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안 철회, 중국과 외교갈등 ‘내우외환’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사임 압력 가중

최창근
2022년 10월 20일 오후 4:25 업데이트: 2022년 10월 20일 오후 4:25

‘제2의 대처’를 표방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사면초가(四面楚歌) 신세에 몰렸다. 경기 회복을 명분으로 감세안을 제시했다 국내외 비난 여론에 떠밀려 철회를 발표했으나 후폭풍이 거세다.

10월 19일,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부 장관이 전격 사임했다. 그는 리즈 트러스 총리의 감세 정책을 적극 옹호해 왔다. 다만 여론에 밀려 리즈 트러스 총리가 감세안을 철회하자 ‘사임’으로 정치적 의사 표시를 했다. 그는 “실수를 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실수를 모두가 보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고, 마법처럼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건 정치인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라며 각종 논란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트러스 총리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앞서 그는 감세 정책에 반대하는 보수당 의원을 겨냥해 “쿠데타 세력”이라고 비난할 만큼 트러스 총리를 엄호했으나 총리가 입장을 선회하자 정면 비판한 것이다.

10월 19일 내무부 장관 직을 전격 사임한 수엘라 브레이버먼. 첫 유색 인종 출신 영국 내무부 장관이었다. | 연합뉴스.

앞서 쿼지 콰텡 재무부 장관이 감세안 파문에 책임을 지고 경질되고 보건부 장관, 외무부 장관 등을 역임한 제러미 헌트 하원의원이 신임 재무장관에 임명됐다. 제러미 헌트는 10월 17일, “리즈 트러스 총리의 감세안 대부분을 백지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트러스 내각은 최저 소득세율을 20%에서 19%로 낮추는 시기를 1년 앞당기고, 표준 가구 에너지 요금을 2년간 연 2500파운드(약 400만원)로 제한할 예정이었다.

제러미 헌터 신임 영국 재무부 장관이 영국 의회에 출석하여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리즈 트러스 총리. | 연합뉴스.

이를 두고서 미국 주간지 ‘타임(Time)’은 “현재 영국 권력의 정점에 있는 정치인이 그의 권력을 휘둘렀다.”고 평가했다.

결과적으로 총리에 이어 영국 내각 2인자, 3인자라 할 수 있는 재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이 각료들의 수장(首長)인 ‘총리(Prime Minister)’에게서 등을 돌린 모양새이다.

이 속에서 리즈 트러스는 ‘허울만 남은 총리(Prime Minister In Name Only·PINO)’라는 뜻의 ‘PINO’라는 굴욕적 별칭을 얻기도 했다. 영국 타블로이드 매체 ‘데일리스타’는 트러스 총리와 유통기한이 열흘짜리인 ‘양상추’ 중 어느 쪽이 더 오래갈 것 같냐는 여론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트러스 총리는 이날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실책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다음 총선 때 보수당을 이끌겠다는 결심엔 변함이 없다”며 사임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영국 보수당원 절반 이상이 리즈 트러스가 보수당 대표(총리)직을 사임해야 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온라인 설문조사업체 유고브는 10월 17∼18일 보수당원 53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5%가 트러스 총리가 사임해야 한다고 답했고,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답은 38%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는 ‘파티게이트’ 등으로 퇴진한 보리스 존슨 전 총리 사임 직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유고브는 전했다. 보수당에서는 10월 18일, 총리 사임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의원이 2명 늘어나 총 5명이 됐다. 보수당 경선을 주관하는 ‘1922 위원회’의 그레이엄 브래디 위원장에게 트러스 총리에 대한 불신임투표를 요청하는 의원들의 서한도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매체들은 “100명 이상 보수당 의원이 불신임 투표 요구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1922 위원회 소속의 한 보수당 의원은 “위원회가 이번 주에 총리가 취임한 지 1년 내에는 불신임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을 바꾸거나, 총리에게 ‘이제 끝났다.’며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세안 철회’라는 내우(內憂)에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중국과의 ‘외교 충돌’이라는 외환(外患)도 더해졌다.

주(駐)맨체스터 중국총영사관 앞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중국 영사관 직원 8명이 시위 참가자를 집단 구타한 사건도 리즈 트러스 총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영국 외무부는 중국 대리대사를 초치(招致)하여 경고한 데 이어 총영사 및 관련 외교관 추방 등 추가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제임스 클레버리 외무부 장관은 영국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시위대는 영국 영토에 있었고 시위는 평화롭고 합법적이었다.”며 중국 총영사관의 처사를 비난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영국이 총영사관 보호에 소홀해 발생한 사건이다.”라고 반박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불법 분자가 총영사관 부지에 불법 진입해 안전을 위협했다,”며 영국에 외교적 항의를 의미하는 ‘엄정 교섭’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왕원빈 대변인은 “중국 총영사관의 안녕이 침범돼서는 안 된다. 유효한 조치를 통해 총영사관 인원들의 안녕을 보장하라.”고 영국 정부에 촉구했다.

주맨체스터 중국총영사관 앞에서 벌어진 반중 시위 참가자를 영사관 경내로 끌고 가는 중국 영사관 직원들. 왼쪽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쓴 인물이 영사관 책임자 정시위안 총영사로 추정된다. | 연합뉴스.

당사자인 정시위안 중국 총영사도 맨체스터 경찰에 보낸 서한에서 “시위 대응에 실망했다. 어느 순간 시위대가 영사관 영내로 몰려왔고 영사관 직원들은 승인받지 않은 진입과 이후 공격을 물리적으로 막아야 했다.”고 항의했다.

영국은 자국(自國) 영토 내에서 일어난 폭행 사건에 중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중국은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으로 ‘자국 외교공관 보호에 신경 쓰라’고 소리 높이는 형편이다.

영국 정부가 폭행 관련자들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명하여 사실상 추방 명령을 내릴 경우 중국과 외교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는 이미 정치적 입지가 흔들린 리즈 트러스 총리에게 또 다른 부담 요인이다.

10월 19일, 영국 의회에 출석하여 제1야당 노동당 의원 들을 상대로 사임설을 일축하는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 연합뉴스.

사면초가, 외우내환 처지의 리즈 트러스는 여전히 “총리직 사퇴는 없다.”며 사퇴를 요구하는 여론에 맞서고 있다. 그는 10월 19일, 하원에서 열린 ‘총리 질의응답(Prime Minister’s Question·PMQs)’에서 “나는 싸우는 사람이다. 그만두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트러스 총리는 앞서 BBC와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실책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다음 총선 때 보수당을 이끌겠다는 결심엔 변함이 없다”며 “사임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못을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