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연에포커스]주52시간제, 유연성 제고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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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근
2022년 10월 11일 오후 1:28 업데이트: 2022년 10월 11일 오후 1:28

글_박영범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9월 7일,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초청 간담회에서 “유럽 주요국이 노사 합의로 근로시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을 참고해 우리의 근로시간 제도도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방식으로 바꿔 나갈 수 있도록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된 주52시간 근로의 기본 틀을 유지하되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현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서 노사의 자율적인 근로시간 선택권의 확대 및 근로자의 건강 보호 조치 방안을 추진한다는 내용입니다.

구체적으로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확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등 연장근로시간 총량 관리, 스타트업·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 완화 등이 노동 분야 국정과제의 세부 과제로 포함돼 있습니다.

주52시간제가 개편되어야 하는 것은 주52시간제 도입과정과 제도 도입에 따른 노동시장 결과를 보면 명확합니다.

우리나라 기준 근로시간은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 당시 주48시간이었습니다. 1989년 주44시간으로 줄어들었고, 2014년부터 주40시간으로 단축되어 주 5일 근무제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2018년 7월부터는 최장 근로시간을 주52시간으로 제한하는 ‘주52시간제’가 사업장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주52시간제는 도입되지 않으면 고용노동부의 행정 해석을 폐기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강요 속에서 1박 2일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밤샘 협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협상에 참여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여야 3당 간사 중 소수당인 바른미래당 간사를 제외한 3인이 노동계 출신이었습니다.

주당 근로시간을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대폭적으로 일시에 줄이는 주52시간제와 함께 휴일할증은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주장대로 150%를 유지하고 특례업종은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뜻대로 28개에서 5개로 축소한 주52시간 제도는 도입 초기부터 많은 혼란이 있었습니다.

2018년 2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된 지 6개월 경과한 8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부문에 우선 시행되었습니다.

정부 지침이 7월 중순에 너무 늦게 발표되었고 늦게 내놓은 가이드라인도 구체성이 떨어졌습니다. 또한 근로시간 단축 시행 10여 일을 남겨두고 6개월간의 계도기간을 주는 결정을 정부가 내렸고 2019년 말에는 2020년 3월 말까지 계도기간이 다시 연장되었습니다.

업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주52시간제 도입의 결과 현장에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였습니다.

365일 24시간 전 세계에서 경쟁하고 있는 우리나라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력은 약화되었습니다. 의약품, 연구개발 분야, 해외시장까지 주52시간제를 적용받은 건설업, 영세 사업장이 많으나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문화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재난에 즉시 대응하여야 하는 IT분야 등에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특히 자격을 갖춘 운전기사 양성을 위해 시행을 일 년 늦춘 노선버스는 시행 시점에서 파업을 피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국민 세금 인상으로 귀결된 요금인상으로 줄어든 근로시간에 따른 기사의 임금 감소를 보전해 주었습니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 52시간제 도입 1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상용근로자 300인 이상 제조업 사업장의 초과근로가 9.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면서 퇴근 후에 운동을 하고 취미 생활을 하는 ‘워라밸’ 등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는 근로자가 생긴 반면 일부 근로자는 출근부에 퇴근 등록을 하고 야근을 하는 ‘워크맨’이 되었습니다. 또한 추가근무 단축에 따라 근로자들의 소득이 줄어들어 퇴근 후 대리운전 등을 하는 근로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정부는 주52시간제 도입으로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정부는 주52시간제 도입으로 취업자가 16만 명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였으나 도입 후 8개월 사이에 대기업 일자리가 10만 개 줄어들었습니다.

많은 기업에서는 추가로 근로자를 고용하기보다는 혁신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제고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의 회식문화가 사라지면서 음식점 등 대기업과 공공기관 인근 상권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주52시간제 시행 3달 후 광화문 음식점 저녁 매출이 15% 줄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기도 했습니다.

급격한 주52시간제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보완하는 법 개정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의 최종 합의 실패 등으로 지연되자 정부는 2019년 말, 2020년 1월부터 시행 예정이었던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주52시간제 시행을 사실상 1년 6개월 유예하였고 특별연장근로의 허용사유를 확대하였습니다.

법 재개정 논의가 시작된 3년여 만에 2021년 4월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정산 기간이 각각 3개월에서 6개월,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근로자 대표와의 합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실효성 논란이 있고, 영세 사업장의 경우 남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유예 혹은 계도기간을 부여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2021년 7월부터 주52시간제가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되었습니다. 벤처 기업 성장에 주52시간제는 부정적이라는 우려가 있으나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되고 30인 미만 사업장은 (2022년 말까지) 특별연장근로시간이 허용되는 등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주52시간제가 도입되면서 실제 근로시간과는 관계없이 일정액의 수당을 지급하는 ‘포괄임금제’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정부가 밝혔으나 아직까지 지침이 발표되지 않고 있습니다. 준비가 부족한 주52시간제 도입의 실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6월 23일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으로 현재 주 단위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 근로시간을 4주 단위 48시간으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하였다가 대통령이 정부 방침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여 머쓱해졌던 일도 있었습니다.

IT분야 인재들을 이민을 꿈꾸도록 하고, 24시간 깨어 있어야 하는 글로벌 기업 근로자들이 일하다 말고 퇴근하도록 하고, 건설 회사들의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미래의 먹거리인 의약품 개발과 생산을 가로막고, 학문의 자유를 빼앗는 주52시간제는 전면적으로 개편되어야 합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월 발표한 수준 이상의 주52시간제를 개편해야 합니다. ‘굴뚝산업’ 시대의 제조업에 어울리는 직무나 업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현재의 주 52시간제는 문재인 정부의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권고대로 전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내일 망할지 모르는데 주52시간제를 벤처가 어떻게 지키나. 나를 위해 일할 권리조차 국가가 막고 있다?”는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근로시간제도의 새 틀을 짜는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근로자뿐 아니라 모든 근로자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52시간제의 유연성이 제고되어야 합니다.

유연한 근로시간제가 장시간 노동을 촉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기준근로시간제도는 우리보다 훨씬 유연합니다. 계절적 요인이나 제품 납기 이행의 사유가 발생했을 때는 연장근로 시간의 상한 내에서 현장 상황에 맞게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근로시간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탄력근무제는 6개월 또는 24주 이내로 법에 정해져 있으나 노사가 합의하면 1년 단위까지 가능합니다.

미국, 프랑스.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의 탄력근무제의 단위 기간의 상한도 1년입니다. 기준근로시간이 주35시간인 프랑스는 스타트업, 50인 미만 중소기업의 경우 주 60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합니다.

업종별 특성을 고려한 유연근무제가 확대 되어야 합니다. 연구개발(R&D), 벤처, 금융, 글로벌 기업이 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여 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상승 요인이 기업의 경쟁력 약화나 근로자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 조치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직무 중심으로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생산성 제고를 유인할 수 있게 근속 위주에서 직무급·성과급 중심으로 임금체계가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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