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해외 체류하면 당에서 퇴출?’ 중국 공산당 새 인사 규정 발표

최창근
2022년 09월 22일 오후 4:17 업데이트: 2022년 09월 22일 오후 4:17

입으로는 반미(反美)를 외치면서 자녀를 미국 유학시키고 고가 부동산을 구입 하는 등 실생활에서는 친미(親美) 행태를 보여 이율배반(二律背反)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중국 공산당 간부들을 겨냥한 새로운 인사 규정이 발표됐다. 핵심은 가족이 미국 등 해외에 체류할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2022년 10월, 제20차 전국 당 대회를 앞둔 중국 공산당이 당 간부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인사 규정을 발표했다.

9월 20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당 간부에 대한 ‘능상능하(能上能下)’ 인사 규정을 마련해 전국에 배포했다. 능력에 따라 파격 승진·강등이 가능한 인사를 위한 규정이라는 뜻이다. 표면상 관료 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는 ‘연공서열’ 원칙을 깨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총 15개 항목으로 구성된 새로운 인사 규정의 핵심은 ‘퇴출 규정’에 있다. 세부적으로 배우자나 자녀 등 가족이 해외에 체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당 간부는 승진에서 탈락할 수 있다. 가족이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경우도 동등한 원칙이 적용된다.

새로운 인사 규정을 적용할 경우, 배우자나 자녀가 해외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해당 중공 간부는 승진에서 배제될 수 있다. 가족이 해외에서 사업을 해도 공직에서 퇴출될 수 있다. 일종의 연좌제다. 가족과 재산을 미국 등으로 옮겨 놓은 뒤 본인만 중국에 남아 공산주의자로 행세하는 ‘겉과 속이 다른 이들’을 걸러내겠다 뜻이다.

이에 앞서, 2022년 3월, 중국 공산당은 내부 지침을 통해 부장(장관)급 이상 고위 인사와 가족이 해외 부동산과 외국 기업 주식을 사들이지 못하게 했다. 지난 6월에는 ‘지도 간부의 배우자 및 자녀의 경영·기업관리 규정’을 배포하여 고위 관리 가족의 사업 활동도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이들은 스타트업(창업 기업)에 투자하거나 민간 및 외자 기업의 고위직을 맡을 수 없다.

신화통신은 “이번 인사 규정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관철하기 위해 간부들의 능력을 최대한 향상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해설했다.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워 시 주석의 장악력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해당 간부가 공산당 지도부의 정책을 관철하지 못할 정도로 지도력, 판단력이 미약하거나 시진핑 총서기의 주요 이념인 ‘중국 특색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이 흔들린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승진에서 누락될 수 있다.

새로운 중국 공산당 인사규정 시행은 시진핑 총서기의 당 장악력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내로남불 논란을 일으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온 당 간부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함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또한 인사 규정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꽤 높다는 점에서는 시 주석이 이를 정적(政敵) 제거에 악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반미는 직업, 친미는 생활’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중국 공산당 간부의 이중 행각은 문제시되어 오고 있다.

미국을 향해 독설을 내뱉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들의 행태도 다르지 않다. 수석 대변인 격인 화춘잉 외교부 공보·의전·통역담당 부장조리(차관보)는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호화 저택을 구입했다. 해외 자산 은폐 논란이 일자 “미국 유학 중인 중학생 딸의 거주용으로 구입한 것이다.” “공직자 재산 신고에 고의 누락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2020년 7월 주(駐)유엔 중국대표부 부대사로 자리를 옮긴 겅솽 전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에 부임할 당시 중학생인 딸을 대동했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은 “반미는 일일 뿐이었지만, 자녀가 미국에서 교육받는 것은 생활이다”라고 조롱했다.

중국 공산당 최고위급 간부의 행태도 대동소이하다. 시진핑 총서기의 외동딸 시밍쩌는 저장대 입학 후 2010년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에 편입해 2015년 졸업했다. 권력 서열 2위 리커창 국무원 총리의 딸도 하버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시진핑의 정적’ 보시라이 전 충칭시 공산당위원회 서기의 외아들 보과과도 영국 유학을 거쳐 하버드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하버드대 동문 명단에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손자 장즈청, 리자오싱 전 외교부장 아들 리허허 등 전·현직 중국 국가지도부 자손들이 올라 있다.

당 슬로건이기도 한 ‘위인민복무(爲人民服務·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중국 공산당 고위층의 표리부동하고 이율배반적 행태가 이번 인사 규정을 계기로 바뀔까. 귀추가 주목된다.