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분열 심각해진 韓사회, 소통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필요

이연재
2022년 09월 27일 오후 11:38 업데이트: 2022년 09월 28일 오전 9:22

대한민국은 1980년대 말 영호남 지역 갈등이 사회문제로 등장한 이후 각 부문에서 갈등이 새로 생기거나 깊어지고 있다. 갈등을 넘어 이제는 상대방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혐오사회로까지 치닫고 있다.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지역과 이념, 세대 갈등의 현실을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고민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대한민국은 ‘갈등 공화국’.. 정치적 갈등이 모든 갈등의 시발점

삼성경제연구원이 한국의 갈등 상황에 대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의 갈등지수는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은 0.72다. 이는 OECD 국가 평균 0.44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연간 82조~246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철곤 한양대학교 갈등문제연구소장 | 에포크타임스

박철곤 한양대학교 갈등문제연구소장은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갈등과 분열을 넘어 미래로, 국민통합 세미나’에서 “현재 한국 사회는 정치적 갈등, 이념 갈등, 계층 간 갈등, 지역 간 갈등, 세대 간 갈등이 일상화되고 있다”며 “이 갈등은 서로 간의 혐오를 조장하고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켜 사회적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소장은 특히 정치적 갈등이 모든 갈등을 촉발하는 시발점이자 연원이며 증폭하는 장치로서 기능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2019년 10월을 예로 들었다.

그는 “서울 광화문과 서초동 일대에는 보수와 진보 진영에서 수십만 명씩 모여 대결을 펼쳤다.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보수 성향의 사람들은 당연한 수사라면서 찬성했고 진보 성향의 사람들은 검찰의 표적 수사라고 반발했다”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정치는 보이지 않았고 대한민국은 반으로 갈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박 소장은 우리 사회 갈등의 원인으로 ▲전통사회와 집단의식 ▲이념과 정보 소비의 선택적 경향 ▲정치 과잉과 승자독식 정치제도 ▲새로운 갈등의 요인, 기술진보를 꼽았다.

갈등 관리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필요

여·야, 사회단체 대표들이 정치 중간지대에서 해법 논의해야..

지난 대선에서 정치권은 국민들을 ‘편가르기, 갈라치기’ 하면서, 정치 혐오와 국민 분열을 초래했다. 문제는 정치가 타협과 조정 대신 극단적인 대립과 적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더 가속화된 ‘팬덤정치’와 맞물려, 정치권의 갈등이 국민들의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가 실시한 ‘제9차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7%가 우리 사회의 집단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의 이러한 인식은 센터가 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래로 9년간 변함이 없다.

박 소장은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라며 “갈등을 관리·해소하는 것은 사회 통합과 지속적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주주의 사회, ‘열린 사회’의 본질은 서로 다른 관점의 경쟁, 갈등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인위적 억압·회피가 아니라 자율적 갈등 관리 기제를 마련해 갈등을 적극 관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갈등에 대한 사회의 갈등 관리 역량 제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갈등의 관리·협상은 나름대로 깊은 이해와 전문성이 필요하다. 다양한 이해들이 충돌할 때 상호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이를 조정하고 협상을 이끌어 내기 위한 절차와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 발전의 저해 요인이 되는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 통합 방안을 실현하기 위해 ‘ 정치·사회적 대타협 기구’의 설치·운영을 제안했다.

박 소장은 아울러 “여·야, 사회단체 대표와 갈등 조정 전문가들이 정치의 중간지대에서 ‘개시개비(皆是皆非)’의 자세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해법을 논의해 갈등의 근원을 푼다면 정치·사회적 대타협은 불가능하지 않다”며 “이를 위해서 정치 지도자들의 결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와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오른쪽에서 첫번째) | 에포크타임스

김형준 명지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소통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때 의견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깊이 생각하고 논의하는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선거 등에서 이긴 쪽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게 당연한 사회가 되면서 온 나라가 승자가 되기 위해 그 갈등은 더 격화될 것”이라고 했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갈등 조정 전략으로 갈등을 관리하고 조정할 수 있는 제도, 즉 ‘갈등관리기본법’ 제정을 제안했다.

이날 세미나는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사)국민통합과 한양대학교 갈등문제연구소가 주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