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영웅에게서 배우는 ‘진정한 남성성’, 트로이의 헥토르

류시화
2023년 01월 16일 오후 6:06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31


“결전을 앞둔 헥토르는
그의 아내, 아들과 마주했다.

그는 홍조 띤 볼과 별처럼 빛나는 눈을 가진
사랑하는 아들에게 손을 뻗어 그를 안으며 웃었다.
환한 미소를 짓는 위대한 전사, 헥토르.
그는 그저 말없이 아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는 피 묻은 헬멧을 벗어 잠시 땅에 내려두고
아들에게 입 맞춘 뒤 그를 품에 안은 채
제우스와 불멸의 신들에게 기도드린다.

운명을 이미 아는 듯, 그를 만류하며 눈물짓는 아내.
그는 그녀를 안아주며 다독인다…”

– 호메로스, ‘일리아스’ 서사시 6권 中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는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와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운명적인 결투와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위대한 전사와 영웅, 신화적 이야기를 만든 작가 호메로스는 두 전사의 일생과 충돌에서 두 가지 유형의 남성성을 보여줍니다. 두 인물 모두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며 전장을 휩쓸지만, 둘은 전혀 다른 동기를 가지고 다른 유형의 남성성을 보입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전쟁이 아닌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초점을 둔 작품입니다.

그리스의 전사 아킬레우스는 그리스 사령관 아가멤논과의 다툼으로 분노에 차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선봉에서 용맹하게 적과 맞서 싸우던 아킬레우스의 갑작스러운 부재에 전쟁의 형세는 급격히 기울었고, 그로 인해 많은 그리스 군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장에 남은 아킬레우스의 동료들은 그의 참전을 바라며 손을 내밀지만, 끓는 분노에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 아킬레우스는 그 손을 차갑게 뿌리칩니다.

그러다 아킬레우스는 그의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의 손에 목숨을 잃자, 그제야 복수의 분노에 가득 차 헥토르를 죽이기 위해 전쟁에 참여합니다. 그는 광기에 찬 폭력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친구의 원수인 헥토르를 마주하게 됩니다.

트로이의 외로운 방어자, 헥토르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전투력과 공격성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헥토르의 ‘분노’는 아킬레우스의 것과는 명확히 다른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헥토르는 강한 힘과 리더십으로 트로이 도시를 지키고 적과 맞서 싸웁니다.

헥토르의 진정한 남성성

헥토르는 단순한 싸움꾼 그 이상의 존재입니다. 그는 아킬레우스와는 다르게 지키고 싶은 가치, 바로 그의 가족과 도시를 지키기 위해 이성적으로 싸움에 임합니다.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헥토르가 죽을 것임을 알고 전장으로 향하는 그를 만류합니다. 그러나 그는 도시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합니다. 이 점에서 헥토르의 남성성과 분노는 아킬레우스의 맹목적인 분노와는 다른 것임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헥토르의 분노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는 게 목적입니다. 그의 분노는 그의 편과 사랑하는 이들을 해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남성성의 모습입니다.

진정한 남성성은 자신의 본성에 있는 강력하고 위험한 측면을 통제해 선하고 자기희생적인 방향으로 이끕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과 가까운 이들의 희생과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남성성의 위험한 측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통제되지 않는 자신의 감정 해소를 위해서만 분노를 표출합니다.

바른 남성성의 필요

호머의 대서사시 ‘일리아스’에서는 결국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손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바른 남성성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헥토르의 바른 남성성은 그가 속한 사회와 주변의 이들에게 이로운 영향을 줍니다. 그가 도시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바른 남성성을 표출하지 않았다면, 트로이는 그리스 군사들의 손에 훨씬 더 빨리 몰락하고 그와 가족은 더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헥토르’가 더 많아진다면 바른 남성성의 긍정적인 영향에 사회 전반의 문제와 고통이 많이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