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교회복 암시? 폼페이오, 연설에서 네 차례 대만 언급

이윤정
2020년 07월 29일 오전 10:53 업데이트: 2020년 07월 29일 오후 12:14

뉴스분석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23일(현지 시각) 캘리포니아주 닉슨 도서관 앞에서 한 연설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폼페이오는 ‘공산주의 중국과 자유 세계의 미래’(Communist China and the Free World’s Future)라는 제목으로 30분 가까이 연설했다.

이날 연설은 중국 공산당을 분명히 인식하고, 전략을 전환하고, 더는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이며, 공동으로 대적한다 등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요약해 설명하기 힘든 긴 역사와 이를 관통하는 한 차례 교훈이 숨어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연설에서 대만을 4차례나 언급

이날 연설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대만’을 여러 번 언급했다. 일부 언론은 폼페이오가 대만을 총 네 차례 언급한 사실을 발견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그간의 대만 홀대를 반성이라도 하듯 흘러나왔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는 대만 친구를 소외시켰지만, 나중에 대만은 활발한 민주주의 꽃을 피웠다. 우리는 중국 공산당과 정권에 특별한 경제적 혜택을 주었지만, 중국 공산당은 서방 기업들에 중국 진출의 대가로 그것의 인권 침해에 대해 침묵할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세 번째 언급은 자유국가인 대만을 독립국으로 명기하지 않았다며 “아메리칸항공, 델타항공, 유나이티드항공이 베이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모두 자사 홈페이지에서 대만에 대한 언급을 삭제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미군은 동해와 남해, 대만 해협은 물론 해협 전체의 ‘항행의 자유’를 확대했다”는 발언에서 나왔다.

이에 중국 전문가들은 이날 대만에 대한 언급 중 특히 첫 번째가 가장 의미심장하다고 평가했다. “대만 친구를 소외시켰다”고 발언한 이 한 마디가 중공의 텃세에 수십 년간 눌려온 대만의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것이다.

1971년 UN이 중공을 끌어들인 후, 중공에 대한 유화정책 가속화

중화민국(中華民國·Republic of China)을 국호로 사용하던 ‘국민 정부’가 1949년 지금의 대만 땅으로 후퇴하면서, 중국 대륙을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며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1949년에서 1971년까지 국제사회에서 특히 UN의 중국 대표는 ‘국민 정부’였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 제3세계 국가를 매수하고, 일부 국가가 이익 때문에 등을 돌리면서 1971년 상황은 역전됐다.

1971년 7월 15일 알바니아 등 23개국이 중화민국의 UN 대표석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10월 말, 유엔총회에는 중국의 대표권을 주제로 70여 개국이 참석해 토론을 벌였다.

이때 미국과 일본 등 일부 국가는 두 가지 절충안을 제시했다. 하나는 중국 대표권을 교체하는 기준을 과반수가 아닌 3분의 2로 높이자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상임이사국 자리를 중화인민공화국이 차지한다 해도 ‘중화민국’이 회원국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부결됐다.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은 큰돈이 없었지만, 투표권은 한 장씩 가지고 있어 다른 서방 국가들과 대등하게 취급됐기 때문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제3세계의 ‘가난한 형제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중국 대표권에 가망이 없어 보이자, 당시 중화민국 외교부장 저우서카이(周書楷)는 단상에 올라 유감을 표시하고 입장 유지 차원에서 자진 탈퇴를 선언하고 퇴장했다.

이로써 1971년 10월 25일, 유엔 결의 2758호를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은 UN 5대 상임이사국 중 하나가 됐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고, 양국은 1979년에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이후 중국 공산당에 대한 서방 사회의 유화정책은 점점 가속화됐다.

그런데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오늘날 정책 반전에 나섰다.

중공이 UN 자리 탈취…장제스는 미래 결과 정확히 예언

1971년 10월 26일 유엔 결의가 채택된 직후, 당시 중화민국 총통이었던 장제스(蔣介石)는 ‘동포들에게 전하는 중화민국의 유엔 탈퇴 서한’을 발표했다. 해당 문서는 위키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한 서두에는 “유엔 총회는 헌장 규정을 어기고 도적 국가에 빌붙은 알바니아 등의 제안을 채택해 모공비방(毛共匪幫·마오쩌둥 공산당 도적)을 끌어들여 중화민국의 유엔 및 안보리의 자리를 빼앗았다”고 했다.

또 “우리 한적불양립(漢賊不兩立·양립할 수 없다) 원칙 입장 및 (유엔)헌장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해, 이 안건이 표결에 부쳐지기 전 우리는 UN에서 탈퇴를 선언했다”고 적혔다.

이후에 장제스가 언급한 몇 가지 내용은 시공을 초월한 공감을 얻고 있다. 어떤 이는 당시 서방세계가 장제스의 글을 읽고 깊이 생각해봤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아픔이 있었겠느냐는 생각도 들 것이다.

장제스는 서한에 “‘모공비방’은 중화민국의 반란 집단으로, 대내적으로 인민을 살해하고 그 죄악이 산처럼 크다. 대외적으로는 침략을 자행하는 유엔이 정한 침략자이다. 현재 대륙은 ‘모공비방’이 도사리고 있지만, ‘타이펑진마’(台澎金馬·중화민국의 실질적 영토 전체를 가리키는 타이완 지구)를 기지로 하는 중화민국 정부는 여전히 대륙 7억 중국 인민의 진정한 대표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 글은 오늘날 대만에서 논란이 될 수 있지만, 그다음에 나온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제스는 중화민국이 “(대륙 민중)그들의 공동 의지와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대변하고, 또 그들에게 마오쩌둥 공산당 폭력에 맞서 인권의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가장 큰 용기와 희망을 준다”고 말했다. 이는 오늘날 미국 정부가 하고자 하는 말과 동일하다.

2018년 10월 24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2차 대중 정책 연설에서 “대만은 세계의 주요 무역 경제국이며, 더욱이 중화권 문화와 민주주의의 등대”라고 발언했다. 서한 속 장제스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장제스의 서한에는 세계를 향해 경고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과 놀랍게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 세상에는 두 번의 끔찍한 전쟁이 발생했음을 세계인들에게 경고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전쟁의 재앙을 피하고자 우리는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국제동맹을 결성했다. 그러나 이후 일부 국가는 침략자들의 위협에 겁을 먹고 악에 굴복하고 폭력에 무릎 꿇음으로 인해 굴욕적인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국제연맹은 마비되고 와해되어 침략을 제재하고 정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오늘날 일부 민주국가가 도적단에 가담하고 모공비방을 끌어들여 UN과 안보리에서 중화민국의 합법적 지위를 불법 검거했다. 그 생각과 방법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몇몇 국가의 상황과 거의 같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정의를 수호하는 도덕적 용기는 세계 안보와 평화의 견고한 반석이며, 강권정치의 ‘헤게모니’는 전쟁으로 가는 길’이라고 알려준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23일 연설에서 “우리는 대만 친구를 소외시켰다”고 말했는데, 바로 이로 인한 뼈아픈 교훈이다.

‘UN 헌장’에 남아있는 놀라운 ‘기록’

UN 헌장에는 이런 역사가 더 깊게 새겨져 있다. 지금도 유엔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놀라운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헌장 5장 23조 첫 줄을 보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중에 중화민국이 포함돼 있다. 1971년 이후, 50년이 다 돼가도록 헌장은 바뀌지 않았다.

UN 헌장 개정은 회원국 3분의 2 이상 회원국이 동의해야 하며, 5개 상임이사국이 만장일치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 즉 헌장 법리상 UN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국호는 여전히 중화민국(中華民國)이다.

러시아도 옛 소련의 상임이사국 자리를 대신하고, 헌장에도 소련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실질적인 운영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차이점이라면 소련이라는 공산정권은 오래전에 와해됐지만, 헌장에 명기된 ‘중화민국’은 중국공산당 정권에게 영원한 ‘난처함’이라는 것이다.

유엔 헌장은 물론 최근 문을 닫은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도 역사적으로 중국 공산당에 당혹감을 안겨줄 것이다.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의 특별한 역사…미국이 단교하려 한다?

최근 중화권 국제방송 희망지성(SOH)은 전 미 외교관이자 아시아정치역사협회 회장인 알리시아 캄피(Alicia Campi)를 인터뷰했다. 캄피 회장은 미국 대표 외교전문가로 통한다.

캄피 회장은 희망지성에 “휴스턴 중국 영사관의 전신이 바로 중화민국 영사관이며, 1937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중국 공산당은 건물을 새로 짓지 않고 직접 중화민국의 기존 영사관을 ‘차지’했다고 한다.

캄피 회장의 말에 따르면 이는 “중국 공산당이 대외적으로 중화민국의 권력을 넘겨받았다고 선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40년 뒤, 미국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 점에 대해 캄피 회장은 미국의 휴스턴 총영사관 폐쇄는 관례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통상적인 관례에 따르면 가장 최근에 설립한 곳을 폐쇄하는 것이 순서인데, 휴스턴의 공관은 중국 공산당이 미국에서 처음 연 곳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캄피 회장은 “신용카드와 연계해서 생각해봤다”며 “미국에서 처음 개설한 신용카드 계좌는 쉽게 취소하지 않는다. 당신이 미국 사회에서 축적한 신용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 영사관을) 폐쇄하면 그 역사도 사라진다. 서로 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캄피 회장은 분명하게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중국과 완전히 단교(斷交)하고 대만 정부와 ‘국교회복’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 공산당의 관계 악화로 단교를 거론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