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례 넘어선 무례, 내정 간섭 논란까지…연달아 구설 빚은 싱하이밍 중국대사

2021년 07월 27일 오후 3:10 업데이트: 2022년 05월 31일 오후 2:38

라틴어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의 원뜻은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외교가에서는 ‘기피 인물’로 통용된다. 반의어는 ‘페르소나 그라타(Persona grata·환영받는 인물)’이다.

외교관에게 있어 주재국 정부가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선언할 경우 해당 외교관은 임무를 종료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며칠 내로 떠나라”는 조건이 붙기도 한다.

2020년 1월, 제8대 주한국중화인민공화국 특명전권대사로 부임한 싱하이밍(邢海明)은 한국에 있어 환영받는 인물인가? 그렇지 못한 인물인가?

톈진 출신, 북한 사리원농업대학 졸업…남한 라디오 들으며 서울말 익혀

싱하이밍은 중국 외교계의 대표적 ‘한반도통’ 외교관이다. 중국 외교부 입부 후 평생을 남·북한 임무에 종사해 왔다. ‘외도’한 것은 2015~19년 주몽골공화국 대사로 재임한 기간 정도이다.

싱하이밍은 ‘북한 유학파’이다. 1964년 톈진(天津) 출생으로 1992년 북한 사리원농업대학을 졸업했다. 중국 정부의 한반도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북한 유학 시절 ‘북한 사투리’ 대신 ‘한국 표준어’를 익히기 위해 틈나는 대로 한국 라디오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한국어 학습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교육받고 북한 근무 경험을 한 그의 한국어 억양에 ‘북한색’이 없는 이유다.

외교관 경력 내내 한반도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1986년 국무원 외교부 아주사(亞洲司) 입부 후 1988~91년 주북한 대사관에 근무했다. 한중 수교 직후인 1992~95년 주한국 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부임했다. 이후 2003~06년, 2008~11년 참사관으로 두 차례 더 한국 근무를 했고 2006~08년 주북한 대사관 참사관으로 부임하는 등 남·북한을 오가며 경력을 쌓아오며 대사 자리에 올랐다.

2019년 연말, 차기 주한 대사로 싱하이밍이 내정되어 아그레망(agreement·주재국 동의 절차)을 진행할 때부터 한국에서는 환영과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했다. 싱하이밍이 3차례 한국대사관 근무를 한 한국 전문가라는 점에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나왔다. 반면 그의 지난 언행에 비춰 볼 때 내정간섭을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시선도 존재했다.

신임장 제정 전 공개 기자회견, 부임 초부터 파격

중국 우한(武漢)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를 강타한 위중한 시국에 신임 대사로 부임한 싱하이밍의 행보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부임 직후인 2020년 2월 4일, 서울 명동 주한국 중국대사관에서 싱하이밍은 대 언론 브리핑을 했다. 그는 한국 정부의 코로나 19 발원지 후베이(湖北)성 방문자 입국 금지 조치와 관련하여 “제가 많이 평가하지 않겠다” “세계적이고 과학적인 것은 세계보건기구(WHO) 근거인 만큼 이를 따르면 되지 않을까 한다”면서 한국 정부의 조치에 간접 유감의 뜻을 표했다.

이 발언은 대사로서 부임은 했지만, 신임장 제정 절차는 마무리하지 않은 시점에서 이뤄진 주재국 정부 방역 정책에 대한 평가였기에 외교 결례라는 지적을 받았다.

싱하이밍은 이후 2월 6일 당시 김건 외교부 차관보와 상견례차 외교부 청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을 만나 “상대국 주재 대사로서 그 나라의 조치를 공개적으로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신임장 제정 후 명실상부하게 중국 정부의 대표자가 된 싱하이밍의 행보는 거침없다. 각종 공식·비공식 행사에 참석하여 발언하는 것은 물론 한국 방송 출연도 마다치 않는다. 2021년 4월 21일, 취임 1주년을 맞이하여 대표적 친여(親與) 성향 방송인 TBS ‘김어준의 뉴스 공장’에 출연하기도 했다.

방송에서 싱하이밍은 “미국 일부 정치인들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중국을 압박해서 양국 관계에 매우 큰 상처를 입었다. 미국이 더 이상 인위적으로 새로운 장애물을 만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며 악화일로인 미-중 관계의 원인을 미국 탓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남중국해, 신장 위구르자치구 문제, 티베트 문제, 인권 문제를 이용해서 중국을 흔들거나 중국 핵심 이익을 해롭게 (하면) 우리로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다. 대화를 통해서 관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전랑외교(戰狼外交·늑대전사)를 펼치는 국가의 대사다운 발언을 거침없이 이어갔다.

그는 한미일 안보 관계에 대해서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언급하며 “중국은 사드를 통해서 위협을 받았다” “중국은 한국이 지역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 각국과 협력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해 나가면 대단히 고맙겠다”며 주재국 외교정책의 민감한 분야도 건드리기도 했다.

싱하이밍의 거침없는 언행은 이후로도 지속됐다. 야권 차기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7월 15일 자 ‘중앙일보’ 인터뷰에 대한 반발이 그것이다.

이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은 “공고한 한·미 동맹의 기본 위에서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국가들과 협력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이렇게 다져진 국제적 공조와 협력의 틀 속에서 대중국 외교를 펼쳐야 수평적 대중(對中) 관계가 가능하다”, “(사드 체계 배치는) 명백히 우리 주권적 영역이며 (중국이)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려면 자국 국경 인근에 배치한 장거리 레이더를 먼저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싱하이밍은 다음 날 ‘윤석열 인터뷰에 대한 반론: 한중 관계는 한미 관계의 부속품이 아니다’는 글을 중앙일보에 기고해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해 2월 4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주한중국대사관 본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관련해 자국 정부 입장 등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싱하이밍, 한국에 “천하의 대세 따라야”… 대권주자 공박

“중한(한중)관계는 결코 한미 관계의 부속품이 아니고, 양국 관계의 발전은 다른 요소로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정치적 상호 신뢰를 한층 더 강화하고 더욱 큰 발전을 이루도록 추진해야 한다.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한 것은 중국의 안보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했고, 중국 인민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인터뷰에선 중국 레이더를 언급했는데, 이 발언을 이해할 수 없다. 한국 친구에게서 중국 레이더가 한국에 위협이 된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중한 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인 만큼 적이 아니라 우호적인 이웃 나라다. 중국은 방어적인 국방정책을 취해왔고 한국을 가상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중국의 국방력은 국가 통일, 지역 및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 수호를 위한 것이지 절대 한국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중한 우호 사업에 종사해온 외교관으로서 사드 배치 전의 중한 관계가 그립다. 양국은 정치·경제·인문적 교류가 모두 긴밀했고 생기가 넘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드는 중국의 안보 이익을 해쳤고, 앞뒤가 모순되는 당시 한국 정부의 언행이 양국 간의 전략적 상호 신뢰를 해쳤다. 이후 양국의 노력을 통해 사드 문제의 타당한 처리에 합의했고, 중한 관계가 정상 궤도로 돌아오게 됐다.”

“천하의 대세는 따라야 창성하다는 말이 있다. 중국은 이미 5억명에 가까운 중산층 인구를 가지고 있고, 향후 10년간 22조 달러 규모의 상품을 수입할 계획이다. 중한 무역액은 이미 한미, 한일 및 한-EU 간 무역액을 모두 합한 수준 가까이 되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집적회로 시장으로, 전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이른다. 한국은 약 80%의 메모리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

“올 상반기 중국 경제는 전년 동기 대비 12.7% 성장했으며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호전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굳건한 지도 아래, 중국은 전면적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미래의 중국은 한국을 포함한 각국에 거대한 시장과 더 좋은 발전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한국은 대선 시즌에 들어섰다. 이는 한국의 내정이고 대선 주자들 모두 우리의 친구다. 중국은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우호적인 교류를 이어가서 중한 관계를 서로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이를 두고 외교가에서는 대사가 주재국 대선에 개입하는 심각한 결례라는 비판이 나왔다. 내년 치러지는 한국 대선에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난날 거친 언행으로 악명, 위안스카이처럼 굴다 사고 칠 거란 우려가 현실로

싱하이밍의 무례를 넘어선 결례는 ‘예고된 미래’이기도 하다. 앞선 한국 근무 시절 그가 보여준 행태 때문이다. 두 번째 한국 근무 시절 싱하이밍은 2004년 5월 20일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 취임식 참석 의사를 밝힌 여야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참석하지 말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민진당 출신 첫 총통 천수이볜은 대표적 대만 독립론자였다. 중국 외교부 과장급 참사관에 불과한 외교관이 주재국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에게 노골적인 내정 간섭 발언을 한 것이다. 일부 국회의원이 압력 사실을 폭로했고 싱하이밍 참사관은 곤욕을 치렀다.

세 번째 한국 근무 시절에도 싱하이밍의 구설수는 계속됐다. 공사참사관이던 2010년 5월 당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장신썬(張鑫森) 주한중국대사에게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 “중국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자 통역관으로 배석했던 싱하이밍은 “이거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라며 공개적으로 장관을 들이받기도 했다. 외교부 과장급 인사가 주재국 장관을 공박한 무례를 범한 것이다.

이런 그의 언행은 우다웨이(武大偉) 전 대사(1998~2001년 재임)와 비교되기도 한다. 차이점은 우다웨이는 거친 언행이 다분히 계산된 것이었던 반면 싱하이밍은 정말 거친 사람이라는 평가다.

우다웨이는 거친 모습을 일부러 연출하기도 했지만, 한국 정부가 그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면 물러날 줄도 알았다. 반면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국력이 급성장하는 시기에 외교관으로 이력을 쌓은 싱하이밍은 신장된 중국의 국력에 비례하여 고압적인 외교를 하는 이른바 전랑외교관의 전형으로 꼽힌다.

그런 그를 두고 “위안스카이(袁世凱)처럼 굴다 사고 칠 것”이라는 우려가 대사 부임 전부터 제기되기도 했다. 이후 싱하이밍의 행보는 우려가 현실이 된 형국이다. 이런 싱하이밍에게 한국 정부는 ‘페르소나 논 그라타’를 선언할 결기는 없을까.

/최창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