습이다. 석탄 소비를 되살리고 광산 확대를 승인했으며 석탄 화력발전소 설비를 늘리고 있다. 중국 경제사령탑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는 석탄 자국 생산량을 연간 3억t 늘리고 대규모 비축기지 건설 방안을 발표했다. 한정 국무원(행정부) 부총리는 “석탄은 중국의 에너지 안보에 있어 마지막 보루”라고 말했다.

인도 역시 2024년까지 석탄 생산량을 75% 늘리기로 했다. 지난달 인도 정부는 1월 석탄 생산량이 7960만t으로 전년 동기 대비 6.13% 증가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석탄 재고가 급락한 파키스탄, 네팔에서 일어난 제한 송전을 목격한 인도는 에너지 안보에 소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그린에너지를 정책과제로 추진하고 있지만, 석탄 수입을 유지하고 있으며 자국 생산량도 대폭 늘렸다. 에너지정보청은 지난주 미국 석탄 생산량이 전주 대비 6% 이상 증가했다고 추산했다.

프라이스 퓨쳐스 그룹의 수석 에너지 분석가는 “미국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술은 아직 그린 에너지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 기술이 점진적으로 향상될 수 있겠지만 아직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에너지 정보청은 석유, 가스 등 석탄 에너지가 2050년까지 계속 세계 에너지의 주요 원천이 될 것이며 그린 에너지는 전체 공급량의 약 4분의 1 정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