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이념 가르치는 사회과는 교육 방향·범위·용어 분명해야”

이윤정
2022년 09월 7일 오후 5:15 업데이트: 2022년 09월 7일 오후 5:36

“할아버지가 초등학생인 손녀에게 물었습니다. ‘6.25때 누가 우리나라를 침략했지?’ 했더니 ‘일본 놈 아니에요?’라고 답하더랍니다. 문재인 정권 시기에 하도 ‘반일‘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 했기에 어린아이들까지도 ‘나쁜 짓 하는 악당은 당연히 일본’이라고 뇌리에 새겼던 것 같습니다. 6·25남침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고요.”

9월 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교과서 어떻게 할 것인가? 교과서 문제의 원인과 대책’ 세미나에서 통일원 차관을 지낸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이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역사를 모르면 미래가 없다”며 “역사 교과서 왜곡은 자라나는 세대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미래의 문제다”라고 역설했다.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 에포크타임스

이재원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은 “이와 같은 역사 왜곡 시도는 느닷없이 나타난 것이 아니다”라며 “오래전에 이미 역사학계와 교육계를 장악한 좌파 학자들, 전교조 교사들이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낙인찍어 안락사시키기 위해 ‘100년 전쟁’을 선포하고 장구한 세월 집요하게 공작한 결과가 재삼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미나 발제자로 나선 홍후조 고려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만든 초등 사회과 검정교과서 내용의 문제와 과제’ 주제로 발표했다.

홍후조 고려대 교수 | 에포크타임스

홍후조 교수는 “초등교사들의 절대 반대를 무시하고 강행한 문재인 정부의 사회과 검정 교과서는 실패작”이라고 평가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교육부가 의뢰해 2017년 11월 30일~12월 6일까지 국정 도서의 검정으로의 전환에 대해 온라인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이에 초등교원 8942명이 설문에 응답했으며, 현행 국정고시 교과인 국어·수학·사회·과학·도덕 및 주제별 통합 교과서에 대해 응답자의 80~90%가 국정 유지를 지지했다.

홍 교수는 “초등 교과서는 국정도서가 더 적합하다”며 그 이유에 대해 “국민기초 기본 공통 교양 교육을 담고 있으며, 초등학생의 20%가 전학을 오가는 상황이고, 초등 교사들은 여러 교과목을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어떠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본권 보장 및 교육복지 차원에서 학습권과 학습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며 “현재와 같이 집필진의 ‘입맛대로’ 들쭉날쭉, 뒤죽박죽인 교과서로 가르치게 놔두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초등학교 사회 검정 교과서 3종(천재교육, 아이스크림, 천재교과서)을 분석했다. 교과서마다 다르게 서술하고 있는 사례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홍 교수는 “위 표를 보면 검정교과서들이 서로 다른 인물, 제도, 사건 관련 용어를 선택해서 기술하고 있다. 학생들은 다른 것을 배워서 장차 이들 사이에 상식(common sense)이 달라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기초 기본 공통 교양 교육을 하는 초등학교에서 전체 국민의 상식을 조성하는 교과서를 ‘다양화’라는 명목으로 검정화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어차피 학생들은 11개 중 하나를 선택해서 집필자들이 편파적으로 만든 하나의 특수한 교과서로만 배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홍 교수는 “그들이 언급하는 사건, 인물, 사물이 너무 다르다면 교육의 기회균등에 어긋난다”며 “학생들은 다양하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일부만 배울 뿐”이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최근 교육부가 공개한 중·고 역사과 및 한국사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자유 민주주의’ 빠져 논란이 된 것과 관련해선 조선일보 보도를 인용해 “이번에 검정 심사를 통과한 11종 교과서 가운데 ‘자유민주주의’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언급한 것은 2종(금성·미래엔)밖에 없었다”며 “1948년 12월 국제연합이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는 사실도 천재교과서·교학사 2종만 썼을 뿐 나머지 7종은 이 사실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가치와 이념을 가르치는 사회과는 가르칠 방향과 다룰 범위와 용어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육부는 논의를 거쳐 문제투성이 사회과 검정교과서를 국정제로 되돌려야 하고, 그전에는 검정 기준을 본래대로 적용해 교과서 내용 수정 지시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며 “문제가 된 교육과정은 폐기하고 특정 개인이 아니라 책임 있는 연구기관을 통해 다시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세대 국민들의 상식이 잘못 형성돼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세미나를 경청하고 있는 시민들 | 에포크타임스

토론에 참여한 양일국 한국외대 객원교수는 역사교육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건국’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언급했다. 건국 논란과 관련해 양 교수는 “국제정치학적으로 볼 때 1948년 정부수립 기념행사보다 중요한 사건은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미국이 대한민국의 출범을 축하하며 보낸 ‘축전’”이라며 “결국 1948년에 국제정치적 의미에서 국가의 모든 조건(국민·영토·주권·강대국 승인)이 충족됐다는 점은 이념이나 사상을 넘어 객관적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자유민주주의’ 용어는 고유명사이며 학술용어라고 규정하면서 “어떤 필요에 의해 급조했거나 만든 단어가 아니며, 나름의 엄격한 성립요건을 명시하고 있는 학문적 개념”이라고 부연했다. 양 교수는 “그것이 과거 어떤 맥락에서 사용됐건 간에 자유민주주의의 정의에 부합하는 정치체제나 제도를 가진 나라는 자유민주주의라고 정확히 불러줘야 마땅하다”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교과서 문제를 이념뿐 아니라 ‘이익’ 문제로 분석하기도 했다. 양 교수는 “우파진영은 교과서 문제를 이념 갈등으로 이해한다”며 “그(좌파)들이 교과서 시장을 선점하고 내 주지 않으려 애쓰는 데에는 이념도 있겠지만 그만한 이익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