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떠받들던 中정부, 이번에는 대규모 ‘도교 부흥 행사’

이지성
2011년 10월 26일 오후 10:05 업데이트: 2019년 07월 22일 오후 9:34

기독교 등 체제 비협조적 종교·단체는 탄압 지속
전문가 “문화적 패권주의 위한 사전작업” 우려도


 



종교를 억제해 온 중국정부가 최근 유교에 이어 도교에 대한 장려책을 시행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항공모함 도입으로 군사적 패권주의를 드러낸 중국이 문화적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 인민대표회의에 참석한 중국도교협회 관계자들과 자칭린 주석이 접견하고 있는 장면. 중국정부 홈페이지


 


종교에 대해 박해를 일삼고 있는 중국 정부가 갑작스레 도교 관련 국제포럼을 개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중국 정부는 10월 23일 후난(湖南省) 난위에에서 고위급 국제 도교 포럼을 개최했고, 여기에 권력서열 4위인 자칭린(賈慶林) 전국 정치협상회의 주석을 포함한 고위층이 대거 참석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24일 보도했다.


 


중국 정부 차원에서 도교 국제 행사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이 자리에서 자칭린은 자국을 포함해 미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에서 온 도교 관계자 500여 명 앞에서 한 연설에서 “도교를 통해 세계 평화와 공동 번영의 길을 찾자”고 역설했다. 아울러 “도교는 중국인의 전통적 문화이자 인류 문화유산의 중요한 가치”라고도 언급했다.



종교행사가 좀처럼 두드러지지 않는 중국에서 수뇌부를 포함해 고위층이 이처럼 관련행사에 대거 참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며 그 이유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일각에서는 이번 행사가 지난 18일 폐막한 중국 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17기 6중전회)를 계기로 ‘기획’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17기 6중전회에서 문화개혁이 화두로 올랐던 것을 계기로 중국 당국이 종교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려는 의지를 비치고 있고, 여러 종교 가운데 도교가 첫 관심 대상으로 올랐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공산주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이 종교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중국은 지난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문화대혁명을 통해 모든 종교활동에 박해를 가했었다. 사찰, 도관(道觀), 교회, 수도원 등은 문을 닫았고, 나아가 약탈되거나 파괴되었다. 당시 홍위병은 4구(4가지 낡은 것-낡은 사상ㆍ문화ㆍ풍속ㆍ관습)라고 간주된 모든 것을 파괴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박해 끝에 고문과 살인도 일어났고, 구타와 모욕을 견디지 못한 많은 이들이 마지막으로 자살을 선택했다.



특히 문화대혁명 중에 무수한 사찰들이 파괴되었으며, 승려들은 사람들에게 끌려 나가 거리에서 비판을 받았다. 티베트 사원은 90%가 파괴당했다. 또한 중국에는 지금도 수많은 가정 기독교회 신자들이 감금되어 있다.



공산주의의 중심 지도사상 중 하나는 바로 봉건미신 타파였다. 그래서 신(神)도 부처도 도(道)도 없고, 전생(前生)도 없고 내세도 없으며, 인과응보도 없다는 것을 고취시켰다. 공산주의를 주장했던 칼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아편’이라고까지 여겼다.



이러한 공산주의 사상 아래 2002년 2월에는 가톨릭을 포함한 미등록 기독교 신도들이 표적이 됐다. 수많은 가정 교회들이 습격 받아 최소한 129명이 학살되었고, 2만 4000명 가량이 체포되어 그 중 4000명 이상이 소위 재교육을 선고받았다.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중국에서는 파룬궁이라는 심신수련단체를 종교단체로 규정하여 탄압을 자행해 오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보고서에 의하면 고문과 박해로 사망한 수련자 수만 3400명이 넘는다고 한다. 파룬궁은 지린(吉林)성 창춘(長春) 태생인 리훙즈(李洪志) 선생이 창시한 기 수련법으로, 1992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해 수련자가 1억 명을 넘어서는 등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었다.



사실 중국은 공산주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로 엄밀히 말하면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가 아니다. 그런 중국에서 국제 도교 포럼을 개최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이면에는 개혁개방 이후 유교를 부활했던 맥락과 비슷한 이유가 숨어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공자의 부활은 1980년대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개혁개방과도 맞물렸다. 심화되는 빈부 격차와 갈등을 치유하는 데 마르크스주의나 마오쩌둥(毛澤東) 사상으로는 한계를 느낀 까닭이다. ‘조화로운 사회건설’을 위해 공자의 인(仁)과 화(和)의 정치철학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중국 안팎의 시선은 환영과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공자 열풍은 세계 유교문화의 부흥을 알리는 전조를 넘어 중국의 문화적 패권주의를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라는 분석 때문이다. 이는 동아시아의 제도와 문화가 중국에서 기원하고 중국을 정점으로 한 체계에 의해 비로소 위치를 부여받고 의미를 지닌다는 중국정부의 주장 때문이다.



김성기(성균관대) 교수는 “공자의 부활과 유교의 부흥은 중화중심주의와 중국패권주의에 대한 우려와 불안을 드리우고 있다”며 “현대의 다양한 가치를 자각하는 다원주의적 기반 위에서 균형 있는 인식을 보편적 가치로서 재음미할 수 있으면 유교문화의 부흥이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한편, 도교는 노장사상(老莊思想)으로도 불리며 유교, 불교와 더불어 동양의 3대 사상으로 통한다. 자연법칙을 이해하고 인위(人爲)를 벗어난 무위자연 생활을 주장하는 게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