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선사유적 위에 최고급 호텔 신축…“중국인 ‘럭셔리’ 관광객 유치”

이윤정
2020년 04월 10일 오후 5:14 업데이트: 2020년 04월 11일 오전 8:16

세계 최대 선사유적지가 있는 춘천 중도에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최고급 호텔이 들어선다.

내년 여름 개장을 예정한 레고랜드 부지 내 6층 규모 ‘레고랜드 호텔’ 외에 하중도 북쪽과 남쪽에 각각 15층 600실 호텔과 10층 800실 규모 휴양형 리조트를 짓는 것이다. 여기에 300실 규모의 스파(spa) 빌리지를 상중도 남쪽으로 세운다.

중도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선사시대(청동기) 유적지가 발견된 곳이다. 1980년대부터 유적발굴이 진행 중이지만, 지난 2011년 문화재청 심의위에서 “심경작물로 인해 이미 유적 훼손이 심각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개발이 허가됐다.

그 대신 문화재청은 유적지 일부를 공원으로 조성해 보존하고, 나머지 지역은 흙을 덮어(복토) 땅 속에 원형을 보존하기로 했다. 흙으로 1m 두께의 유구보호층을 만들었으니 그 위에 위락시설을 세워도 원형이 보존된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번에 초대형 호텔 건설 개발사업을 발표하면서 이런 논리가 무색해지고 있다. 보호층 위에 수백t이상의 막대한 하중이 발생하는 콘크리트 시설들이 조성되면 유적지를 내리눌러서 원형 훼손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중도선사유적지보존본부(이하 중도본부) 김종문 대표는 “토질이 모래인 중도에 고층 호텔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안전을 위해 땅 속 깊이 파일을 박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유구보호층 1m가 훼손되며 중도유적지도 완전히 파괴된다”고 말했다.

춘천시가 작성한 춘천호반(하중도) 관광지 조성계획(변경)에 따른 환경보전방안검토서. | 중도본부 제공
지난해 강원도청에서 발표한 춘천 중도 레고랜드와 숙박시설 조감도. | 중도본부 제공

호텔 건설의 주 목적은 중국인 관광객 유치다. 춘천시는 ‘춘천호반(하중도) 관광지 조성계획 환경보전방안검토서’에서 “중국 럭셔리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고급형 호텔 조성으로 중국 관광객을 유치해야 할 필요성’을 분명히 했다.

이에 중도본부 김 대표는 “원주지방환경청에서 춘천 지역의 상권을 위해 기존의 숙박시설 리모델링을 제안했지만,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중국의 럭셔리 관광객들이 고급스러운 호텔을 원한다면서 환경청의 제안을 거부하고 호텔 사업을 추진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민족의 역사적 뿌리와 관련된 유적을 중국인 관광객 유치 목적으로 훼손하는 일은 중국의 동북공정을 돌이켜 볼 때 더욱 안될 일이라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김 대표는 “중국은 동북공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며 “한민족의 역사 자체가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고 중국이 한민족을 포함한 동북아 전체를 지배했다는 역사를 고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도유적지는 동북공정을 저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자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유산”이라며 “이곳의 선사유적지를 파괴하고 (인근에) 차이나타운을 만들면 중국은 동북공정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대표가 언급한 차이나타운은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중국복합문화타운’(일명 강원도 차이나타운) 조성사업을 가리킨다.

강원도 중국복합문화타운 런칭식에 참석한 최문순 강원도지사(왼쪽)와 쉬정중(許正中) 인민일보 부총편집장. | 인민망 캡처

최문순 도지사 “강원도에 ‘작은 중국’ 세우겠다”

이 사업은 춘천 동산면과 홍천 북방면에 걸친 라비에벨 관광단지(500㎡) 안에 120만㎡ 규모의 중국문화 체험 시설을 세운다는 게 골자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2022년 준공이 목표다.

문제는 이 사업이 중국 공산당이 추진하는 글로벌 영향력 확대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인터넷판인 인민망에 따르면, 최 지사는 작년 12월 6일 베이징의 인민망 청사에서 열린 런칭식에 참석해 “(강원도에) ‘작은 중국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최 지사가 “한국 유일의 일대일로 사업인 ‘중국복합문화타운’ 조성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뜻깊은 자리에 참석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는 강원도청 보도자료도 배포됐다.

이 자리에는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쉬정중(許正中) 부총편집장(차관급)이 참석했다. 이 사업이 인민일보가 주도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강원도는 인허가 정도만 담당하고 사업기획과 중국문화 콘텐츠 개발, 중국 투자자 발굴 및 사업홍보 등은 모두 인민일보에서 진행한다.

 

강원도 춘천시와 홍천군에 위치한 라비에벨 관광단지. 단지 내 120만㎡ 규모 부지에 축구장170배 크기의 차이나타운이 들어설 예정이다. | 에포크타임스

휴전선에서 멀지 않고 군부대와 가까운 지역에 차이나타운이 세워지면, 국가안보를 저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안보전략 전문가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에포크타임스와 전화통화에서 “차이나타운을 조성해서 중국인을 유치하겠다는 것은 국가의 장기적 전략 차원에서 논의해봐야 할 문제”라며 “홍천에는 예비부대가 있어서 충분히 우려할만한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실제 군에서는 예비부대가 더 중요하다”며 “예비부대는 평소 훈련을 해서 강력한 전투력을 갖고 있다가 어느 지역이 (북한에 의해) 돌파되면 빨리 출동해서 막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춘천 시민들, 일자리창출 아직은 기대반

춘천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강원도 측이 밝힌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도 아직은 긴가민가한 눈치다. 지역내 홍보가 적은 탓도 있다.

춘천지역의 한 부동산 중개업체 관계자는 “강원도에서 차이나타운을 추진한다는 것을 작년에 지역신문에 조그맣게 보도된 걸 보고 알게 됐다”며 “홍천 근처에는 육군 11사단을 비롯해 군 부대도 많이 있는데…”라며 썩 달갑지만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중국인 관광객에 ‘올인’하는 지역경제 활성화는 이미 몇 차례 된서리를 맞은 바 있다.

‘제주 속 작은 중국’이라 불렸던 제주도 누웨마루 거리(제주시 연동)는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사태 이후 한한령(限韓令)으로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겼다. 같은 이유로 서울 명동도 상권이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여기에 최근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 사태가 겹치면서 관광산업 전반이 침체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