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尹 정부 원자력 진흥정책 추진 세미나’ 개최

이윤정
2022년 03월 25일 오후 7:57 업데이트: 2022년 03월 25일 오후 7:57

대선 이후 국회 차원 첫 논의…원자력계, 5년 만에 활기
정범진 교수 “원전 르네상스 부활 조짐…신규원전 늘려야”
구정회 소장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 시급…특별법 제정해야”

대선 이후 처음으로 원전 학계·산업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기 정부의 원자력 정책 및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 등을 논의했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3월 2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윤석열 정부의 원자력 진흥정책 추진’ 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 출신인 김영식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는 데 앞장서 왔다. 그는 “IAEA, IEA 등 국제기구는 원전이 가장 안전한 친환경에너지라고 규정하고 원전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며 “미국·프랑스·영국·중국 등이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반면, 한국만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기술로는 원전 없는 탄소 제로는 불가능하다”며 “여기에 정부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불안정한 국제정세와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쳐 에너지 안보는 더욱 불안해졌고, 전기 요금은 국민 부담으로 이어지는 총체적 난국을 맞고 있다”고 했다.

이어 “원자력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에너지 수급, 공급 여건, 국민 편익, 경제성 등을 고려했을 때 최선의 대안”이라며 차기 정부의 원활한 정책 추진을 위해 △원자력 정책 컨트롤타워 건립 △신규 원전 건설 병행 △우수 인력 양성 △대국민 소통 강화 등을 제언했다.

탈원전 정책 폐기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공약이기도 하다. 윤 당선인은 ‘실현 가능한 탄소 중립과 원전 최강국 건설’을 강조하며 원전산업 생태계 활성화 및 세계 최고 원전기술 복원을 약속했다. 구체적으로는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범정부 원전 수출 지원단 운영 ▲한미원자력동맹 강화 ▲원전 수출을 통한 일자리 10만 개 창출 ▲SMR(소형모듈원전) 등 차세대 기술 원전 개발 ▲국민과 함께하는 원자력 정책 추진 등이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3월 2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윤석열 정부의 원자력 진흥정책 추진’ 세미나를 개최했다. | 김영식 의원실 제공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산업 분야에서는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등 신규 원전 백지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등이 이어지며 전력수급계획에서 원전이 빠졌다”며 “연구 분야에서도 안전, 방사선, 원전 해체, 사용후핵연료 등 4개 분야로 연구 분야가 위축됐다”고 말했다. 다만 “원자력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확대되고 재생에너지의 문제점을 인지했다는 점은 긍정적 결과”라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신규 원전 건설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기후변화 대응,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안보에 대한 재인식, 원전건설 르네상스 부활(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1년 경과) 등을 꼽았다. 아울러 “변화하는 원전 수출 환경을 맞이해 범부처 수출 지원 체제를 구축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최득기 한국수력원자력 원전사후관리 처장은 신규 원전 건설 현황 관련 “현재 신한울 1·2호기, 신고리 5·6호기 등 총 4기(5.6GW)를 건설 중이며 올해부터 매년 1기씩(1.4GW) 완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원전 수출 현황에 대해서는 “체코 두코바니 지역에 1200MW 이하 신규 원전 1기(한국형 원전) 건설사업을 추진 중이며 미국(WEC), 프랑스(EDF) 등과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이집트 엘다바 지역의 러시아 노형(VVER-1200) 4기 건설사업 중 2차 측 분야(82개 건물・구조물의 기자재 공급 및 시공)에 단독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최종 계약 조건 확정 후 오는 4월, 계약 체결 예정”이라며 “이는 UAE 원전 이후 최초의 조 단위 매출 해외 원전사업 수주 확정”이라고 부연했다. 또 폴란드 2개 부지에 6~9GW 규모의 신규 원전 6기(한국형 원전) 건설사업에 한국과 미국, 프랑스가 경합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다음 발표자로 나선 구정회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주기환경연구소 소장은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에 대한 국가 로드맵과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구 소장은 “사용후핵연료에는 오래가는 고방사성 원소가 포함돼 안전관리(직접처분 또는 분리・소각 후 처분)가 필요하다”며 “1978년 원전 가동 이후 40년 이상 누적돼 온 사용후핵연료는 국민의 안전한 삶을 위해 국가적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원자력의 최대 시급 현안”이라고 강조했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발전에서 완전히 연소되지 않은 핵연료(폐연료봉)다. 다량의 핵물질이 포함돼 있어 이를 처리하는 문제가 숙원 과제로 주목받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은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 부피를 20분의 1 수준으로 줄이고 소듐냉각고속로(SFR) 원료로 재활용할 수 있는 신기술이다. 정부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1997년부터 파이로프로세싱과 이와 연계한 소듐냉각고속로(SFR) 연구개발(R&D)을 추진해왔다. 문제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를 지난 수십 년간 이어왔으나 아직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 상용화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현장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구 소장은 “2021년 말 기준 약 18300t의 사용후핵연료가 원전 부지 내 저장 중”이라며 향후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른 원전 운영 시 총 36300t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국내에서 사용후핵연료 처리기술을 실증·확보하기 위해서는 사용후핵연료 취급이 가능한 실증시설 구축과 더불어 미국의 장기동의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동의란 국내에서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기 위해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미국의 동의를 미리 받아야 함을 일컫는다. 2015년 한미 원자력협정으로 우리나라는 사용후핵연료의 절감 관리에 대한 동의를 얻었으나 미국은 민감 기술 확산 우려 등으로 장기동의 부여에 유보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구 소장은 우리나라의 향후 원전 수출 및 대(對)유럽 협력을 위해서도 폐기물 대책 수립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최근 EU는 폐기물 대책 수립을 전제로 원자력을 택소노미(Taxonomy·녹색분류체계)에 포함했다. 구체적인 기술심사기준으로는 고준위 방폐물 최종처분시설을 2050년까지 운영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는 특히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일관성이 부족한 점을 지적하며 사용후핵연료 안전관리를 위한 국가 로드맵 재정비 및 특별법 제정을 강조했다. 구 소장은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수립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사용후핵연료 처리기술이 언급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보다 앞서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에도 사용후핵연료 처리 분야가 누락됐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운반·저장·처리·처분하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수용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윤종일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학과장 역시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국민 안전과 직결되고 장기적인 정책 추진이 요구되는 사안”이라며 “원전 사업자와 특정 지역만의 현안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으로 인식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의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권고에 따라 총리 산하의 독립적 행정위원회 신설, 특별법 제정, 중간저장과 영구처분 시설의 동일 부지 내 설치 등을 포함하는 권고안을 제출했으나 이를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제도·조직·기술·사회적 합의 등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재검토위원회 권고안은 박근혜 정부 시절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1차 계획안과 대부분 유사했다”면서 “결국 지난 5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재학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고준위추진단장은 “과거 원자력산업 초기에는 에너지 자립 및 경제성장에 우선하는 정책을 시행하다 보니 원자력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방사성폐기물의 관리를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을 간과한 측면이 있었다”며 “특히 사용후핵연료는 세계적으로 1970년대 중반까지 재처리가 당연한 관리옵션으로 추진하다가 1977년 미국이 사용후핵연료의 상용 재처리를 금지하면서 원자력발전을 하는 모든 국가들에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는 현안으로 대두됐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86년부터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 확보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지 선정 과정 19년 동안 1990년 안면도 사태, 1994년 굴업도 사태, 2003년 부안 사태 등을 겪으면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다.

이 단장은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모든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해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 우리의 사회적 책무”라며 “서로의 이해관계를 떠나 원자력발전의 혜택을 누린 세대로서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 지혜와 힘을 모으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