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뇌부 줄줄이 사퇴…검수완박 중재안 여야 합의에 반발

이윤정
2022년 04월 23일 오후 1:32 업데이트: 2022년 04월 23일 오후 1:32

검찰, 부패·경제 범죄 외 수사 불가…이마저 한시적
대검 “민주당 법안과 동일…시기만 늦춘 것”
인수위 “여야 중재안 수용 존중”

여야가 4월 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시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에 전격 합의한 가운데 검찰 지휘부가 줄줄이 사의를 표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법조계에 따르면 김오수 검찰총장은 이날 모든 상황에 책임지겠다며 법무부에 사직서를 다시 제출했다. 앞서 김 총장은 지난 4월 17일 사의를 표했으나 이튿날 문재인 대통령이 김 총장을 직접 만난 후 사표를 반려했다. 이후 닷새 만에 사의를 재표명한 것이다.

대검찰청은 “이성윤 서울고검장, 김관정 수원고검장, 여환섭 대전고검장, 조종태 광주고검장, 권순범 대구고검장, 조재연 부산고검장 등 전국 고등검사장 6명이 사표를 냈다”며 “박성진 대검 차장검사, 구본선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도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검찰 일선 고위 간부들이 전원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로 지휘부 공백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

사상 유례가 없는 검찰 간부 총사퇴는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시한 검수완박 중재안을 여야가 수용하기로 한 데 항의하는 의미로 풀이됐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4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4월 22일 오후 박병석 의장이 소집한 회동에서 검수완박 중재안에 전격 합의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이날 오전 의원총회를 열고 중재안을 수용키로 결정했다.

여야가 수용한 중재안은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향후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합의문에는 이외에도 ▲6대 범죄 중 부패·경제 수사권만 남기고 4대 범죄(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권 폐지 ▲부패·경제범죄 수사권도 중대범죄수사청 설립 전까지만 한시적 유지 ▲중수청 출범(향후 1년 6개월 이내) 이후 검찰의 직접 수사권 폐지 ▲5개의 특수부를 3개로 감축 ▲검찰 보완수사 시 별건 수사 금지 ▲사법개혁특위 구성 등의 내용이 담겼다.

검찰의 직접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설립되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중대범죄수사청은 국회 사법개혁특위를 구성해 6개월 안에 입법하고, 1년 이내에 출범시키는 것으로 명시했다. 중수청이 출범하면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폐지된다.

아울러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범위를 6대 범죄(부패·경제· 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관련) 중 4대 범죄를 삭제하고 부패·경제 범죄 수사권으로 대폭 축소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당장은 공수처 수사권에 별 영향이 없을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공수처법을 포함해 다른 법률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논란과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김한규 변호사는 데일리안 인터뷰에서 “공수처법 자체에 수사 대상과 범위가 명시돼 있기 때문에 당장 공수처 검사의 수사권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법을 개정하려면 관련 법과 규정을 함께 고민하고 개정해야 하는데 현재 정치권에서 앞으로 처리될 검수완박 법안과 다른 법률과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는지 솔직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지방선거를 한 달 앞두고 공직자·선거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를 틀어막는 데 여야 정치인들이 담합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본심을 드러낸 것” “단계적인 검찰 말살” 등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중앙일보는 보도했다. 당장 6월로 예정된 전국동시지방선거 관련 선거범죄 수사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종민 변호사는 “가령 국회의원이 돈을 받고 공천을 주는 경우 부패와 선거범죄가 겹친다”며 “그러면 경찰이나 중수청에 따라 분리해 수사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텐데 현 중재안은 현실을 감안하지 못한 정치적 미봉책”이라고 지적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시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중재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키로 한 데 반발해 검찰 지휘부가 총사퇴했다. 이성윤 서울고검장, 김관정 수원고검장, 여환섭 대전고검장, 조종태 광주고검장, 권순범 대구고검장, 조재연 부산고검장(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 연합뉴스

중재안은 검찰 수사 대상이 줄어들면서 5개 특별수사부(반부패·강력수사부)를 3개로 줄이고 특수부 검사수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기로 규정했다.

범죄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벗어나는 ‘별건 수사’는 금지된다. 당초 민주당은 경찰이 송치하거나 고소인 등이 불송치 등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해도 검찰이 보완 수사 요구만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중재안은 검찰 시정 조치 요구 사건과 고소인 이의 제기 사건 등에 대해 검찰 수사권은 유지하도록 했다

가칭 ‘중대범죄수사청’(한국형 FBI) 등을 논의하는 사법개혁특위도 구성한다. 사법개혁특위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 맡고 위원은 민주당 7명, 국민의힘 5명, 비교섭 단체 1명 등 총 13명으로 구성된다.

이에 대검찰청은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대검찰청은 22일 입장문을 내고 “박병석 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은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과 같은 것”이라며 “기존 ‘검수완박’ 법안의 시행시기만 잠시 유예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재안 역시 형사사법체계의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임에도 국회 특위 등에서 유관기관이 모여 제대로 논의 한번 하지 못한 채 목표시한을 정해놓고 추진되는 심각한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중재안을 포함한 검찰개혁법안은 이번 4월 임시국회 중에 처리할 예정이며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는 오는 28일이나 29일에 소집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공포된 날로부터 4개월 이후 시행된다.

한편,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여야가 박 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을 수용한 것에 대해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지현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오후 인수위 정례 브리핑에서 여야의 검찰 수사권 분리 법안 관련 중재안 수용에 대한 인수위 입장에 대한 질문에 “원내에서 중재안이 수용됐다는 점을 인수위는 존중한다”고 답했다. 이어 “중재된 내용은 해당 분과에서 검토 중이고 추후에 별도로 입장이 있게 되면 말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검수완박을 둘러싼 여야 간 대치 정국이 극적으로 합의점을 찾으면서 일단락됐지만, 검찰 수뇌부의 반발 등에 따른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