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화가 이중섭 특별전…절절한 가족사랑 담긴 작품·사진 전시

이중섭미술관 개관 20주년 특별전시회

이윤정
2022년 11월 10일 오후 11:14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32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던 비운의 천재화가
기증·구입한 원화 소장품 60점 전시
이중섭거리 선포 25주년 기념 사진전 및 기증자료전
전은자 학예사 “각박한 시대, 시민들에게 위안 주는 미술관”

황소 그림과 은지화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 그의 이름을 딴 이중섭미술관과 이중섭거리의 역사를 한눈에 아우르는 특별한 전시회가 제주에서 열리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는 지난 11월 8일부터 이중섭거리 선포 25주년 기념 사진전 ‘이중섭거리, 몽마르트르 언덕을 꿈꾸며’를 열고 있다. 이중섭미술관 2층 기획전시실에 전시된 빛바랜 사진들을 통해 이중섭거리의 역사와 그간 이뤄진 문화행사, 이중섭 거주지와 미술관의 변화 과정 등을 만날 수 있다.

서귀포항으로 내려가는 언덕에 자리 잡은 이중섭거리. 화가의 이름을 딴 거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다. | 에포크타임스
1995년 이중섭거리 및 복원하기 전의 이중섭거주지 | 에포크타임스
1981~1993년 이중섭거리 | 에포크타임스

2004~2019년 이중섭거리, 이중섭미술관 등 | 에포크타임스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이한 이중섭미술관은 지난 3월부터 특별전시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사진전은 ‘숭고한 기증’ 시리즈 중 마지막 전시에 해당하며, 내년 1월 29일까지 이어진다. 이중섭 화가의 차남 이태성 씨, ‘이중섭 평전’을 집필한 미술평론가 최열, 연구자 서지현 씨로부터 이중섭 추서 훈장 1점과 연구자료 228건을 기증받아 공개하고 있다.

앞서 숭고한 기증 1부:가나아트센터 이호재 기증작품전(아름다운 울림의 시작), 2부:송영방·신옥진·김기주·문희중·안현일 기증작품전(마음의 끈), 3부: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 기증작품전이 기획전시실에서 차례로 개최됐다.

이중섭거리 선포 25주년 기념 사진전 | 에포크타임스
이중섭 추서 훈장 | 에포크타임스
이중섭 관련 석사논문을 작성한 서지현 연구자의 기증자료들 | 에포크타임스
전시관 관람객들 | 에포크타임스

이중섭 원화를 볼 수 있는 ‘정직한 화공, 이중섭’ 전시는 이중섭 화가의 기일인 지난 9월 6일부터 1층 상설전시실에 마련돼 내년 2월 26일까지 진행된다. 올해 상반기에 마련된 특별전 1부 ‘청년 이중섭, 사랑과 그리움’에 이은 전시로, 이중섭 미술관이 지난 20년간 기증과 구입을 통해 소장 중인 이중섭 원화 60점을 모두 소개하는 시리즈 전시 중 마지막 전시이기도 하다.

특히 이중섭의 미망인 고(故)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한국명 이남덕) 여사를 위한 추모 공간도 마련돼 고인의 생전 사진과 이중섭에게 보낸 편지 등을 전시했다. 이중섭은 1945년 결혼 직후 아내에게 ‘남쪽에서 온 덕이 있는 여인’이란 뜻의 이남덕(李南德)이란 한국 이름을 새로 지어줬다. 1956년 영양실조 등으로 이중섭이 만 40세 젊은 나이로 요절한 뒤 그는 재혼하지 않고 두 아들과 함께 살아왔다. 지난 8월,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인은 2012년 한국을 방문해 남편이 생전 쓰던 팔레트를 이중섭미술관이 있는 제주 서귀포시에 기증하기도 했다.

문화학원 시절 이중섭과 이남덕 | 에포크타임스
이중섭과 이남덕 결혼사진(좌), 이남덕 여사와 두 아들 | 에포크타임스

국민화가, 비운의 천재 화가로 널리 알려진 대향(大鄕) 이중섭은 1916년 평남 평원군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7년 일본 동경문화학원으로 유학을 떠나 재학 중 제2회 자유미술가협회 공모전에 응모해 입선했다. 1943년 제7회 미술창작가협회에 출품해 태양상을 수상하고 부상으로 팔레트를 받았다. 1945년 문화학원 시절 사귀던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한국명 이남덕)와 결혼해 두 아들을 두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원산을 떠나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서귀포로 피난 와 1년간 거주하면서 ‘서귀포의 환상’ 등 명작을 남겼다.

당시 마을 반장이었던 집주인이 무상으로 빌려준 1.4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네 가족이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이중섭의 서귀포 시대는 꿈꾸는 이상향처럼 묘사됐다. 피난 생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유쾌하게 묘사되는 것은 전쟁의 가난과 공포를 잊고자 하는 이중섭의 유토피아적 상상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중섭이 1년간 살았던 거주지 | 에포크타임스
이중섭거주지 앞마당에 세워진 표석 | 에포크타임스
네 가족이 살았던 1.4평 방 | 에포크타임스
이중섭 동상 | 에포크타임스
이중섭미술관 입구 | 에포크타임스

이중섭의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는 소, 닭, 어린이, 가족 등이다. 야수파적 강렬한 색감과 힘찬 선묘 위주의 독특한 조형은 서구적 방법을 차용했지만, 주제에선 향토성이 강하게 묻어난다. 그 밖에 수많은 은지화는 동화적이고 자전적 요소가 강한 작품들이다. 은지화는 담뱃갑 속 은지에 송곳과 같은 날카로운 것으로 홈이 새기도록 드로잉을 한 일종의 선각화(線刻畵)다.

이중섭 그림 연보 | 에포크타임스
황소 | 에포크타임스
여인과 게. 일부 선 위를 손가락으로 문지른 흔적 외에는 전혀 색채를 쓰지 않았으나 이중섭 화가의 유려하고 속도감 있는 드로잉 솜씨로 인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끈다. | 에포크타임스

이중섭 예술세계의 기반은 그림으로 생계를 이어가고자 했던 그의 예술가적 삶에 연유한다. 일정한 거처 없이 전국을 떠돌며 외롭게 제작한 그의 작품은 1970년대에 이르러 새롭게 평가받았다. 이중섭은 부인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디까지나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모든 것을 전 세계에 올바르고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오. 나는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이라오.”

이중섭과 절친했던 시인 구상은 이중섭의 창작열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중섭은 참으로 놀랍게도 그 참혹 속에서 그림을 그려 남겼다. 부두에서 짐을 부리다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폿집 목로판에서도 그렸고,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맨 종이, 담뱃갑 은지에다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고 ,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부산, 제주도, 통영, 진주, 대구, 서울 등을 표랑 전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꽃과 아이들, 선착장 풍경, 물고기와 두 어린이, 아이들과 끈, 해변의 가족, 닭과 게(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 에포크타임스
이중섭과 절친했던 시인 구상은 이중섭의 창작열을 두고 “중섭은 참으로 놀랍게도 그 참혹 속에서 그림을 그려 남겼다”고 전했다. | 에포크타임스

15년간 이중섭미술관을 지켜온 전은자 학예연구사는 “이중섭은 그림으로도 유명하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이 절절했었다”며 “미술관에 온 관람객들이 처음엔 작품에 감동받고, 그다음은 이중섭의 삶, 가족에 대한 사랑을 알고 눈물 흘리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전 학예사는 “요즘 현대사회가 매우 각박하고 피폐해졌다”며 “시민들에게 정신적으로 위안을 줄 수 있는 미술관으로서 역할이 큰 것 같다”고 자부했다. 이어 “이중섭거리가 만들어지고 25년 동안 관광객들, 관람객들뿐 아니라 그 시간을 함께해온 이 지역 주민들도 추억을 되새기는 공간”이라며 이번 특별전시회에 대해 “미술관 시설을 확충하려는 시점에서 이중섭 거리도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 같은 예술의 거리로 지향해 나가겠다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