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파룬궁 수련자들, ‘4·25 평화청원 23주년’ 기자회견

이윤정
2022년 04월 25일 오후 5:47 업데이트: 2024년 01월 16일 오후 5:47

서울·부산·광주·제주 中 외교공관 인근서 동시 개최
1만여명 수련자, 1999년 중난하이서 평화 청원
中 현대사에 유일한 대규모 평화집회로 기록

4월 25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중국 대사관 인근에서 국내 파룬궁 수련자들이 모여 ‘4·25 평화 청원’ 23주년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부산‧광주‧제주 주재 중국 총영사관 앞에서도 같은 행사가 동시에 개최됐다. 행사는 사단법인 한국파룬따파불학회가 ‘4·25 평화 청원’ 23주년 성명서를 중문과 국문으로 낭독하고 중국 대사관에 성명서를 전달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2년 넘게 이어지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해제되면서 도심은 오랜만에 사람들로 붐비며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살짝 흐린 날씨 속에 이날 집회에는 파룬궁 수련자 150여 명이 모였고 많은 시민이 행사를 지켜봤다.

한국파룬따파불학회 오세열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중국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기본권을 되찾고자 중국 공산당의 심장부에 모여 평화적으로 진행했던 4·25 대청원의 정신은 성숙한 시위문화의 새로운 지표로 미래 세계에 길이 남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4월 25일 서울 중구 명동 입구에서 열린 4·25 평화청원 23주년 기념 기자회견 | 이유정/에포크타임스

‘4·25 평화 청원’은 1999년 4월 25일, 파룬궁 수련자 1만여 명이 중국 공안에 체포된 수련자 45명에 대한 석방과 수련 환경 보장을 청원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의 정치 고위층이 거주하는 중난하이(中南海) 주변에 모인 것을 가리킨다. 1만여 명이 모였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흔한 구호 한마디 없이 조용한 가운데 마무리된 그날의 집회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평화로운 집회로 기록됐다. 파룬궁 수련자들은 이 사건을 ‘4·25 평화 청원’으로 명명하고 매년 이날을 기념해 집회를 열고 있다.

파룬궁은 중국에서 처음 전해진 심신 수련법으로, 공식 명칭은 파룬따파(法輪大法)이다. 진실(眞)·선량(善)·인내(忍)를 핵심 가치로 마음을 닦고 간단한 동작을 통해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성명쌍수(性命雙修) 공법으로 알려져 있다.

파룬궁은 전파 초기부터 수련자의 입소문을 통해 탁월한 심신 건강 증진 효과가 알려졌고 중국 당국의 지지를 받으며 중국 전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수련자 수가 공산당원 수를 넘어 1억 명에 육박하게 되자 중국 공산당은 파룬궁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는 파룬궁 수련서인 ‘전법륜(轉法輪)’ 출간을 금지했고 파룬궁에 대한 허위 비방 논평을 매체에 실었다.

1999년 4월 11일, 중국 공산당 어용학자인 허쭤슈(何祚休)는 중국텐진교육원(天津敎育學院)의 ‘청소년과학기술박람’ 잡지에 파룬궁을 비방하는 내용의 글을 발표했다. 이에 톈진의 일부 파룬궁 수련자들은 사실을 왜곡한 내용에 대해 시정을 요구했지만 공안은 오히려 파룬궁 수련자 45명을 구타하고 체포, 구금했다.

이른바 ‘톈진 사건’은 이틀 후인 4월 25일, 수련자 1만여 명이 중국의 권력 심장부로 불리는 베이징 중난하이 부근 붉은 담벼락을 등지고 서게 된 이유였다.

1999년 4월 25일, 중국공산당의 심장부 베이징 중난하이에 1만여 명의 시민이 모였다. 이들은 경찰의 지시에 따라 중난하이 주변 인도에 나란히 서서 중국 고위층 인사가 대화에 응해주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당시 참가자,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현수막이나 피켓, 구호도 없이 꼬박 12시간 이상을 그대로 조용히 서 있었다.

1999년 4월 25일, 중국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베이징 중난하이 인근 푸유가 대로변 인도에 질서정연하게 서있는 모습 | 명혜망

당시 주룽지(朱鎔基) 중국 국무원 총리는 수련자들을 직접 만나 톈진에서 체포된 파룬궁 수련자들을 석방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파룬궁 수련서인 ‘전법륜’ 출판을 허가해 파룬궁 수련자들에게 합법적인 수련 환경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청원 참가자들은 조용히 자진 해산했다. 1만 여명이 모였던 자리에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1989년 톈안먼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탱크에 짓밟힌 이후 10년간 중국에서 볼 수 없었던 평화로운 광경을 두고 당시 외신들은 일제히 파룬궁수련자들이 비폭력과 평화정신에 입각해 청원하는 성숙한 시민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10년 만에 중국에 봄이 찾아왔다”며 “현장에 모인 시민들은 모두 파룬궁 수련자들”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날 검은색 방탄차 안에서 집회 현장을 지켜본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이 사건을 탄압의 구실로 삼아 상무위원 전원의 반대를 무시하고 1999년 7월 20일부터 파룬궁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을 강행했다. 문화대혁명을 능가하는 국가적 차원의 탄압이었다.

“파룬궁 수련인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육체를 소멸하고, 경제를 파탄시키며, 시체를 소각하라”는 장쩌민의 명령에 따라 중국 공산당은 불법 감금한 수련인의 장기를 강제로 적출해 매매하는 만행을 지금까지도 저지르고 있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한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건은 2019년 런던 중국재판소에서 명백한 사실로 밝혀진 바 있다. 일부 국제 인권 문제 전문가들은 중국 공산당의 파룬궁 탄압을 ‘집단학살(genocide)’로 규정했다.

한국파룬따파불학회는 서울 중구 명동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관련 성명서를 중국 대사관 측에 전달했다. | 이유정/에포크타임스

오세열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에서 “하루빨리 중공이 해체되고 중국 공산당 때문에 신음하고 있는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들과 13억 중국인들이 자유를 되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한국파룬따파불학회는 관련 성명서를 중국 대사관 측에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